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도시, 붉은 땅에서 소식을 전합니다. 그 동안도 평안하셨는지요?뉴스를 통해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처구니없이 수많은 학생들이 꽃다운 나이에 참사를 당했다는 소식에 경악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나라의 미래의 주인이고 보물들이 한 사람의 무책임함 때문에 희생을 당하였음을 보면서 리더의 책임과 의무를 지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느낍니다.이곳은 3~4월에 바람이 많이 불어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날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병원을 찾고 있습니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폐가 나쁘다고 할 정도입니다. 매일 모래 바람이 끊임없이 불어와 창문을 닫아 놓아도 틈새로 들어와 집안이 온통 모래 먼지랍니다. 머리는 매일 감지 않으면 빗이 내려가지 않습니다. 하루에 한번 물자동차가 물을 뿌리고 지나가지만 도시가 온통 모래바람으로 덮여 뿌옇고 온종일 휙휙거리는 바람 소리를 들으면서 완연한 봄을 맞기 위해서 힘든 시간을 감내하고 있습니다.오랫동안 동역자님들이 기도해 주셨는데도 불구하고 6개월 째 선교활동 라이센스를 받지 못했습니다. 기관의 담당자의 말은 작년 하반기에 종교법의 세부 조항들이 나왔고, 올해부터 직인 및 양식들이 바뀌어졌는데 새 직인을 받
사도 바울 따라 산 넘고 바다 건너모든 길이 차단된 저 산정에 오르기 위해 많은 도구 필요치 않네구부러진 막대기 하나, 낡은 옷 한 벌로 족하네구름도 쉬어가는 저 산정 내려오기 위해 복잡한 서류 필요치 않네그동안 빌려 입은 낡은 육신 벗어놓고 바람밧줄이면 족하네-메갈로 메테오른이병구 지각티스 강가에서유럽의 복음화는 바울 일행이 드로아에서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로 직행해 네압볼리에 도착함으로 시작됐다. “신도시”라는 뜻을 가진 작은 항구도시 네압볼리는 비잔틴시대에는 “크리스토폴리”로 불리다가 오스만통치 이후로는 “말잔등”이라는 뜻의 까발라로 불리고 있다. 까발라에는 사도 바울의 “비마”자리가 있다. 비마란 강단이라는 뜻인데 배에서 내린 바울이 여기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처음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비마자리에는 바울이 마게도니아인의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건너온 일화가 모자이크벽화에 그려져 있었다. 우리 일행은 까발라에서 일박을 하고 다음날 호텔 측에서 마련해준 장소에서 주일예배를 드렸다. 우리의 순례는 네압볼리에서 시작해서 빌립보와 암비볼리, 아볼로니아, 베뢰아를 거쳐 데살로니가와 메테오라와 고린도 그리고 아테네로 이어졌다. 그리스반도를 북에서 남으로 종단하는
봄의 향연이 만개한 계절에 건강하셨는지요? 주안에 문안을 드립니다. 늘 살의 마음을 다해 섬기시는 담임목사님! 그리고 성도님의 기도와 사랑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는 여름이 이제 한가운데로 향하고 있는 계절입니다(낮 36도). 저희는 늘 기도덕분에 건강하고 평안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 기도에 힘입어, 주님 주신 사명으로 마음을 다잡고 영혼을 살리는 일에 충성하고자 합니다. 1. 태국의 사태 속에 복음전파에 합당한 정치·사회적 안정을 위해 기도 부탁드립니다.태국은 2006년 9월 19일 쿠데타가 발생한 후 8년이 접어드는 현재까지 태국에는 정치 불안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대규모 시위가 6개월여 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태국의 극심한 정치 불안은 지역갈등과 계급갈등으로 번져 거의 내전상태로까지 비화되고 있습니다. 그 근본적인 원인은 탁씬 이라는 인물과 그의 집권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1994년 탁씬은 팔랑탐당에 입당한 후 외무부장관과 부총리를 지냈으며, 1998년 직접 타이락타이당을 창당 후, 2001년 선심성 공약을 내걸어 태국 총선을 휩쓸고 태국 총리가 되고, 임기를 마친 탁씬은 2005년 선거에서도 이겨 탁씬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정
