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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공과 화가

하늘 붓가는대로-68

나의 집 구리시 교문중학교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뻗혀있는 가로 벽에 두어 사람이 페인트칠을 하고 있었다. 몇 년 전 가로 벽에 페인트칠한 것이 비바람에 바래어져서 희미해진 몰골이 보기가 미웠던 차에 구리시에서 손을 보기 시작해서 페인트칠 작업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색 바랜 가로 벽에 페인트칠을 해나간 뒤를 보니 아름다웠고 마음이 시원하기도 했다.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청년 두어 사람이 큰 붓을 페인트 통에 덤벙 적시었다가 꺼내어 벽에 다가 척척 바르는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청년, 그대는 페인터(painter)라고 내가 던지니 말에 청년은 힐끗 나를 보긴 했으나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다시 말했다. “청년은 화가요라고 알아 듣게 말했다. 그제야 청년은 화가는 무슨 화가라고요, 그냥 페인트공인 데요 라고 자기 신분을 소개해 왔다.

나는 또 작업하고 있는 그에게 노인다운 설명을 했다. 화가는 영어로 painter, 즉 페인트칠 하는 사람이고. 당신은 페인트공이 아니라 화가라고 일러주었다. 그래도 그 청년은 화가는 따로 있고 자기는 그냥 벽에다가 페인트칠만하는 작업인이라고만 했다. 자기는 일당을 받고 고용된 페인트회사의 일군이라고만 고집을 피웠다. 할 수없이 나는 그냥 두고 내 갈 길을 가고 말았다. 페인트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정교하고 빈틈없이 균형 맞게 골고루 페인트를 칠해야 하는 기술이 요한다. 페인트칠은 벽화의 일차적업이다. 일차작업이 잘못되면 참화가의 붓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자기를 단순히 페인트칠하는 노동자라고 하는 자도 화가임엔 틀림이 없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페인트칠을 하면서 단순히 고용된 일당 잡부라는 평가절하 된 자기가치소유자와 당당히 화가라는 자기가치 소유자는 다 같은 일에 종사하는 동일인이라도 그 값도 하늘과 땅의 차이가 아닌가? 자기가 소유한 작은 것이 대단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남이 소유한 큰 것보다 더 큰 것의 소유자가 아닌가? 타인이 소유한 것이 아무리 크다 해도 나의 작은 것이 되지 않음이 사실이 아닌가? 자기존중, 그것은 자기에 대한 예의요 겸손이다. 자기 멸시, 그리고 자기평가가 절하는 자기에 대한 무례(無禮)요 폭행이다.


국가공직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자. 어떤 이는 장관으로 또 어떤 이는 국무총리로 후보에 오르고 청문회에 등장하는데 크고 작은 비리와 시민상식에도 어긋나는 행위들을 저질로 놓고 가진 곤욕을 치루는 것을 보고 때로는 아주 민망할 때도 있다. 왜 그런가? 자기는 그때 그 장소에서 그 정도의 인물밖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그런 일을 저지르고 말았던 것이다. 말하자면 더 이상 올라 갈수 있다는 자기 비전이 없이 살았다는 것이다. 즉 자기 평가절하를 자초한 것이었다. 자기는 장관도 될 수 있다는 자부심과 긍지를 잃고 있었기에 막상 기다리는 장관자리 앞에서 주저앉고 만 것이었다.

지금은 과장이지만 나는 장관도 될 수 있다는 긍지는 자기 활력의 진수이다. 자기가 낮은 painter인데 나중엔 높은 painter가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만이 이미 대화가가 아닌가?

페인트공이 곧 화가라는 긍지는 아름다운 자기존중이니 자기가 자기를 세워주지 않으면 누구인들 자기를 세워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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