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방회는 독일 선교사 목회자로 떠날 전도사를 위해 목사안수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 목사 후보자 전도사는 침례교 목사안수 요건을 다 갖춘 자인 것만은 사실이나 갑작스러운 독일로의 선교 목회를 떠나는 만큼 서둘러 목사안수를 받아야만 했었다. 듣건대 목사 안수를 받는데 꽤나 시간을 요한다고 하는데 이 지방회는 속전속결식으로 목사안수를 진행했다. 그러나 결코 약식은 아니나 속식(速式)이었다. 이 지방회는 두어달 만에 면접시취, 구술시취, 논제시취를 끝냈다. 이미 독일에 체류한 전도사가 2주간의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곧 현지로 돌아가야 하겠기에 속전속결로 해줬다. 이 지방회는 물은 흘러가고 꽃은 피게 해야 하는 지방회였다. 듣건대 목사 안수를 받는데 엄청난 경비부담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지방회는 무경비 안수를 치렀다. 주변을 보면 시취위원이니 안수위원이니 해서 몇 차례 모일 때마다 식사대접, 그놈의 거마비에 혼줄이 나는 어린 전도사들의 처지였다. 그러나 이 지방회는 그런 전례가 없다. 지방회에서 모든 것을 사양하는 바람에 목사안수 후보자는 겨우 사정하에 간단한 중식이라도 제공할 수 있는 특전을 얻었다. 전도사를 독일 선교사 목사로 추천한 교단의 어떤 어른 목
조선 말기 당시 관직은 참봉이었던 홍봉조씨는 1850년경 일찍 무인도인 동해의 고도 울릉도(鬱陵島:답답한 언덕 섬)에 맨 먼저 들어와 살았다. 1890년 어느날 배를 타고 남쪽으로 독도(獨島)에 나갔는데 왜놈 어부들이 물개잡이를 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 어부들을 몰아낸 일이 있었다고 홍봉조씨의 손자 홍순칠(洪順七)씨는 말했다. 또 직간접으로 1950년초 어려서부터 저가 들어온 독도를 지킨 얘기를 아는대로 아래에 적어본다. 홍순칠씨가 초대 참모통장 최병덕 장군의 호위병으로 복무한 일이 있어고, 6·25 사변중 원산 전투에서 탱크를 타고 수색하다가 부상을 당해 1953년 봄 상사로 제대한 뒤 고향 울릉도에 돌아왔을 때, 울릉도 첫 개척자인 조부 홍봉조씨는 일본 사람들이 독도는 자기의 영토라고 표지판을 세워놓았다고 분노하는 말씀을 들었다. 통일신라때 거칠부 이사부 두 장수의 군대가 동해의 우산국(于山國)을 정복하고 남긴 울릉도 태하동 해변가 석벽의 글씨가 증명한다. 지금도 독도를 일본 영토로 주장하고 있는데 이 글은 자못 조심스러우면서도 역사적 사실이기에 강력한 자부심으로 쓰고 있다. 당시는 전쟁중이라 외교경로를 통해 항의한다면 유엔군 사령부 지휘하의 국군병력이
지난 5월 6일 저녁, 최우중 목사(보은구인)와 필자는 5박 6일 일정으로 필리핀 바기오에 소재한 헌드레즈타임즈아카데미중고등학교와 영어어학원연수원(이준성 선교사) 학생들에게 오카리나를 가르치기 위해 떠났다. 거의 4시간가량을 비행한 후 클락공항에 도착해 이준성 선교사와 조우했다. 1년만에 다시 만난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참으로 눈시울이 불거진다. 우리가 처음으로 교제했을때와 비교해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이 초지일관 변함없는 거룩함과 경건의 영성으로 점철된 그를 만날 때마다 마치 사도 요한을 만나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바기오에서 현지의 선교사역을 22년째하고 있는 이 선교사의 닉네임은 “요한 선교사”로 불리우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클락공항에서 바기오까지 약 3시간 30분의 거리를 중간 휴게소에 들려 한번 차를 마시고는 쉼없이 달려 이윽고 새벽시간에 목적지인 바기오 헌드레즈 아카데미 하우스에 짐을 풀고 장고의 여정을 달래기 위해 숙면을 취했다. 새날이 밝아오자마자 인자하고 상냥스러운 이준성 선교사의 아내가 정성껏 준비한 한정식으로 아침식사가 정갈하게 차려져 나왔다. 정말 솜씨가 가히 일품이다. 어찌나 필자가 제일 좋아하는 건강식으로의
“당신들이 떠나간 후 우리에겐 더 큰 일들이 남았지요. 약 800 가정을 돕는 일, 거의 수천 명의 영혼을 돌보는 일….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사람들을 맡기심에 감사하고 있어요!” 우리들이 단기선교한 필리핀 프라리델제일침례교회 마루자 청년이 서울교회 선교대원이었던 김정연 양에게 보낸 편지(이메일) 속의 내용이다. 또 오소리오 담임목사의 전화내용을 더해 간추려 본다. “우리는 한 달 동안의 양육계획을 짰어요. 첫 주에는 아는 사람 순으로 정리하고, 둘째 주에는 구원을 위해 새신자 교재를 사용하는 것, 셋째 주에는 반응의 평가를 살펴보고, 넷째 주에는 그들 결신자를 교회예배에 참석토록 초청하는 것으로 정했어요. … 우리는 각 영혼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임무와 큰 책임을 감수하고 하나님을 위해 모두 힘써 일하고 있어요.” 지난 두 번의 집회 중 수백 명의 결신자들이 있었는데 양육관리를 안하면 다시는 옥외전도집회를 안할뿐더러 30여명 전도단원은 다른 도시나 나라로 갈 것이라고 경고한 후의 소식이었다. 집회 준비를 의논할 때나 집회 후 떠나올 때에도 새신자 양육(follow-up)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강도 높게 부탁했는데, 지금 오소리오 목사와 성도들은 선교집
