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발 전쟁의 포화가 결국 우리네 삶의 터전까지 덮쳤다. 이란과 이스라엘, 그리고 미국의 충돌로 촉발된 국제 유가의 급등은 단순히 경제적 지표의 변화를 넘어, 에너지 안보와 기후 위기라는 이중의 과제를 한국 사회에 던지고 있다. 정부가 공공부문 차량 2부제 검토 등 비상대책을 내놓는 비상시국 속에서,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를 단순한 사회적 불편함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이는 창조 세계를 돌보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명령이자, 탐욕으로 점철된 인류의 에너지 소비 행태에 대한 영적 경고이기 때문이다. 특히 각 지교회의 자율성과 성도의 양심을 중시하는 침례교회는 이러한 위기 앞에서 국가적 시책에 수동적으로 따르는 수준을 넘어, 성경적 청지기 정신을 바탕으로 한 선제적이고 자발적인 헌신을 보여야 할 때다. 침례교 정체성의 핵심 중 하나는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인간의 자유를 ‘책임 있는 자유’로 사용하는 데 있다. 침례(Baptism)는 옛 자아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남을 상징하며, 이는 곧 창조 질서 안에서 만물과 화해하는 삶으로의 초대를 의미한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개교회의 부흥과 성도의 편의라는 명목 아래 에너지 과소비와 탄소 배출에 무감각하
밟고 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면서도 마냥 영원성의 종속에다 꼬리를 달고 기지개를 켜보면서 걸음마를 시작한다 무너질 시각을 모르면서 생각하고 있다 존재의 가치를 망각한 체 연기 속에 생각을 드리우고 장고의 시각이 종지부를 내리치는 줄도 모르면서 시각이 연결 되면 시간이 되고 시간이 흘러가면 세월이 된다면서도 세월 속에 사라져가는 자신을 잊고 산다 내가 밟고 선 땅이 낯설지는 않아도. 바람 속에 찾아 오는 외로운 고독은 언젠가 혼자 가야 하는 신호탄이란 것을 잊고 산다고 하지만 잊고 살게 따로 있지 바보처럼 살면서 제일인척하고 산 것이 돌이킬 수 없는 석양이 다가서면 눈물질 것이라 의미도 없이 사는 것은 낭비한 인생이고 낭비한 것 같아도 길을 알고 살았다면 마지막 가는 길이 짐이 되지 않으리 땅 위에서 잘 살았다고 큰소리치지 마는 큰소리 칠 게 하나도 없지 남은 것이 없으니 후회하지 않게 위를 보고 걸어라 존재의 가치를 망각하고 살았었지 먹고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랬다고 누가 알아주나 열심히 먹고 살았던 시간을 자화상이 흐려지고 생각이 끊어지고 존재의 시각이 새롭게 다가서거늘 고집 부리지 말고 항복할지어다 따스한 온기가 감사히 여겨지거든 진실된 눈물이 흘려
오늘도 사랑하는 내 주님을 기다리네! 가실 때 다시 오신다던 그 약속을 믿고 오늘도 내 마음의 창가에 기대서서 먼 하늘 바라보네!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에 내 주님의 발자국 소리 들리는 것 같아 어느새 한줄기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흐르네! 철없는 내 마음은 이름 없는 한 마리의 작은 나비가 되어 먼 창공 높은 하늘로 사랑하는 내 주님 마중 간다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의 길목에서 우리 곁에 다시 부활의 계절이 찾아왔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는 절망과 어둠 속에 갇힌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의 빛을 선사한 인류 역사상 가장 경이로운 사건이다. 4월 5일, 전국 각지에서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고 일제히 부활의 기쁨을 찬양할 준비에 분주하다. 각 교단과 연합기구들은 이미 준비위원회를 가동하며 부활의 소식을 세상에 전하기 위한 채비를 마쳤다. 하지만 매년 반복되는 대규모 집회와 화려한 성가대 찬양 뒤편에 감춰진 우리 사회의 그늘을 돌아보면, 과연 부활의 진정한 의미가 현장에 온전히 전달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최근 주요 기독 언론들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해 부활절 연합예배의 핵심 화두는 ‘평화와 희망’이다. 이는 장기화된 경제 침체와 양극화, 그리고 전쟁으로 인한 긴장 고조 속에서 교회가 세상에 던져야 할 마땅한 메시지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선언문과 구호들이 행사장의 열기가 식음과 동시에 잊혀졌던 과거를 기억한다. 진정한 부활 신앙은 박제된 교리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통받는 이웃의 삶 속에서 실천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신뢰도 하락과 다
언론(言論). 사전적 정의로는 매체를 통해 사실을 알리거나 여론을 형성하는 활동을 말한다. 하지만 이 단어 앞에 ‘교계’라는 두 글자가 붙는 순간, 그 정의는 단순한 정보 전달 이상의 복잡하고도 숭고한 무게를 갖게 된다. 생애 첫 직장으로 침례신문에 입사해 현장을 누빈 시간은 그 무게의 실체를 마주하며 나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자리에서 사명을 다하며 산다. 평신도로서, 목회자로서, 혹은 사역자로서 저마다의 역할에 책임을 다한다. 교계 언론은 이 모든 이들이 모여 이룬 거대한 ‘신앙의 프레임’ 안에서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때로는 가장 고통받는 공간이기도 하다. 언론의 본질이 정직과 진실을 바탕으로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이라면, 교계 언론은 그 위에 ‘기독교적 가치’라는 거대한 기준을 하나 더 얹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기독교적 가치’는 때로 양날의 검과 같았다. 가장 마음이 무거웠던 지점은 ‘은혜’와 ‘헌신’이라는 이름 아래 자행되는 무조건적인 희생이었다.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로 정당한 절차나 상식이 가려질 때, 혹은 ‘은혜’가 갈등을 덮어버리는 무기가 돼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때, 초년병
현대인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고 연결돼 있는 듯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소리 없는 죽음이 일상이 된 ‘고독한 사회’가 자리하고 있다. 불이 꺼진 창문 너머, 누구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채 홀로 생을 마감하는 고독사는 이제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자화상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2024년)에 따르면 대한민국 1인 가구 비중은 전체의 35%를 넘어섰고 통계조사 전년도인 2023년 한 해에만 약 4000명의 이웃이 차가운 방 안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구축한 현대 문명의 공동체성이 얼마나 처참히 무너졌는지를 증명하는 엄중한 지표다. 유튜브 등 미디어와 현장 전문가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듯, 고독사의 핵심 원인은 단순한 경제적 빈곤이 아니라 깊은 곳에 자리 잡은 ‘관계의 단절’에 있다. 3월, 만물이 소생하고 새로운 시작의 활기가 넘치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소외된 이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더욱 깊어진다. 사회적 고립이 심화하며 발생하는 이 비극적인 현상에 대해, 이제 교회는 영혼 구원이라는 본연의 사명을 넘어 실질적인 ‘사회적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교회는 지역사회 내에서 가장 촘촘하고 건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보유한 유일한 공동체이기
