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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다①

한북지방회(회장 박상구 목사) 종교개혁지 순례를 다녀와서(2월 2~14일)

 

2026년 2월 2일, 인천공항 출국장에 모인 한북지방회 목회자와 성도 30명은 단순히 유럽으로 떠나는 여행객이 아니었다. 각자의 목회 현장과 삶의 자리에서 분주히 달려오던 우리는 잠시 멈춰 서기 위해, 그리고 다시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 길을 나섰다. 누군가는 주일 설교를 마치고 곧바로 공항으로 향했고, 누군가는 교회의 여러 사역을 정리한 뒤 숨 돌릴 틈 없이 짐을 꾸렸다.


그렇게 모인 우리는 각자의 교회를 대표해 서 있었지만, 동시에 한 사람의 신앙인으로 서 있었다. 목적지는 독일과 체코,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그러나 진짜 목적지는 지도 위에 표시된 나라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안에서 어쩌면 흐려져 가고 있을지도 모를 신앙의 본질, 오래 붙들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바쁘다는 이유로 가장 뒤로 미루어 두었던 그 자리였다.


이번 순례는 신아여행사(세종시 하나투어, 남궁한규 집사)의 기획과 전문적인 지원 속에서 진행됐다. 종교개혁지 순례는 일반 관광과는 성격이 다르다. 사진을 남기기 위한 방문이 아니라, 말씀의 흔적을 따라 걷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일정과 비용, 이동 동선과 안전 문제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 쉽게 추진하기 어렵다. 더구나 5개국을 단기간에 아우르는 일정은 세밀한 설계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여정은 신앙적 의미를 중심에 둔 치밀한 동선과 현지 전문 가이드의 깊이 있는 해설, 안정적인 숙소와 식사까지 세심히 준비돼 있었다. 우리는 단순히 이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묵상하며 걷는 사람들이 될 수 있었다. 덕분에 우리는 육체적 피로보다 영적 묵상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잘 준비된 일정은 단순한 편안함을 넘어 영적 집중을 가능하게 하는 토대가 된다. 이동이 불안정하면 마음도 산만해진다. 숙소가 불편하면 생각은 깊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 순례는 달랐다. 쉼과 충전의 균형이 잡힌 여정 속에서 우리는 말씀을 더 깊이 붙들 수 있었다. 버스 안에서의 짧은 침묵과 기도, 숙소에서의 개인 묵상 시간, 현지 설명을 듣고 난 뒤 이어지던 조용한 기도의 순간들이 마음에 남는다. 준비된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깨닫는 시간이었다. 사역 역시 그렇지 않은가. 환경은 본질이 아니지만, 본질을 지키게 하는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인천공항에서 출발 전, 우리는 함께 기도했다.
“이번 여정이 관광이 되지 않게 하시고, 신앙의 뿌리를 다시 붙드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그 기도는 형식적인 문장이 아니었다. 팬데믹 이후 교회는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 성도의 숫자는 줄어들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는 흐려졌으며, 프로그램과 전략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짧아지고, 세상의 흐름은 빠르게 바뀐다. 우리는 그 속에서 끊임없이 적응하려 애써 왔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 질문하게 된다. 교회의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무엇을 더해야 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붙들어야 하는가의 문제였다. 더 많은 방법을 찾기보다, 혹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답은 아닐까 하는 고민이 우리 안에 있었다. 돌아감은 후퇴가 아니라 회복일지도 모른다.

 


독일 비텐베르크에 도착했을 때, 겨울 공기는 차가웠다. 14시간가량의 비행과 버스로 3시간가량 이동한 후 우리는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회복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날은 좋지 않아 비가 내리고 바닥은 눈과 비로 얼어붙어 걷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처음 느껴보는 습하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 손끝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으며 우리는 성교회 앞에 섰다. 회색빛 하늘 아래 서 있던 그 문 앞에서 우리는 한 사람의 결단을 떠올렸다. 마르틴 루터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했다고 전해지는 그 자리. 역사는 거창한 군대나 권력에서 시작되지 않았다. 말씀 앞에 선 한 사람의 양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다. 갈등도 있었고 두려움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붙든 사람이었다. 그 사실 하나가 역사를 바꾸었다.


