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 종교로부터 빈 수레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자. 전한 내용이 없으니 어떻게 한다냐? 밤낮 설파해봐야 뻐한 그 말이 그 말이고 그래서 내용이 따분한 종교의 생리, 그냥 있을 수 없으니 뭔가를 내보여야 하기도 하겠고 그래서 전통문화니 뭐니 이름을 붙여서 행사를 하고 있는데, 약수터 약수 이야기, 천사가 내려와서 마시고 비상천했다는 전설이야기, 풀잎 뜯어 녹차 만드는 묘한 차 만들기, 거기다가 어떻게 차를 마서야 하느냐는 다도(茶道) 강습, 전통주 만들기에 이어 전통 된장과 고추장 만든다고 늘어진 항아리의 행렬들. 찬란한 문화유산이라고 건축 색채 그리기, 고전전인 한국 전통적인 춤 이야기, 불교의 여승의 승무(僧舞)는 유명한 춤이요, 그 묘사는 대단한 시(時)였다. 그 한절을 여기에 소개하면 이런 것이렸다.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 파르라니 깍은 머리 / 박사(薄紗)고깔에 감추오고 / 두 볼에 흐르는 빛이 /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 조지훈 나는 어린 시절 아스팔트가 아닌 흙과 자갈로 이어진 소위 신작로(新作路) 길 위에 황소가 끄는 수레를 익히 보면서 살았다. 빈 수레는 유난스럽게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그 위에 빈 드럼통
빌리 그래함 목사는 “천사론”을 쓴 후 오랫동안 숙고한 후 발간했다고 한다. 그는 여러 가지 많은 사례를 들어 천사의 존재와 역할을 설명했다. 오늘날 주님과 성령의 인도와 보호 및 천사의 인도와 보호에 대한 혼돈이 있다. 사도행전에는 주님, 성령 및 천사의 인도와 보호는 분명히 문자적으로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인도의 성자 선다 싱(Sunder Signer)의 전기를 보면 한 번은 히말라야의 티베트고원에서 전도를 하다가 라마승 추장에게 붙잡혀 깊은 구덩이에 던져진 일화가 있다. 물 없는 깊은 웅덩이에 수많은 뼈와 살 썩는 냄새 속에 3일 밤낮 인사불성으로 기도했다. “나의 하나님, 나의 사명 다할 때까지 나를 지켜 주옵소서!” 사망의 웅덩이에서 며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왼쪽 높은 곳에서 자물쇠 여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리더니 “밧줄을 내리니 그것에 매달리시오!”라고 누군가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듣고 밧줄을 잡아 나온 뒤 다시 자물쇠가 채워졌으나 거기에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천사의 구조에 감사기도를 드리고 읍내에 나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전했다. 관장은 다시 선다 싱을 체포하고 사람들을 불러 열쇠를 훔쳐
어떤 예술가가 전하는 말이 내 가슴에 찡하게 와 닿았다. 그것은 “예술가는 직업이 없다”는 것이었다. 예술을 직업으로 삼는다고 일반인이 알고 있는 상식과는 거리가 아주 먼 고백이었다. 직업이 없다는 그 예술가의 뒷얘기를 들어보니 과연 그들에겐 직업이 없다는 말이 이해되었다. 예술은 예(藝) 자체를 사랑하는 행위다. 예술가는 예술을 팔자고 출산(出産)시킨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음악이든 그림이든 무용이든 간에 그 자체들을 사랑해서 이것 끝나고 나면 누가 돈 주겠거니 하고 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의 화가 이중섭 화가인들 그렇지 않았겠나. 그가 죽은 뒤, 그의 그림값이 나간 것은 화가와는 별 문제였었다. 순수한 예술정신! 그것을 사랑해서 그것을 하다보니 밥도 옷도 생긴 것이다. 그것이 직업으로 보인 것은 순전히 사람들의 부산물적 착각이다. 적어도 예술가의 철학은 그렇지 않은가 싶어 주제 넘게 내가 정리해 주는지도 모른다. 가령 산 속 숲에서 날아가는 백조가 아름다워 자기를 잊은 채 즐기고 있는 감미자(甘味者)에게 어떤 장난꾸러기가 찾아와서 백조가 날아가는 횟수를 잘 헤아려 보라 하고 그것을 한 번 볼 때마다 돈을 10만원 지불하겠다 했더니 이 감미자는 한