(파묵칼레)늦은 저녁 카이세리공항을 나서자 투어버스는 우리를 에바노스의 에브라시아호텔에 풀어놓았다. 드디어 터키중부의 갑바도기아에 온 것이다. 다음날 우리는 파사바, 젤베, 괴레메, 우치히사르 계곡을 둘러봤다. 이 계곡들은 오래전에 에스시에르산의 화산폭발로 형성된 기묘한 지형이 특징이다. 우연히 이곳을 여행하던 벨기에 작가 피에르 클리프드는 버섯모양의 원추형 봉우리들과 토굴속의 집단거주지를 보고 만화영화 “스머프”의 아이디어를 얻었다. 특히 괴레메계곡에는 크고 작은 365개의 동굴교회가 있었다. 오랜 세월로 인해 훼손을 피할 수 없었으나 일부 예배당은 여전히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기법의 성화로 장식되어 있어 보는 이의 눈을 복되게 하였다. 본래 이들 예배당과 주거지는 외부에 전혀 노출되지 않았으나 오랜 풍화작용으로 인해 허물어지고 훼손되어 지금은 속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괴레메동굴교회를 둘러보고 차로 30여분 떨어진 데린구유로 갔다. 데린구유는 “깊은 우물”이란 뜻을 가진 지하도시다. 깊이가 55m에 8층 높이의 지하도시로 7천명은 충분히 살 수 있는 규모다. 동굴은 지하로 깊이 연결되어 있는 데 통로마다 외부침입을 막기 위해 돌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지하도시에
모든 여행은 저마다 신성한 의미를 갖는다. 헤아려보면 들에 핀 들풀조차 의미덩어리일진데 삶의 한 조각을 떼어 잠시 낯선 거리에 세우는 일이야말로 얼마나 의미 있겠는가. 낯설음을 통해 신선한 혼란을 맛보고 다름을 통해 공존의 방식을 체득하는 일은 여행이 주는 큰 혜택이다. 더욱이 팔레스틴이라는 변두리에서 시작된 기독교를 세계화시키는 데 공헌한 바울일행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일은 성경을 경전으로 삼는 자들에게 흥분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번 행로를 단순한 여행에서 순례로 격을 올려도 무방하리라.2014년 4월 1일을 불과 5분 남겨놓고 우리는 잠시 조국을 떠났다. 어둠이 자욱한 인천공항을 이륙한 철새는 묵직한 몸을 이끌고 하염없이 서쪽으로 날아갔다. 갈 길이 멀다는 사실에 주눅 든 여행객들은 담요를 목까지 끌어당겨 잠을 청하고 어떤 이들은 이어폰을 귀에 꼽고 의자에 붙은 모니터에서 액션영화를 골라보았다. 허리가 뒤틀려 화장실에 한두 번 다녀오고, 배달된 밥상을 두어 차례 비우는 동안 철새는 새로운 둥지를 찾아 쉼 없이 날개 짓을 하였다. 드디어 이스탄불이다. 땅에서 발을 뗀지 11시간 만이었다. 짐을 찾아 공항을 나서니 터키파 투어버스가 대기하고 있었
침례신학대학교 세계선교훈련원(WMTC 원장 최원진)에서는 in2mission(선교학교)를 통하여 지난 1월과 2월에 훈련원장인 최원진 교수와 스탭을 포함해 4개국(인도,네팔,잠비아,요르단)으로 22명의 학생들이 선교현장실습을 다녀왔다. 인도팀은 어린이사역과 현지인 교회사역을, 네팔팀은 고아원과 현지 학교사역을, 잠비아팀은 4교회 총 1000명의 어린이사역(성경학교)을, 요르단팀은 시리아난민, MK사역 등 어린이 사역을 중점적으로 돕고 왔다.최원진 원장은 “신학생들이 선교현장을 밟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더욱더 알아가고, 도전과 비전을 받는 귀한 축복의 시간들이었다. 선교 현장실습(단기선교)을 통하여 참여하는 모든 학생들이 타문화권의 민족과 영혼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선교의 헌신자들이 더 늘어나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세계선교훈련원은 매년 봄과 가을로 대학에서 교양과목 및 “in2mission” 선교학교를 개설해 재학생을 대상으로 선교동원을 하고 있으며 선교학교를 마치면 여름 및 겨울방학을 이용해 선교지에서 선교현장실습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2014년 여름방학에도 “세계선교훈련원과 함께하는 행복한 동행”이라는 주제로 2개국(인도, 요르단) 선
1. 기획단계 : 3~6월지구촌교회 여름단기 선교를 준비하면서 선교다큐멘터리 기획단계에서는 기존의 선교다큐의 형식과 내용적인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영상을 제작하기로 기획을 세워나갔다. 국내의 단기선교팀이 공연준비를 하고 선교물품을 준비하여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 가서 물질적으로 돕고 전도를 하는 선교의 일반적인 내용이 아닌 개인의 이야기가 선교일정에 녹아들고 그 내용을 통해 복음을 알고 현지의 어려움을 정보전달을 통해 표현해 정보전달과 감동적인 이야기를 결합하여 새로운 형식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자 고민을 했었다. 그러는 와중에 선교팀 가운데 다문화예배부, 즉 한국에 사는 외국인들이 본국에 돌아가서 선교하는 팀에 흥미를 느끼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관점을 바꿔 시작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취재하고 국내촬영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출연자들이 한국어가 서툴기도 했고 다문화예배부에는 아직까지 비자가 해결되지 않아 촬영을 하게 되면 분위기가 민감해져서 자칫 제작진행 중에 이들이 불안감에 교회를 떠나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한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 본격적인 촬영 시작 1개월 전부터 담당목사와 면담을 하고 다문화예배부에서 제작팀을 소개
