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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의 정치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자리가 아닌 예수의 삶을 증언하는데 자신을 헌신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 순교로 이어졌던 초대교회 시대의 감독(총회장)직은 사실상 교회대표이자 박해받는 이들의 대표로 순교의 자리로 나아가는 영욕의 자리였다. 이후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고 서구 기독교 제국이 건설되면서, 교회대표는 돈과 권력과 명예를 누리는 자리로 타락했다. 크고 작은 종교개혁을 겪으며 서구 기독교제국은 해체됐으나, 교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맘몬의 우상인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의 영향을 받고 있다.


순교의 피로 세워진 우리교단도 21세기 들어 총회장이나 기관의 주요 대표나 임원자리를 선출할 때, 또는 사업총회를 진행할 때 마다 맘몬의 유혹이 끊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마다 교단 내 일명 정치 목회자들이 교단의 질서를 어지럽게 한다. 일부 정치 목회자들은 말로는 안 되는 일이 없고 한 발 더 나아가 교단의 미래를 위해 자신들이 십자가를 지겠다고 자처한다. 목회에 대해 열심을 내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 말로 표현하자면 능력 있는 사람으로 통한다. 세상 정치판처럼 교회와 교단을 좌지우지하는 정치 목회자들로 인하여 지금 교계가 시끄럽다. 교단정치가 화합의 정치를 지향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우리교단도 예외는 아니다. 교회가 구원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처럼 교단정치도 상생과 화합의 정치를 추구했으면 한다. 그러나 일부 목회자들은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목회자가 개인자격으로 목사직을 내려놓고 세상 정치를 하는 것은 본인의 자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교단과 교회의 여론을 왜곡해 세속화된 정치판으로 몰고 가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우리 침례교회는 교단정치에 대해 대다수가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왜냐하면 교단 내 개 교회 분쟁 등 문제가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정치 싸움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목회자들이 교단의 정치적 분쟁에 입을 다무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덕이 되지 않은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 싶어서 이다. 자칫 목회자 자신이 원하지 않는 정치적 싸움에 휘말릴 경우, 소문이 빠르게 도는 교단정치의 현실에서 하나하나 대응하다보면 제대로 자신의 사역을 돌보기 어렵다는 것을 통감한다. 그럴 경우 목회자는 자신의 영성은 물론 교회에도 큰 손실을 끼친다.


우리교단 목회자들은 혈연, 지연, 학연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한 집만 건너면 다 아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대립과 갈등보다는 다른 어떤 교단보다도 협력할 수 있는 좋은 여건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교단이 정치적 소용돌이로 계속 흔들리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또 서로 편을 갈라 대립과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침례교회의 정신과도 맞지 않다. 지금은 총회와 각 기관, 그리고 지방회와 개교회가 서로 합력하여 교단발전을 이루기 위해, ‘협동총회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이다.


교단 갈등으로 인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애쓰는 신실한 많은 일선 교회 목회자들이 왜 총회와 기관들을 돕지 않고 등을 돌리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봤으면 한다. 어쨌든, 자신들의 신앙양심을 팔고, 하나님의 정의와 화평의 정원을 훼파하는 세력인 여우들로부터, 우리 침례교단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터를 지켜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선지자 아모스가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5:24)며 맘몬에 빠지고, 종교적 타락을 질책한 이 말씀을 교훈삼아 우리 3200여 침례교회와 70만 성도들이 다시 복음의 자리에 서서 사회와 교단의 청지기로서의 역할을 다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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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