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하나님 (누가복음 15장)

한주의 묵상-42

누가복음 15장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해 주신 말씀입니다.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입을 맞추니”(15:20).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한 목적을 잘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15장은 특별히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려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보여줍니다(1:18) 우리가 본문을 읽는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얼마나 보족한지 느끼게 됩니다.


현대인들이 가진 문제의 진실은 자연 안에서 자기를 계시하신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 그분의 심장을 알지 못하며 이해하려 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상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내가 어찌하면 하나님을 발견하고 그의 처소에 나아가랴?”(23:3)는 욥의 절규처럼 하면 될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욥의 간절함과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험하려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때로는 자기가 조종할 수 있는 하나님, 자기가 원하는 하나님, 자기 필요를 공급하시는 하나님을 원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이상한 개념을 가지고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하나님은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으셨든지 죽었다고 말합니다.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며 장엄하시고 놀라우시며 전능하신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구원받은 신실한 영혼들의 심장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사역하셨던 시대 서기관과 바리세파 사람들과 구약시대 장로, 대제사장들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 오로지 제사와 경배만 유일한 방법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그들의 형식주의에 가둬 두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오해했습니다. 1, 2절 말씀은 오해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의 도입부분입니다. 죄인들과 구별된 삶을 사는 그들과 교제하지 않으시고 죄인들과 먹고 마시는 주님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은 이해했지만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알지 못했으며, 모세 율법은 기억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알지 못했습니다(9:12,13).


15장 말씀이 무엇을 말씀하고 있습니까? 잃어버린 것을 찾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바로 이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이십니다(14:8,9). 예수 그리스도 안에 성부 하나님의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새로운 비전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시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임마누엘의 하나님, 메시야, 오직 한분이신 선생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의 수많은 선생 가운데 한 분으로만 받아드렸습니다. 예수님은 수군대는 바리세파 사람들과 서기관들에게 말씀으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 번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으시는 목자이십니다. 두 번째, 잃어버린 한 드라크마를 찾는 여인입니다. 세 번째, 집나간 망나니 탕자 아들을 불철주야 기다리며 고통당하(suffering)는 아버지입니다. 대부분의 설교에서 세 번째 비유는 탕자 아들에게 초점을 맞추고 비유의 주인공을 탕자 아들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이 비유의 주인공은 반항아, 탕자 아들을 기다리는 아버지입니다.

 

첫 번째, 우리가 보는 하나님은 잃은 양을 찾으시는 목자이십니다. 성경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도 목자이심을 밝히고 있습니다.(10:11;53:6) 인간은 누구나 선한목자이시며 위대한 목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면 소망이 사라진 황패하고 방황하는 인생을 살게 됩니다.

양의 가장 큰 특징은 길을 잃는 것입니다. 우리 목자이신 하나님은 아흔 아홉 마리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에게 더 귀한 가치를 부여하셨습니다.


두 번째, 우리가 보는 하나님은 잃은 한 드라크마를 찾으시는 여인이십니다. 여인은 귀중한 것을 잃어버렸습니다. 이 동전은 한 드라크마이지만 그녀에게는 특별한 가치를 가진 드라크마입니다. 동전의 특징은 동전 스스로 잃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잃어진 것입니다. 이 동전을 찾기 위해 등불을 켜서 집안 전체를 비추며 찾았습니다. 등불은 성령님의 상징이기도 하며 성도의 착한 행실이기도 합니다. 목자는 언제까지 찾았습니까? 찾을 때까지, 여인은 언제까지 찾았습니까? 찾을 때까지입니다

 

세 번째, 우리가 보는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아버지입니다. 우리는 이 비유에서 탕자 아들이 초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 비유의 주인공은 오로지 고통당하는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은 먼 나라에서 돼지를 치며 쥐엄 열매로 허기진 배를 달래야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겐 돼지 치는 일이란 저주입니다. 고의적으로 거역하고 떠나 저주의 삶을 살던 아들이 그곳에서 일어나 돌이켰습니다.(18,19) 그리고 스스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께 진실한 고백을 했습니다.(21) 아버지는 아들의 허물을 묻지 않으시고 회복시켜 주시는 분이십니다.(22~24) 이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정일 목사 / 청하교회



총회

더보기
‘부활의 기쁨’ ‘생명의 능력’
사랑하는 한국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기독교한국침례회 모든 교회와 목회자 여러분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26년 부활절을 맞이해,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기쁨과 생명의 능력이 한국교회와 이 나라, 그리고 온 세계 위에 충만히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25~26)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절망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희망의 선언입니다. 부활은 단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여전히 유효한 생명의 능력이요, 어둠을 이기고 미래를 여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입니다. 동시에 부활은 멈춰선 시대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변화의 능력이며, 낙심한 영혼을 다시 일으키시는 희망의 시작입니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세계는 여전히 전쟁과 갈등의 위기 속에 놓여 있으며, 그 여파는 고유가와 경제적 불안으로 이어져 각 나라와 가정의 삶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국내적으로도 정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