“자기가 만든 대로 자신이 돌려받는다” 인과보응으로 “죄(罪)는 지은대로 공(功)은 쌓은 대로 돌아온다“는 속담이다. 한국의 항공우주산업의 고온 플라즈마 연구로 아리랑 1호를 띄운 일이 있거니와 강대국들은 우주쟁취의 경쟁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한국 천문연구원 우주위험 감시센터는 1976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 지구궤도로 쏘아 올린 위성 7900여 개중 현재까지 운용중인 위성은 1900개로 나머지 5000개는 퇴락하거나 파괴되어 궤도를 돌고 있어 인공위성 파편 우주쓰레기가 포화상태로 치닫고 있다고 했다. 유럽 우주국에 따르면 지난 1월 기준으로 지름 1mm에서 1cm의 우주 쓰레기는 총 1억 6600개에 이르고 지름 1~10cm의 것은 75만개며 또한 10cm 초과는 2만 9000개라 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인간에게 관리를 위임한 아름다운 우주와 지구에 이들 우주 파편 곧 인공위성 파편은 평균 시속 2만 8000km로 초속 7.8km로 날아간다. 최근 10년간 대기권에 재진입 과정에서 전소되지 않고 지구 표면에 떨어진 1톤 이상의 인공 우주물체는 연평균 420여개로 모두 합쳐 약 100톤에 이르고, 최근 50여 연간은 약 5400톤이 지구 표면에 떨어진 것
지금 무속 종교에도 무녀들이 단골로 읊조리는 주문이 있다. 그렇거늘 소위 문화 종교인 자기 종교의 경전을 잠시라도 뒤로 하고 경전외적 말들을 늘어는 것은 가관이다. 이렇게 말하면 한가롭기 그지없는 노목사의 부질없는 한담이라 할지도 모른다. 동네 전신주에 매달려 있는 광고지 인쇄물 서두에 불교의 어떤 중의 글이 실렸기에 읽고 있었다. 짧은 글에 인도의 타고르 시인과 자기 종교의 명승 성철의 이야기를 주로 실었다. 그 방대한 팔만대장경의 어느 한 소절을 인용할 수도 있었지만 깜깜소식이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내가 스스로 우습긴 마찬가지다 성경에 이런 말도 있지 않나.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자와 같으니라”(잠26:27) 중이 타고르와 제자의 대화를 실은 것이 그들 종교의 교리일까? 하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으니까 실었겠지 하는 생각도 든다. 자기 종교경전에서 가르칠게 없으면 곁눈질하기도 한다. 타고르에게 여러 제자가 있었다. 어느 날 제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중에 한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선생님, 세상에서 인생의 승리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다.” 이 때 다른 제자가 또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하나님께 무진장으로 모든 것을 받았다. 태양은 태양 광선을 우리에게 준다. 땅도 우리에게 결실을 준다. 땅은 줌으로써 상실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더 많이 얻고 더 많이 받아들이는 것이 땅의 법칙이다. 땅이 많이 내지 아니하면 땅은 받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땅은 풍성하게 자꾸 내기 때문에 풍성하게 도로 받는 것이다. 모든 동물 세계도 마찬가지이다. 동물들도 자기 새끼를 낳고 씨앗은 뿌려져서 또 씨앗을 심어 풀이 나게 되는 것이다. 식물은 수없이 많은 종자를 낳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법칙이요 자연법칙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것을 그냥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이 모든 세계의 것들을 거저 주시고 사용케 하셨다. “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2:8)고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해, 달, 별 지구상의 모든 것 공기, 물, 땅, 바다, 무생물, 동물, 식물을 비롯한 모든 생물을 주셨다. 성경은 만인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하나님이 친히 주셨다(행17:25)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주신 만물을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만이 친히
