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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에 숨겨진 이야기>빛나고 높은 보좌와(새27/통27)

작사 새뮤얼 스테넷 (Samuel Stennett, 1727~1795)

작곡: 토마스 헤이스팅스 (Thomas Hastings, 1784~1872)


5대를 이어 목회한 가문

1.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

2. 지극히 높은 위엄과, 한없는 자비를 뭇 천사소리 합하여, 늘 찬송 드리네

3. 영 죽을 나를 살리려, 그 영광 떠나서 그 부끄러운 십자가, 날 위해 지셨네

4. 나 이제 생명 있음은, 주님의 은혜요 저 사망 권세 이기니, 큰 기쁨 넘치네

5. 주님의 보좌 있는데, 천한 몸 이르러 그 영광 몸소 뵈올 때, 내 기쁨 넘치리

 

한 젊은 목사는 런던 리틀 와일드가 침례교회에서 10년 동안 부목사로 섬겨왔다. 31세가 된 그는 이제 막 담임목사로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다. 전 담임목사인 조셉 스테넷 2(Joseph Stennett II)가 세상을 떠나자 교회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온 젊은 부목사를 새로운 목회자로 청빙한 것이다. 그는 얼마 전에 돌아가신 전 담임목사의 아들 새뮤얼 스테넷(Samuel Stennett) 이었다. 젊은 새뮤얼 스테넷은 자신이 전임자만큼 좋은 사역자가 되어야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사역을 물려받았다.


새뮤얼의 아버지는 참 좋은 목회자였다. 새뮤얼의 할아버지 역시 잉글랜드에서 목사이자 찬송 작가로 이름을 남긴 분이셨다. 그의 증조할아버지 역시 유명한 사역자였다. 또한 나중엔 그의 아들도 침례교 목사로서 목회를 이어갔다. 스테넷 가문은 5대에 걸쳐 목회를 이어갔고 특이하게도 집안에 조셉이라는 이름이 아주 많았다. 더구나 그들은 대를 이어오며 찬송을 지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다. 스테넷 가문은 성전에서 대를 이어가며 하나님을 섬겼던 구약시대의 레위지파를 떠오르게 한다.


레위인들도 가문을 이어서 회막 앞에서 찬송(대상 6:31~32), 성별된 자로서 주야로 찬양(대상 9:33, 23:5) 그리고 노래로 여호와께 감사(대상 16:7~36)를 했다. 새로운 목회자 새뮤얼 스테넷이 리틀 와일드가 침례교회의 강단에 선지 5년 만에 그의 이름은 영국 전역에 알려졌다.


애버딘의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는 그에게 신학 박사학위를 수여했고, 교인이었던 박애주의자이자 사회개혁자 존 하워드(John Howard)는 그의 설교에 대한 칭송을 쏟아냈다. 심지어 조지 3세 왕도 그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이같이 그의 명성이 널리 퍼지자 큰 교회들은 그를 청빙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리틀 와일드가 교회의 성도들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을 뿐더러 스테넷 자신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 그곳이 그가 목회에 대한 첫 사랑을 쏟아 부었던 곳이기 때문이었다.


스테넷 목사는 68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37년 동안 리틀 와일드가 교회를 섬겼다. 그는 죽을 때까지 다른 강단에 서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오로지 리틀 와일드가 교회에서 불태웠다. 새뮤얼 스테넷 목사는 어느 날 아가 510~16절을 읽고 큰 은혜가 되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에 대한 묘사를 읽으며 신랑 되신 예수님을 떠올렸다. 영감을 받은 그는 곧 빛나고 높은 보좌와”(27)를 써내려갔다.


빛나고 높은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주 예수 얼굴 영광이 해 같이 빛나네.” 예수님께서 죄인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시고 피 값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예수님께 찬송을 부를 수 있음은 얼마나 놀라운 특권인가. 스테넷 목사 가문이 속해있던 영국 침례교회는 다른 교단들보다 회중찬송 부르기에 대해 한참 늦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영국국교회와 장로교회가 시편가를 부를 것인가, 아니면 찬송가를 불러야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침례교회는 찬송 선택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찬송을 불러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를 놓고 열띤 공방을 계속했던 것이다. 새뮤얼 스테넷 목사의 할아버지인 조셉 스테넷(Joseph Stennett, 1663~1713), 벤자민 키이치(Benjamin Keach, 1640~1704) 그리고 존 번연(John Bunyan, 1628~1688)은 침례교회의 회중찬송 부르기를 지지한 사람들이다.


조셉 스테넷은 169737곡으로 구성된 성찬식 찬송을 발행해 사용했다. 또한 번연 목사가 쓴 ?천로역정?2부에 나오는 용감히 살려는 자여”(개편 564)는 지금도 널리 불린다. 호스라이다운(Horse-lie-down)에서 목회하던 키이치 목사는 1673년 교인들의 동의를 얻어, 마침내 성만찬을 할 때 찬송 단 한 장을 부를 수 있었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서 그는 추수감사주일에 찬송 부르는 것까지 교회와 합의했다. 그리고 비로소 1691년이 되서야 그 교회는 주일마다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오래 전에는 찬송도 마음껏 부를 수 없었다. 찬송을 부를 이유를 분명히 표현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 많은 사역자들의 헌신으로 우리는 언제든지 사람에 의해 지어진 찬송을 부를 수 있게 되었다. 다채로운 세계를 지으신 하나님께 다채로운 찬송을 부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쁜가!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5:13). 아멘.

김남수 교수 / 침신대 교회음악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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