“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한 땅에 저를 옮겨 앉히셨습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이곳, 메마르고 가난한 이 땅. … 하지만 주님 순종하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주님의 뜻 따를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우리를 통해 이 땅 위에 주의 나라 이루시리….” -언더우드의 기도 중에서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다시 읽게 된 언더우드 선교사이 기도문의 일부이다. 선교지에 처음 발을 디딘 언더우드 선교사의 마음의 고백에 한동안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언더우드 선교사의 애절하면서도 단호한 고백이 몽골의 메마른 이미지와 동시에 떠오르며, 다시금 몽골을 위해서 기도하게 했다. 몽골에서의 사역은 네 가지 영역에서 진행됐다. 첫째는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돌아간 몽골지체들 모임인 거룩한 믿음회가 영적으로 바로 설 수 있게 성경을 가르치고 교제하고 기도하는 것이며, 둘째는 몽골의 청소년과 청년을 대상으로 찬양 인도와 악기 연주를 가르쳐서 이들이 찬양인도자, 반주자로 교회에서 사역할 수 있도록 돕는 사역이다. 셋째는 현지 개척 교회에 의약품과 의료 물품을 전달하고 그들이 진행하
“엄마의 빗자루 냄새입니다.”몽골 칭기스칸 국제공항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엄마의 빗자루 냄새’였다. 몽골에 도착하자 그냥 느껴지는 것이 바로 이 먼지 냄새였다. 정확히 우리 단기 선교팀을 가장 먼저 반겨준 것은 바로 건조한 사막에서 나는 먼지 냄새였다. 그런데 이 먼지 냄새를 맡으면서 두 가지 이미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하나는 순수했던 어린 시절에 대한 이미지와 다른 하나는 메마른 영혼들이 사는 나라에 대한 것이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결심했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그때의 순수한 시절의 믿음으로 메마른 영혼들을 섬기겠노라고 말이다. 몽골은 유목민의 전통이 있는 나라다. 그래서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이 곳 저 곳을 철따라 옮겨 다닌다. 물론 지금은 정착 생활이 많이 이뤄졌지만, 여전히 유목민 시절에 사용하던 임시 텐트인 ‘게르’를 주거지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게르는 몽골 전체 주택에 약 40% 정도를 차지하고, 시골 뿐만 아니라 높은 아파트가 있는 울란바토르(수도)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게르는 천막으로 온 가족이 함께 한 공간에서 거주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다. 각 방이라는 개념이 없는 몽골 유목민들은 어린 아이부터 부모까지 한
“여전히 행복해요?”호기 자매에게 물었던 질문이다. 호기 자매는 2006년에 돈 벌기 위해서 한국에 왔다. 서울에서 몇 년 일하고 성남에 있는 직장으로 옮겨왔을 때, 가까운 곳에 아는 사람이 없어서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지구촌교회 다문화 예배부를 알게 되어 교회에 출석하게 된 자매다. 얼마 후 호기 자매는 바야라 형제를 만나게 된다. 바야라 형제는 어머니의 재혼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많은 어려움 속에 성장했지만, 호기 자매와 예수님을 한국에서 만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다 보상 받았다고 고백한 형제이다. 그러나 이들의 행복한 결혼 생활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2012년도 1월 불의의 교통사고로 바야라 형제가 먼저 천국으로 가게된 것이다. 그때 호기 자매는 태중에 아들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을 먼저 보내고 홀로 한국에서 신앙을 지키면서 승리(아들)을 키우고 있는 그녀에게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 봤다. “저는 은혜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아직도 힘든 상황이지만, ‘여전히 행복합니다.’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요”지금은 아주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공부하면서 한국어가 많은 늘은 호기 자매는 정확하고, 씩씩하게 여전히 행복하다고, 당당히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