종교개혁은 거대한 정치 혁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순하지만 강력한 외침이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자.”


그 외침은 당시 교회를 향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사랑이었다. 무너뜨리기 위한 외침이 아니라, 바로 세우기 위한 외침이었다. 그 자리에 서 있으니, 우리 역시 묻게 됐다. 우리는 지금 무엇으로 교회를 세우고 있는가. 우리의 사역은 말씀 위에 서 있는가, 아니면 효율과 반응 위에 서 있는가. 어쩌면 흐린 날씨는 우리의 순례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묵상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세상을 보고 사진 찍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아니라 순례지에서 표지판과 기념 문구를 보며 후대에게 남기고자 목숨을 걸었던 종교개혁가들의 숨소리와 외침을 듣기 위해 집중할 수 있었다.


구텐베르크 광장에서 우리는 인쇄술이 종교개혁 확산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사실은 말씀이 민중의 손에 들려졌다는 점이었다. 성경이 제도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던 시대, 말씀이 다시 민중의 언어로 풀려나왔다. 교회 제도나 인간의 권위가 아니라, 성경 그 자체가 기준이 돼야 한다는 선언. 그 단순한 고백이 교회를 새롭게 했다. 우리 손에 한글로 돼 있는 성경이 들려 있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느껴졌다. 누군가의 희생과 노력, 번역의 수고와 눈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글로 성경을 읽고 묵상할 수 있다. 감사가 밀려왔다. 그러나 동시에 질문도 밀려왔다. 우리는 그만큼 말씀을 가까이하고 있는가?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루터가 성경을 번역하던 방을 바라보며 우리는 깊은 침묵에 잠겼다. 그곳은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방에서 이루어진 작업은 역사를 바꿨다. 그는 단지 언어를 번역한 것이 아니었다. 말씀을 백성의 삶 속으로 돌려보냈다. 성경을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닌 모든 신자의 양식으로 회복시켰다. 말씀은 읽혀질 때 생명을 얻고, 들려질 때 공동체를 세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 성경은 너무 쉬운 책이 됐다. 스마트폰 속에, 집 안 책장에, 교회 의자 밑에 항상 있다. 그러나 가까움이 곧 깊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과연 말씀을 얼마나 묵상하고 있는가. 한 권의 성경을 소중히 들고 다니던 시절보다 지금 더 많이 읽고 있는가? 성경의 풍요가 말씀과 은혜의 풍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한낱 문자에 불과한 글은 읽음으로써, 그리고 묵상함으로 우리의 마음과 신앙 속에서 은혜로 다가오는 것이다.

 


슈토테른하임에서 우리는 루터의 소명을 묵상했다. 번개가 치던 폭풍 속에서 드린 한 청년의 기도. “저를 살려주시면 수도사가 되겠습니다.” 같은 상황 속에서도 어떤 이는 단순한 공포로 끝나고, 어떤 이는 소명을 듣는다. 하나님은 때로 폭풍 가운데서 우리를 부르신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목회자는 무엇으로부터의 개혁을 이루어야 하는가. 화려한 프로그램과 끊임없는 세미나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 애쓰는가. 혹시 보여짐에 치우쳐 본질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개혁은 처음으로 돌아가는 데서 시작된다. 우리의 처음도 분명 달콤했을 것이다. 진리를 따르고 말씀을 전하는 데 기쁨이 가득했을 것이다. 혹시 수많은 시간이 흘러 처음이 기억나지 않는가? 처음과 다른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은가? 묵상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즉시 응답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구하는 기도의 시간이 됐다.


아우구스티너 수도원에서는 루터의 치열한 성경 연구 과정을 들었다. 종교개혁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다. 한 영혼이 말씀과 씨름한 시간의 축적이었다. 깊은 고민과 기도, 눈물의 시간이 쌓여 나타난 결실이었다. 개혁은 밖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먼저 우리 안에서 시작된다. 흐름을 따르지 않는 것이 침례교회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한다. 유행을 따르기보다 진리를 따르는 것, 반응을 좇기보다 말씀을 좇는 것. 우리의 강단에서, 우리의 기도실에서, 우리의 삶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게 됐다.

남궁명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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