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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지 말라(1)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라고 말씀을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주님을 따르면서 겪게 될 고난이 두려워져 이렇게 변명하고 있었다.


나로 먼저 가서 내 부친을 장사하게 허락하소서그 핑계를 들으신 주님은 죽은 자들로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희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9:60)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곁에 있던 사람은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내가 주를 좇겠지만 먼저 가서 가족들과 작별하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이다. 그 말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라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9:62)


그렇다 일단 쟁기를 손에 잡았다면 앞만 봐야 한다. 뒤를 돌아보면 밭이랑이 제멋대로가 되어 버린다. 특히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길을 가고 있다면 뒤를 돌아보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세상 욕심에 이끌려서도 안 된다. 어떠한 핑계를 내세워도 안 된다.


더구나 도중에 하차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생활이 그랬음을 잘보여 주고 있다. 애굽을 나오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봤다. 조금 목이 말라도 애굽을 생각하며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배가 좀 고프거나 고달프면 애굽에서 살았던 일들을 입에 올리기 한다. 심지어 고기가 먹고 싶어도 애굽에서 고기 가마 옆에서 살았었다고 오히려 과장해서 애굽에서의 삶을 추억하곤 했다.


심해지면 애굽을 생각하는데서 그치지 않았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소요를 일으키고, ‘모세아론을 위협하고 하나님을 향해 따지고 덤벼든다. 그리고 다른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억지를 부린다.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이스라엘의 그런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코앞에 두고 벌어지는 촌극임이 분명하다. 가나안을 두루 돌아 점탐한 사람들이 돌아와 보고를 하자, 모두가 하나같이 비관주의자가 되어 땅을 치며 울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며 고성을 질러댔다.


두 말 할 것 없이 모세고 여호와고 때려치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이 순간 참고 참으셨던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됐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당시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은 그 누구도 풍요로운 가나안 땅을 밟지 못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멸시하고, 뒤를 돌아보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가나안 출입금지의 철퇴를 내리신 것이다.


이 얼마나 큰 비극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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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