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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붓 가는데로”-52

하나님의 섭리와 아버지의 性慾

일본 강점기에 살았던 우리들은 모두 불행했다. 그들에게 빼앗기고 찢긴 나머지 만주로 일본으로 모두 먹고 살기위해 우리 조상들은 고향산천을 등졌다. 나의 아버님도 일본 오사카로 가서 살았다. 공부도 못했고 기술도 없는 아버님이라 그냥 막노동으로 연명하고 계셨다.


나의 어머님은 그냥 고향땅에 떨어뜨리고 단신으로 일본 가셨던 아버지. 일본 가신지 3년이 되어도 아버님은 소식이 없는지라 할머니도 어머니도 궁금했었고, 들려오는 소식에 의하면 오사카에서 막노동하고 계신다는 것인데, 무슨 용기가 그리 대단하셨던지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르시는 어머님이 예천에서 부산으로 내려가셔서 거기서 연락선을 타고 오사카로 가서 아버님을 찾아내시고야 말았던 행운(?)을 맞이하셨다.

내가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은 어머님의 일본 외출로 인함이었다. 1937년 드디어 나는 일본땅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 자라면서 본 아버님 어머님의 관계는 물과 불의 관계 같았다. 두 어른들의 성격은 양극단이었다. 아버님은 느리고 어머님은 빠르고. 아버지는 태평이고 어머님은 조급하고. 그들이 80을 넘어까지 사셨으나 늘 으르렁거리는 삶을 사셨다.


내가 태어난 것은 어머님이 아버님 곁에 가셨다는 사실과 무정하기로 유명한 두 분이 그래도 어느 날 정을 통했기 때문이었다. 아버님과 어머니 관계가 다정하지 못했다는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슬하 육남매가 목격한 사실이 증거가 될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는가? 지금 나는 80을 바라보는 나이이고 지금까지 복음사역의 현역으로 뛰고 있는 지금의 나. 나는 어째서 세상에 왔는가? 어머님의 일본외출이 없었더라면 내가 1937년에 출생했을까?

 나는 어머님, 고맙소.”하면서 어머님 생전에 자주 말씀 드렸고, 여치 뱃가죽처럼 주글주글한 어머님의 뱃가죽을 어루만지며 나의 태아시절의 고향이라고 읊조렸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어머니 혼자서 나를 출생시켰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니 단연 그것은 아니었다. 아니야! 아니야! 어머님이 나를 홀로 낳으신 것은 아니야!


그럼 뭐야!

답이 나왔다. 내가 이 세상에 출생한 데에는 역사적 사건이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性慾이 나를 낳으셨다는 것. 아버님은 어머님과 아무런 애정도 사랑 없는 처지인데, 어느 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님의 성욕이 발동해서 어머니를 가까이 했고, 그래서 이 몸이 생겨나 세상에 나왔던 것. ! 참 유치한 유치원생 같은 생각이여.


자기의 성욕으로 생겨난 아들 목사의 간곡한 전도로 예수님을 모신 아버님은 천국 가신지 수십년. 아버님의 성욕의 결과가 지금 목사인 나. 지금 나는 누구인가? 전국을 다니면서율법과 복음을 갈라내는 복음 의사로 의료 활동 중인 나. 아버님의 애정 없는 부부사이에도 하나님은 아버님의 성욕을 섭리로 사용하셨다. 하나님은 권혁봉 복음목사를 그런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 보내 주셨다. 보내신 분은 하나님이시고 그 과정엔 아버님이 계셨고 그 아버님에게는 성욕이 있었다. 그리스도인은 무슨 일을 만나도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그 섭리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라지.

水流(수류) 권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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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경총회장 지덕 목사, 총회에 카니발 차량 기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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