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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한 희망 ‘교회’

“교회, 꼭 다녀야 하나요?”


이 질문은 더 이상 교회 바깥에서만 들려오는 물음이 아니다. 오늘의 청년 세대는 교회를 향해 이 질문을 던지며, 동시에 교회 안에 남아 있는 이들 역시 마음속으로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동명의 기독교 신간은 이 물음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 질문을 통해 오늘 한국교회가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지를 정면으로 묻고 있다.


한국교회는 오랫동안 교회 출석과 신앙의 성실함을 거의 동일한 기준으로 여겨왔다. 주일 예배 참석 여부, 봉사 참여, 헌신의 정도가 신앙의 잣대처럼 사용돼 왔다. 그러나 오늘의 다음세대는 이러한 공식에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 가운데 상당수는 신앙을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신앙의 의미와 공동체적 경험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문제는 청년들이 공동체를 원하지 않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청년들은 누구보다도 관계와 연대, 진정성 있는 공동체를 갈망한다. 다만 그들이 찾는 공동체는 위계적이고 일방적인 구조가 아니라, 질문이 허용되고 실패가 품어지며, 삶의 무게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그러나 현실의 교회는 종종 답만 제시하고 질문을 불편해하며, 연약함보다 성과를 앞세워 왔다. 이 간극 속에서 “굳이 교회를 다녀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성경이 말하는 교회는 제도 이전에 공동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서로 연결돼 있으며, 각 지체가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는 생명 공동체다. 초대교회는 화려한 프로그램이나 안정된 구조로 성장하지 않았다. 말씀과 기도, 나눔과 섬김, 그리고 삶을 함께하는 공동체성 속에서 복음의 힘을 증언했다. 하지만 오늘의 교회는 어느새 공동체보다는 운영에 익숙해졌고, 양육보다는 관리에 치우치며, 다음 세대를 동역자가 아닌 ‘유지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해진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다음세대의 이탈은 단순한 세대 변화가 아니라 교회를 향한 경고음이다.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면서도 여전히 영성과 의미를 찾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기도하고, 묻고, 고민한다. 문제는 신앙이 아니라 교회다. 권위만 남고 책임은 보이지 않는 리더십, 삶과 동떨어진 메시지, 그리고 세상 속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공동체는 청년들에게 교회를 낯선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 상황에서 “교회는 꼭 다녀야 하나요?”라는 질문은 교회를 포기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교회가 다시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절박한 호소로 읽혀야 한다.


이제 교회는 다음세대에게 출석을 요구하기에 앞서, 함께할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예배당에 모이는 숫자를 늘리는 것보다, 삶을 나누는 깊이를 회복해야 한다. 특히 침례교회가 자신의 신앙적 전통과 교회론을 다시 회복해 낸다면, 이는 다음세대를 향한 가장 강력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교회가 다시 그리스도의 몸으로 살아내지 못한다면 이 질문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교회, 그리고 침례교회가 복음의 공동체로 서게 된다면, 다음세대는 더 이상 묻지 않을 것이다. 그 질문은 이렇게 바뀔 것이다.

 

“그래서, 교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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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