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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윤리

목회자 윤리 문제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 현직 목회자가 유학생활을 하면서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다뤄진 뒤,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 사건은 곧바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으며 목회자의 소속교회와 신상이 공개되면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소속교단에서도 이 문제를 다루기 위해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속시원한 답변이나 제재조치를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성윤리 문제와 관련해 대형교회의 목회자부터 해외선교의 사역자까지 이런 일이 비일비재 하게 일어나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초대교회의 감독은 로마의 핍박과 유대교의 갈등 속에서 복음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성도를 보호하고 기꺼이 순교의 길을 걸었다. 많은 성도들이 탄압을 이기지 못하고 배교의 길을 걸었어도 교회의 지도자들은 순교가 곧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생각하고 기꺼이 그 험한 길을 피하지 않았다. 이같이 목숨으로 신앙을 지켜왔기에 오늘의 교회가 굳건하게 세워질 수 있었다. 수많은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던 선진들로 인해  한국교회가 부흥했다.


우리 침례교회도 마찬가지다. 교단의 전신인 동아기독교는 일제의 수탈과 목회자의 구금, 재산 몰수, 교단 폐쇄 등의 아픔을 지니고 있다. 어떤 환난과 탄압 속에서도 믿음의 선배들을 신앙의 본을 따르며 복음을 증거해 왔다. 그 정신이 바로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한 원동력이다. 하지만 잊을만하면 들려오면 목회자의 성추문 사건은 이 땅에 본이 되지 못하고 있다. 성추문이 불거질 때마다 소수 목회자의 개인적인 일탈로 치부하지 말고, 그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성직자의 추문은 교회에 대한 권위는 물론 전도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목회자가 성범죄를 범하고서도 회개하지 않고 강단에서 자신은 핍박받은 종이라고 주장해서도 곤란하다. 또한 무책임하게 강단을 떠나는 목회자, 쌍방 맞고소, 피해자를 마녀사냥 하는 일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목회자 또한 세상의 유혹에 쓰러지는 나약한 존재임을 잘 안다.


우리의 성숙하지 못한 모습들이 바로 불신앙으로 이어진다. 교회의 성 문제에 이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하느냐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성령의 능력으로 생명을 전하는 그리스도인은 십자가 앞에 바로 서 있어야 한다. 목회자가 성윤리 의식이 없는데 성도들에게 어떻게 올바른 복음을 전할 수 있는지 되묻고 싶다. 믿지 않는 사람들조차도 목회자에게 높은 윤리의식을 요구하고 있다. 성도는 목회자를 보고 믿음을 키워 나간다. 성도는 목회자에게서 나오는 말씀과 목회자의 성품을 보면서 함께 닮아가기 때문이다. 목회자 윤리문제에 대해 교단차원에서 윤리강령을 마련했으면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교단은 성추문이 발생할 경우 교회 내 분쟁으로 보는 경향이 대부분이다. 총회나 지방회에 호소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간섭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성문제는 자정능력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교회공동체에서 성도들 간에 대수롭지 않게 내뱉는 말과 행동이 큰 상처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한시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한다.
특별히 복음의 역동성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바른 신앙생활을 지켜야할 필요가 있다. 교회는 이단·사이비 세력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복음으로 무장하고 세상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목회자는 청렴결백과 솔선수범해야 할 것이다. 또한 한 순간의 실수로 복음이 무너질 수 있는 만큼 늘 깨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기 어려운 만큼 목회자는 말씀으로 날마다 거듭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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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