20세기 중반부터 타 교단에서부터 여성 목사 안수가 늘어나기 시작했고 여성 목회자들의 활동도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교단 내의 일부의 교회들도 여성을 목사나 사역자로 임명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 당시의 가정을 포함한 사회 변화와 교회 안에서의 성평등과 여권 신장의 영향으로 해석될 수 있다. 갑작스러운 문화⋅사회 변화에 교단 내의 지도자들이 반발하기 시작했다. 특히 1970년대 후반(정확히는 1979년 근본주의자들이 총회를 장악)부터 2000년 전까지 교단 내에서 벌어졌던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과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의 싸움에서 근본주의자들이 승리하여 교권을 장악함으로써 여성의 사역과 역할에 큰 영향을 끼치며 변화를 가져왔다. 보수주의 근본주의자들은 성서 무오성과 전통적인 성서해석을 고수해 여성 목사 안수 및 사역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보수주의 온건주의자들은 대표적인 침례교 전통 가운데 하나인 지역교회의 자율성을 강조하여 여성 목사 안수 허용과 사역의 문제를 지역교회가 결정하도록 했다. 나름 균형 잡혀 보였던 교단의 양 세력의 균형이 1984년 총회에서 대의원들이 여성목사 안수 금지를 결정함으로써 무너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 결의안은 각
최근 ㈜지앤컴리서치가 조사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 결과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에 그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5.4%에 달했다. 신뢰와 불신의 격차는 56.4%포인트에 이른다. 이는 단순한 호감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향한 구조적 불신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도 아니다. 조사 추이를 보면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는 몇 차례의 조사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으며, 뚜렷한 반등 없이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특정 사건이나 논란 때문이라기보다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점차 굳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 내부에서는 여전히 교회 성장이나 교세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사회가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이미 다른 차원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교회 조직뿐 아니라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과 신자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에서는 목회자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3.7%로 나타났으며, 개신교인의 말과 행동 역시 불신 응답이 7
최근 ㈜지앤컴리서치가 조사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조사 결과는 한국교회가 직면한 현실을 냉정하게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교회를 신뢰한다는 응답은 19%에 그친 반면,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은 75.4%에 달했다. 신뢰와 불신의 격차는 56.4%포인트에 이른다. 이는 단순한 호감도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를 향한 구조적 불신이 형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치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최근에 갑자기 나타난 현상도 아니다. 조사 추이를 보면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는 몇 차례의 조사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해 왔으며, 뚜렷한 반등 없이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특정 사건이나 논란 때문이라기보다 한국교회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점차 굳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교회 내부에서는 여전히 교회 성장이나 교세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사회가 바라보는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이미 다른 차원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교회 조직뿐 아니라 교회를 대표하는 인물과 신자들의 행동에 대해서도 같은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조사에서는 목회자의 말과 행동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3.7%로 나타났으며, 개신교인의 말과 행동 역시 불신 응답이 7
처음부터 조선의 왕이 적색 곤룡포를 입은 것은 아니다. 이성계의 어진을 보면 청색 곤룡포를 입고 있었다. 이는 당시 명나라가 조선을 완전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권지고려국사(임시로 고려를 다스리는 사람)’라는 직책만 내렸던 굴욕의 상황과 관련이 있다. 이후 태종 1년(1401) 정식 책봉이 이뤄지면서 변화가 시작됐다. “세종실록”에서 세종 26년(1444)에 ‘대홍직금곤룡포’가 등장한다. ‘홍직(紅織)’은 적색으로 짰다는 뜻이다. 이 무렵부터 적색 곤룡포가 제도적으로 정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렇다면 왜 고종(조선 26대)은 황색 곤룡포를 입게 됐을까? 1894~1895년 청일전쟁 이후 일본의 승리하게 됐다. 일본은 조선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더욱 약화시키기를 원했다. 이런 이유로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되면서 고종이 황제로 즉위했을 때, 황색 곤룡포의 착용을 허용했던 것이다. 이는 외교 질서의 변화와 함께 상징 체계도 재편되었음을 보여준다. 권력은 색으로도 드러난다. 그러나 색이 바뀌었다고 권력의 본질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곤룡포는 권위의 상징이었지만, 단종의 비극이 보여주듯 권력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조선의 왕이 입던 곤룡포는 단순한 왕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