“이 사건 공소사실은 앞에서 본 바와 같이 범죄의 증명이 없는 경우에 해당되므로, 형사소송법 제 325조 후단에 의하여 피고인들에게 각각 무죄를 선고하고, 형사소송법 제 440조 본문에 의하여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의 요지를 공시한다” 서울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판결서 낭독에 이어서 “이 무죄 사실을 언론에 알리기를 원합니까?”의 질문에 대답은 “예, 40년 전 일이지만 이제라도 알렸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10분도 안되어 재판은 끝났다. 투옥시켜 재판받을 때와 비하면 정말 아쉬움을 남긴 시간이었다. 40년 전 긴급조치하에서 다 기록할 수 없는 사연은 두 번의 중정압송과 극심한 조사 후 검사의 심문을 거쳐 서대문 구치소에 수감되고 8개월간 2차에 걸쳐 고법에서 결심공판 끝에 부장판사는 집행유예선고 후 최후진술을 물었다. “본인은 문 닫으려는 세 교회를 찾아가 고생하며 목회하느라 이제 와서 생각하니 친족들에게 전도 못한 죄가 통렬하게 느껴집니다!”고 대답했다. “옥중에 갇혔을 때에”(마25:36) 속죄를 위해 친족과 수감자들 200여명에게 최선으로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전도에 힘썼다. 세상 재판관 앞에서 최후 진술한 것처럼, 언젠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침례교단 문인들의 문예지 목산문학지에 계인철 동역자가 부탁하기에 아래와 같은 에세이 두 편을 보냈다. 한 편의 내용은 이런 것이었다. 몇 일 뒤에 전기의자에 앉아 사형집행을 당할 그리스도인 사형수가 살날은 불과 이삼일 밖에 없는지라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 해 놓고 갈 일이 무엔가 생각했었는데. 도무지 해야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사형수 수감 독방에서 무엇을 하겠는가? 봉사하고 싶어도 봉사 받을 자도 없고. 그는 마침내 험하게 쓰던 자기 수감방을 깨끗이 하자고 생각한 뒤 바닥과 벽을 천정을 마르고 닳도록 닦고 문질러 광채가 나는 방으로 만들어 놓은 뒤 전기의자에서 마지막을 보냈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한편 에세이의 내용은 또 이런 것이었다. 나의 어머님은 촌노였고 일자 수식하되 귀로만 들은 예수천당 신앙으로 살다가 가셨던 모친인데, 교회마루바닥에 뒹구는 폐지처럼 된 낡은 성경책을 그냥 두고 보기에 민망해서 집으로 가져와서 어떻게 이 성경책을 대우할까 생각 끝에 묘안이 떠올랐지 뭐야?! 어머님은 그리스도 가정인 내 집에도 귀신 쫓아낼 양으로 성격책장을 한 장씩 찢어서 벽에도 붙이고 대문에도 붙였던 것. 왜냐하면 성경에 예수 이
오스본 목사는 미국 오클라호마 주 포카세트 근방 농장에서 태어났다. 13형제 중 7번째 아들로 태어나 농장에서 자라면서 시골학교에 다녔다. 12살 때 형은 몇 일전 그가 먼저 예수님을 믿고 난 후 나를 데리고 믿음의천막교회에서 열린 부흥회에 데리고 갔다. 찬양할 때 피아노를 쳐 달라는 부탁에 기꺼이 승낙했고 복음전도자의 초청시간에 나는 즐겁게 회개했다. 그날 이후 나는 비록 농장에서 일하다가 늦게라도 예배에 참석했지만 어떤 땐 예배에 불참했기에 여러 번 울었다. 영적 갈망 가운데 오래된 대리석 바위에 엎드려 기도할 때 나는 주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한 없이 울었고 그 때 주님의 복음을 위한 부르심을 느꼈다. 15살 때 부흥사를 따라 천막집회를 도왔다. 이제껏 농장에서 일해 온 것보다 훨씬 넓고 큰 책임과 복음의 빚을 갚기 위해 고향과 부모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두 해 반을 부흥사를 따라 다니다가 드디어 캘리포니아 로스 바노스 집회에서 데이지 아가씨(Daizy)를 만났고 이듬해 18살이 되던 해에 결혼했다. 1944년 봄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부흥회를 인도하였고 드디어 목사안수를 받았다. 이듬해 아들이 태어난 후 교회를 사임하고 인도 선교사로 갔으나 기후와
휴식이란 무엇인가? 병을 고치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해서 휴식(rest)이 필요하다. ‘휴식’이란 가장 오해하기 쉬운 단어이다. 휴식이라면 흔히 술이나, 커피, 홍차, 소다수와 같은 자극성 음료를 마시며 앉아 있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휴식이란 그런 의미의 휴식이 아니라 모든 활동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움과 고요함 속에서 쉬는 휴양을 말한다. 휴식은 육체와 정신과 영혼의 평화이며, 근심과 걱정으로부터 벗어나 자아의 원기를 회복시키는 것을 뜻한다. 휴식으로 몸과 마음이 모두 다시 신선해지는 것이다. 