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므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반열에 서 있다. 우리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로서 인간에게는 인간 생명을 지배할 권리는 물론, 인간 생명의 발전을 앞당기거나 유전학적으로 마음대로 할 수 없다. 기독교 생명윤리의 또 다른 핵심 원리는 인간의 존엄성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에 살인은 가증스러운 범죄이다.
이러한 존엄성은 생명의 신성함을 포함하고 있다.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 세상에서 악이 넘쳐났을 때 하나님은 대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정화하였으며(창6:11), 그 이후에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의 신성함을 “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9:6)라는 구절 속에서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키며 신성성은 경외심을 일으킨다.
이것은 인간생명이 숭배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하기보다는 신성하게 여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 19~20)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롬 14:8)
생명은 유한한 존재이므로 죽음을 회피하거나 극복하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은 쓸모없는 헛된 노력임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것은 결국 인간 생명에 대한 사랑에 기초해야 한다. 사랑은 기독교의 본질이다. 생명에 대한 사랑이 소멸되어 가는 이 시대에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이 사랑에 대한 회복이다. 끊임없이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이 사랑이야 말로 안락사가 일으키고 있는 찬반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V. 목회철학적 대안
이상과 같이 연구자는 안락사는 성경적으로 지지될 수 없는 것임을 말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문제는 그대로 남는다. 성경적으로 안락사는 지지될 수 없는 것이라 해도, 환자의 극심한 고통은 계속되고 있고, 환자와 그 가족은 경제적, 사회적 압박에 고통 받고 있다. 따라서 목회 현장에서 여러 가지 문제를 드러내는 안락사 고통에 대한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다.
연구자는 이미 일부 교회에서 시도되고 있는 대안들이지만 이론적으로 간략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앞으로 더 많은 교회들이 이러한 대안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사회적으로 확산 발전시키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며, 짧은 지면의 관계로 구체적인 모범 사례를 들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 호스피스(Hospice)
호스피스는 중세기 예루살렘 성지로 가는 순례자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도록 마련된 숙소(Hospes)에서 기인된 말이며, 임종의 병상에 있는 사람들을 돌보기 위하여 투병기간에는 높은 수준의 치료, 간호, 사회적·정신적 보살핌을 제공하고, 임종 시에 품위 있고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하도록 환자의 가족들 또한 같이 보살펴 주는 활동을 말한다. 한국에서는 1963년 마리아의 작은 자매회 수녀들에 의해 강원도 강릉에 갈바리 의원이 세워져 임종자들을 간호한 것이 우리나라 호스피스 활동의 시초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호스피스는 모든 환자를 거의 본능적으로 살려 내고자 하는 일반 병원과는 달리 ‘우리는 어떻게 죽음을 맞을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김종걸 교수
침신대 신학과(종교철학)
도서관장
한사랑교회 협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