모든 성도는 약속이나 한 듯 함성을 내었다. “쉬~~이젠 허리 펴고 살겠습니다.” 언제는 죽어있었나? 그 답은 내가 보류하련다. 성도들의 표정은 밝아졌다. 전보다 더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다짐해 본다. 나는 그들 앞에 “제발 더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엉뚱한 듯 한 당부를 했다. 지금까지 규정에 의한 예배 참여, 억압에 의한 헌금생활, 전통에 의한 경건생활 등 모든 그리스도인 생활의 패턴을 잠시 뒤로 하고 새로운 것을 따르도록 했다. “봉사하고 싶거든 하세요”하니까 어떤 성도는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으면 어쩌야 되느냐고 묻기에 “봉사할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더니 “그런가요?” 응답하기에 “그런거요.”하고 나는 일러줬다. 율법과 복음의 이별을 모르는 교회는 애매한 교회이고 결국 고름이 피 되지 않기에 고름이 그냥 머물다가 온몸이 상하게 됐다. 나는 문제 해결을 “복음”제시로 했다. 해결은 간단했다. 좋은 예가 되지 않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북한을 보자. 북한이 왜 저렇게 큰소리치느냐. 원자핵을 보유했다는 것이라 하지 않나. 교회는 복음이란 원자핵을 보유해야 세상 앞에 당당할 것이다. 또 복음의 핵 없는 교역자는 힘을 못 쓰게 되
7살 1학년 때 한상철, 전원술, 이종철 등 5학년 형들을 따라 울릉도 저동 내수정 바위 사이에 우럭을 잡으러 따라 갔다. 형들은 그날 평균 15마리 정도 잡았는데 나는 외삼촌이 미끼를 끼우는 방법을 가르쳐주신 말씀대로 했더니, 평생 처음으로 무려 28마리 우럭을 잡아 줄에 고기의 아가미를 끼워 끌고 집에 돌아왔다. 엄마 아빠가 매우 놀랐고 대우가 달라져서 그 후 일요일이면 우럭을 잡아와서 가족들의 좋은 반찬이 됐다. 중·고등학생시절 교회에 다니면서 누가복음 5장 1~11절의 성경말씀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다. 베드로는 제자가 되기 전에 갈릴리 호수를 뒤지며 고기잡이 어부로 뼈대가 자란 훌륭한 어부였는데, 그날 밤은 고기를 잡지 못하고 그물을 터덕터덕 씻고 있는데 어찌 나사렛 산골 동리에서 온 예수에게 배를 빌려주고 대낮에 시킨 대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렸더니 그물에 가득 찬 고기를 두 배에 가득해 채웠던가? 목수 양반이 무엇을 안다고 고기잡이 전문가인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렸던가?”(눅5:5) 이 기적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목회를 할수록 어릴 때 우럭잡이 경험으로 차츰 깨달아졌고 실천하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베드로의 과거 경험, 지식, 어부로서
“심은 대로 거두는데서 봄에 심어야 가을에 거두듯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9:6) 아무래도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된다. 넓은 밭 혹은 넓은 등에다가 많이 심어야만 가을에 많이 거둘 수 있다. ‘수풀이 있어야 도깨비가 나온다’는 옛말이 옳다. 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다. 그런데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조금 심으면 조금 거두는데도 불구하고 많이 거두려고 하는 사기꾼과 포학한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남의 삼밭에 들어가서 밤사이에 삼을 전부 캐어서 도주한 사람들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이 양육한 염소 모두를 도둑질해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40여년 한미전도대회에 통역해온 중에 미국 텍사스주의 아말리로에서 온 농부 성도는 비행기로 씨앗을 뿌리는데 가을의 밀 수확은 작은 산봉우리를 이룬다고 간증했다. 많이 나눠주면 많이 받고 오그라진 손은 줘도 받을 수가 없다. 너는 네 식물을 물 위에 던지는데 어떻게 여러 날 후에 도로 찾는가? 그것이 씨앗이 되어 많은 열매를 거둬 드리게 한다는 것이다. 많이 전도하고 많이 선교하는 교회도 역시 하나님께 많은 복을 받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