휴식(rest)이란 단순히 다리를 포개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자세로 앉아 있으면 발에 피를 공급하는 동맥에 많은 영향을 주어 혈액의 순환을 약화시키게 된다. 다리를 포개고 앉으면 심장에도 부담을 주므로 두 발바닥이 바닥에 닿도록 해야 한다. 면역학적으로 휴식한다는 것은 전신에 피의 순환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구두나, 내의나, 벨트나, 스타킹 같은 것을 죄어 입고 있다면, 앉아 있던 누워있던 그것은 휴식이 아니다. 최선의 휴식을 위해선 벗어야 한다. 만약 옷을 입어야 한다면 느슨하게 입어야 한다. 종종 사람들은 “나는 쉬어야만 한
“형, 강도야!” 옆에 한 이불 속에 잠자던 아래 동생 명도가 두렵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나를 흔들어 깨웠다. 얼떨결에 들으니 부엌에서 “바스락, 땡그랑” 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긴장한 나머지 가만히 소리를 들으니 부엌을 뒤져서 무엇을 먹는 것 같았다. 약간 안심을 한 나는 불을 켜고 문을 열고 나가니 강도가 아니라 남루하게 옷을 입은 거지가 발견되었다. 그 때는 대학시절에 남녀동생들과 함께 얼마동안 자취생활을 하고 있을 때였다. 초가지붕 전세집이 홍도동 언덕 위에 외따로 있었으니 거지가 지나가다 찾아온 것이었다. 한 밤중에 남의 집 부엌에서 밥 뒤지는 것이 어쩐지 불쌍한 생각이 들어 저녁 먹고 남은 밥과 반찬을 갖고 그를 데리고 들어와 이왕이면 추운 날씨라서 방안에서 먹게 했다.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허겁지겁 다 먹어치웠다. 나는 그에게 이왕 들어왔으니 이불에 들어와 잠자고 가라고 했는데, 동생들은 나의 하는 처사를 매우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큰 이불이라 우리 셋이 늘 같이 덮고 잤는데, 그 날 저녁은 우리가 잠든 후 그가 이불 속으로 내 옆에 끼어 들어와 함께 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시간 전에 얼굴 세수를 하고 방에 들어
그렇게도 잘 들리던 우측 귀가 먹통이 되었다. 하나님이 두 귀를 주신 이유는 한귀가 사고 났을 때 비상용으로 두신 것이었다. 콧구멍이 두개인 것도 감기가 걸려 코가 막힐 때 한 콧구멍만 막히고 다른 콧구멍으로 숨을 쉬라는 하나님의 인체조직에 관련된 섭리이다. 두 눈이 있는 이유도 그렇고 양팔 양다리가 있는 이유도 그렇다. 하여튼 내 경우에는 우측귀가 먹통이 되어 좌측 귀로 듣긴 하는데 아무래도 두 귀로 듣는 것만 못하다. 결국엔 나머지 한 귀도 못쓰게 될 것이다. 그런데 왜 노인의 귀가 어두워지는가 그 이유는 알고 보니 무슨 대오(大悟)나 한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아래와 같이 시로 썼다 : 제목 : 노인이 귀 어두운 이유 노인이 귀 어두운 이유는 세상소리 이제 그만 들으라한 것. 보청기는 왜 달고 있느냐 무슨 소리 더 들을려고. 세상소리 듣고자 하거든 관세음(觀世音)하라. 소리는 듣는 것이 아니라 보는 것이다 하늘 귀 돋우어 하늘소리 들어 보게나. 사람 사노라면 물리치기 보다는 차라리 받아들임이 더 평안할 때가 많다. 공격보다는 방어자세가 더 전략적일 때가 많다. 공격이나 방어나 간에 다 전투에 필요한 양면이지만 살다보면 “아니요, 싫소”보다는 “예, 좋
“십자가로!”(Ⅱ) “한 전도사, 내 배 두들겨봐!”해서 다가가서 두드려보니 “통통 둥둥”소리가 났다. “한 전도사가 나에게 시킨대로 오늘 문막교회 가서 설교하고 저녁은 국수(냉면)를 주는 대로 세 그릇 다 먹었더니 배가 너무 불러서…” 언젠가 훌륭한 선교사가 되려면 한국인 영혼을 사랑하고 한국말 잘 배우고 음식도 주는 대로 잘 먹어 한국 문화에 적응해야 된다고 충고했었다. 나는 그가 십자가를 지는 모습에 눈여겨 보았는데 과연 일동 선교사가 되셨다. 군대시절 원주군인 복지센터에 근무할 때, 하다윗(David Howle) 선교사는 농담으로 목사님을 “목사놈”이라 부르곤 했다. 혹시 나를 만날 때나 김학준, 심영근 전도사를 만날 때 “한 전도사놈, 김 전도사놈, 심 전도사놈”이라 해서 처음에는 ‘선교사치고 교양 없이 잘못 배웠다’고 생각했으나 그 후는 ‘그러려니’하고 웃었다. 그가 선교사로 나와 연세대에서 한국어를 2년간 배울 때 말이 서툴고 발음이 잘못 나와서 목사님을 “목사놈, 목사놈” 이라 해서 큰 실언을 했었는데 농담으로 가끔 “전도사놈”이라 했으나 전도사놈의 “놈”이 안되어야겠다는 경종의 말로 나는 이해하고 받았다. 주일 학교 때부터 그 교회 다닌 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