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정착할 시기에 그 땅(오늘날 이스라엘 땅을 포함)의 대표적인 농산품을 무엇이었을까? 성경은 그 땅의 주요 생산품을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고 기술하고 있다(신 8:8, 민 13:23).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의 종류는 성경 시대보다 훨씬 다양해졌고 철저하게 경제 논리에 따라 재배된다. 하지만 성경에서 언급하고 있는 7가지 농산품을 지금도 재배되고 있다. 그 가운데 한 열매가 석류다. 석류는 히브리어로 림몬(rimmôn)이라 불렸고 ‘높은 곳’을 뜻하는 라맘(ramam)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단어이다. 이름만 보아도 그들이 석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식물들은 그 현장에 거주하던 사람들만이 인식했던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석류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첫째로 ‘다산’이다. 즉 석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많은 자녀를 생산하거나, 많은 자녀가 있는 축복받은 가족을 떠올리는데 이유는 석류 열매의 씨가 수백 개에 이르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석류의 생긴 모양이 마치 왕관과 같다고 하여 영광, 부귀, 축복을 상징하는 열매로 생각했다. 랍비들은 유대종교의 선생들로서 석류의 이런 모양을 성경과 신앙에 연계시켜 모세 5경을 ‘토라의 왕관’ 같다고 표현하는가 하면, 많은 석류씨의 모양을 마치 옹기종기 모여 토라를 공부하는 아이들의 모습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석류는 민족주의와 결합되어 전쟁에서의 승리, 독립, 민족의 영화를 상징하는 상징으로서 동전에 석류 이미지를 새겨 사용하기까지 했다.
사람들은 이 같은 석류의 이미지를 그들의 신앙과 일상생활 전 분야에서 걸쳐 다양하게 적용시켰다. 히브리어로 림몬(석류)이 지명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시인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하고(아 4:3; 13, 6:7; 11), 다양한 생활용품이나 그림, 제사 도구의 소재와 모티브를 제공하며 또한 유월절 양을 화덕에 구울 때 석류나무를 사용했으며 석류의 꽃은 붉은색 염료로 그 외피는 가죽의 무두질 재료로 이용했고, 과거 서기관들은 시간이 지나 검게 색이 변한 석류 껍질을 태워 잉크의 원료로 사용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유대인들의 새해는 9~10월 사이에 시작된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이 때 꿀에 사과나 석류를 섞어 먹는 풍습이 있는데 이는 한 해를 달콤하고 좋은 일들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하는 마음과 많은 석류 알을 보면서 새해에 613개의 율법을 잘 지키겠다고 결단하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처럼 석류는 그 땅의 거주민들과 아주 친숙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당신의 비전과 메시지가 담겨있는 성전을 건축할 때 석류 열매를 장식품으로 사용하시고(왕상 6:32, 7:18~20), 대제사장의 예복을 디자인하실 때 장신구로 사용하셨다.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석류를 수놓고 금방울을 간격을 두어 달되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 방울, 한 석류, 한 금 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출 28:33~34)
내가 석류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바로 성전과 대제사장의 옷에 석류가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일반적인 열매가 가장 특별한 장소에서 그리고 누가 봐도 가장 특이한 용도로 사용된 것이다. 이보다 더 독특하며,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어떤 의상 디자이너가 아무 생각 없이 옷감의 소재, 질감, 그리고 색깔을 선택하겠는가? 또 옷에 사용하는 단추 하나라도 그 모양, 색깔, 크기를 의미 없이 선택하고 사용하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는 일이다. 디자이너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에 맞는 옷감, 색깔, 또 옷의 형태 그리고 모든 소재들도 의도된 목적을 가지고 선택하고 사용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대제사장의 옷을 직접 디자인 하실 때 의미 없이 석류 열매를 장신구로 사용하였겠는가? 대제사장 옷에 대한 나의 관심과 연구가 이때부터 시작됐다.
대제사장의 옷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상징적 의미들을 부여하시며 디자인하신 예복이었다. 하나님은 그 예복을 통해서 한 민족의 리더로서,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 권위를 표현하셨고 또한 그 예복을 통해서 사람들과 당신의 메시지를 소통하기 원하셨다. 그래서 예복의 색깔, 재료, 장식품 등 소재 하나 하나가 의도된 목적에 맞게 선택된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는 하나님이 의도하신 상징적 의미들이 고스란히 스며있다.
그 중에서도 하나님은 청색으로 만든 에봇 밭침겉옷에 석류 열매를 장식품으로 사용하셨다. 그중 하나는 금방울이고 다른 하나는 4가지 색깔로 만든 석류를 대제사장의 청색 겉옷 맨 밑단에 장식품으로 달도록 디자인 하신 것이다.
방울의 목적이야 소리를 내는 것이고, 그 방울을 금으로 만들라 했으니 금방울 소리를 내도록 고안된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 더해서 성막에서 금은 순수한 믿음을 상징하니 대제사장은 오로지 하나님만 믿는 믿음의 소리를 내는 사람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금방울 하나 옆에 석류를 달도록 하신 의미가 무엇이란 말인가? 그것도 석류하면 빨간색으로 만드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하나님은 왜 하필 석류를 4가지 색으로 만들어 장식품처럼 옷의 끝단에 달도록 디자인하셨을까? 나는 생명을 상징하는 청색 겉옷, 그리고 믿음의 소리를 의미하는 금방울과 4가지 색깔(청색, 흰색, 자색, 홍색)의 실로 만든 석류 열매를 조화시킨 하나님의 의도 내지는 상징적 의미를 알아내야만 했다. 이스라엘에서 한국에 돌아와 교회라는 현장에 있으면서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모든 색은 그 색깔이 상징하는 고유한 상징적 의미 또는 그 문화권에서 형성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성경 사건의 주인공들이 살던 시대에 청색(Blue)은 하늘, 그리고 신성과 생명을 상징하는 색으로 인식됐다. 그래서 청색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광스런 하늘을 연상하게 하는 동시에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상징하며 생명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용됐다. 자색(Purple)은 왕이나 귀족들이 입는 의복의 색깔로 왕권을 나타내는 상징적인 색이었다. 홍색(Scarlet)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피, 고난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색이다. 흰색(Linen)은 깨끗함, 성결함, 순결함을 상징했다. 이렇게 보니 석류에 사용된 4가지 색은 모두 예수님을 상징하는 색깔들이었다. 석류가 빨간색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것을 4가지 색깔로 수놓아 만들도록 하셨으니 의도된 디자인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디자이너는 왜 예수님 또는 예수님 사역을 상징하는 4가지 색으로 다른 열매가 아니라 반드시 석류 열매를 만들도록 의도했던 것인가? 아마도 석류가 가지고 있는 ‘다산’, ‘영광’에 대한 상징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이쯤 되니 대제사장 청색 겉옷에 장식된 4가지 색깔로 만들어진 석류의 의미가 점점 선명해진다. 이스라엘에서 겪었던 갈증도 해소된다.
청색 겉옷을 입은 대제사장은 하늘의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하는 하늘의 일이란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금방울소리(믿음의 소리)로 예수님의 복음(4가지 색의 석류)을 전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결과적으로 석류 알처럼 많은 신자들이 생산될 때 제사장의 사역은 가장 영광스럽고 축복된 사역이 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