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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한호 교수의 목회와 상식’-35

교회와 공중도덕


우리나라는 최근 삼사십 년 동안 경제와 과학기술에 놀라운 발전을 이루었고 선조들의 문화유산도 비교적 잘 지켜내어서 여러 가지 면에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 같다. 그런데 여전히 미진한 것은 공중도덕이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 갈 때마다 불쾌하고 어이없는 일을 당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 같다.


필자의 느낌으로는 유쾌하고 마음 편한 모임은 교회뿐인 것 같다. 공중도덕 면에서 교회와 사회가 이렇게 엇갈려 나가는 것은 신자들의 높은 도덕의식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공화국에 안주하고 있다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멀리 혹은 가까이, 집을 나갈 때마다 느끼는 불편함에 대해 한 번 생각해 본다. 버스나 비행기가 종착역에 도착해서 모두 내릴 때는 앞자리에 앉은 이들부터 내리는 것이 당연한 순서임에도 불구하고 뒤에서 우루루 일어나 먼저 앞으로 나간다. 외국인들은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안 내리세요하며 거두어서(?) 내린다.


백화점이나 호텔 등 왕래가 빈번한 곳에서 문을 열고 나가려하면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 할 것 없이 문 열고 서 있는 사람을 제치고 앞서 나가버린다. 무례하고 몰염치한 행위이지만, 생각해보면 그들은 어릴 때부터 예절과 남에 대한 배려를 배우지 못해서 그것이 무례한 행위란 것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은 것 같다.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 마치 자기 혼자 있는 것처럼 큰 소리로 침을 모아 뱉고 손수건을 대기는커녕 손으로 입을 가리지도 않고 기침을 하는 이들이 있다. 많은 사람을 불쾌하게 하는 불결한 행위이다. 운전 중 보행자에게 양보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은 고사하고 보행도로 양 끝자락에 트여 있는 휠체어와 유모차 통로에 차를 세우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장애인들이 어쩌라는 말인가. 절대 금기 사항이다.


공항에서 여행 가방을 찾을 때는 바닥에 노란선이 그어져 있어서 그 선상에 서 있다가 자기 짐이 나올 때 앞으로 나가서 들고 나와야 하는데 유독 우리나라 여행자들은 회전 캐리어 앞에 붙어 서서 다른 사람의 시야를 가리고 접근을 막는다.


손대지 말라는 팻말이 붙었으면 손대지 않으면 되고 들어가지 말라는 곳에는 가지 않으면 된다. 외국 관광지에 가서 바닷가 야자나무에 올라가 코코넛 열매를 따는 동포를 본 일도 있었다. 다른 나라가 한국과 같이 치안이 느슨하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교회 지도자는 세상과 교회를 가르지 말고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복음은 교회에서만 자랑하고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가지고 나가라는 말씀이 아닌가. 신자들이 교회에서 느끼는 예절과 평안과 안식을 세상에서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를 위해 목사는 신자를 계몽하고, 신자는 이웃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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