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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해서

 

한 가수의 인터뷰 때 사회자가 솔직히 말해서그러자 솔직히 말해서, 그런 말 쓰지 말자. 그럼 지금까지 가식이나 거짓말을 했단 말이냐?’고 반문하는 것을 보았다. 말이면 말이지 솔직히 말할 말이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말하는 그 자체가 이미 솔직한 것을 전제하고 있는데 구분해서 말하면 대화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대화 속에서 솔직히 말해서라는 말을 너무 자주 쓴다. 그냥 하는 말과 솔직히 하는 말을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달리 사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관계의 친밀도에 따라 감정과 언어의 선호에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냥 하는 말과 솔직히 하는 말의 분리와 간격은 언어신뢰성에 의혹이 된다. 안정된 신용사회 추구는 대부분 경제와 금융의 안정을 말한다.

 

하지만 더 중대하게 지켜져야 할 신용은 언어의 신용이다. 언어의 신용도가 불안정해져 갈수록 말에 수식어는 남발된다. “진짜, 사실은,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하고 강조해야 진정성을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로 언어의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 장치를 마련하게 된다. 도대체 말을 믿을 수 없고, 말 그대로만 믿을 수 없어 의미를 다시 재해석해야 한다.

 

각서도 쓰고 말을 녹취하고, 녹음도 하고, 손가락으로 손도장을 찍고, 증인도 세운다. 사람들 앞에서 하늘에 맹세를 해야 믿겠다고 맹세를 요구한다. 또 자기결백을 사람들에게 주장하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만큼 서로 말의 신용을 낮게 평가한다는 반증이다.

 

물론 솔직히 말해서는 돌려 말하다가 직설적으로 말하겠다는 중립적 의미도 있고, 다양한 해석도 가능하다. 하지만 대부분은 언어의 불안한 신뢰성을 강조하는 반작용이다. 말이 마음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언어의 신용불안은 서로에 대한 신뢰불안이기도 하다.

 

대화를 통해 상호 교류되는 인프라의 악화는 끼리끼리의 패거리를 강화시키고 전체의 소통을 방해한다. 그냥 말하는 사람들과 솔직히 말하는 사람들을 구분함으로 그 벽을 더욱 두텁게 만든다.

 

전체의 소통을 방해하고 관계를 악화시키는 근원이 말의 신뢰도 때문이다 그냥 하는 말과 솔직히 말하는 말의 간격과, 대상자가 다를수록 상호 신용평가는 낮아진다. 말에 대한 신뢰도는 그 사람과 대화의 자료나 만남에 영향을 미친다.

 

신용평가를 통해 신용도가 낮은 사람과 거래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본능인지도 모른다. 언어 신용불량자는 늑대가 나타났다는 동화 속 양치기 같은 사람이다. 말의 신용불량자의 대표로 정치가만 말하기엔 뭔가 개운치 않다.

 

말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서로 보증이고, 다른 보증이 필요치 않는 것이 대화다. 서로 대화한다는 것은 솔직함 그 자체를 시작한 것이다. 그냥 대화 자체가 솔직한 말이지, 솔직한 말은 따로 밀실에서 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의 시작은 곧 신뢰의 통로를 통해 소통하는 것이다. 대화가 안 된다는 것은 의견이 다르다는 것만이 아니다. 말의 신뢰와 태도의 문제이며, 마음의 진실성 여부이다. 그러므로 처한 입장 차이와 견해의 간격에도 불구하고 대화를 할 수 있다. 또 대화를 할 수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없다.

 

바벨에서 말이 흐트러지면서 마음이 흩어 진 흔적을 우리는 지니고 산다. 그러므로 가만히 있으면 편하고 이해관계가 맞는 사람들과 끼리끼리 솔직히 말하게 된다. 상처의 흔적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이다. 지금도 말이라는 통로를 통해 소중한 역사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말을 분리하는 이중성 때문에 불통의 벽도 함께 쌓으며 산다.

 

말이 흩어지면서 중단된 소중한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냥 하는 말과 솔직히 하는 말로 흩어지면서 멈춘 역사들이 아쉽다. 말은 하나로 모아져야 대화가 된다. 어디서 누구와 하든지 한결 같은 대화여야만 된다. 돌아보면 독백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는 한 가지 말로 하는 대화로 세워야 할 것이 너무 많다.

 

그냥 하는 말과 솔직히 하는 말의 구별은 대화가 아니다. 말을 서로 주고받는 그 자체로 대화는 아니다. 말의 건전한 신용도를 가지고 언어의 시장을 건강하게 만들어가야 한다. 장사하는 사람들은 신용을 목숨처럼 생각하며 지키며 산다는 처세를 들은 적 있다. “솔직히 말한다.”는 말을 솔직히 말하거나 솔직히 듣고 싶지 않다.

 

얼마나 사람이 언어의 신용을 지키기 어려우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못 믿는다는 속담이 있겠는가? 그 사람의 말은 믿을 만 하다는 그런 평가를 받고 살았으면 좋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하는 분의 자녀들이 먼저 말의 신용평가 등급을 높이며 건전한 언어 신용자로 살아가심이 어떠실는지.

 

추복현 목사 / 광주요단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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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