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가 되어 다녔던 걸음마다 주님의 사랑을 깊이 누리고 깨달으며 각성하고 감사로 더욱 풍성한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옛 것을 통해 새것은 배운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복된 시간이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순례의 시간과 경험을 통해 새롭게 다짐하고 결단한 것들을 삶 속에 녹내고 담아내 진정한 개혁의 열매와 증거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베소서 3:14~19의 말씀을 통해 선교를 다 마친 바울 사도가 로마의 감옥에 수감, 생애 마지막을 보내면서 자신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에베소교회에 보낸 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사도는 무릎을 꿇고 드리는 기도를 즐겨 행했습니다(행20:36). 스데반 집사도 복음을 전하다가 박해자들에게 돌에 맞아 순교 당할 때,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기도하고 죽었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에서 기도하실 때도 무릎을 꿇으시고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기도의 모습은 거의 다 무릎으로 드리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가 어릴 적에는 예배당이 거의 다 의자가 없는 마루였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방석에 앉아서 예배드리고 무
1. [고린도후서 5 : 9~10]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 선 )( 악 )간에 그 몸으로 ( 행한 것 )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1) 위의 내용은 신자에 대한 얘기입니까? 불신자에 대한 얘기입니까? 신자입니다. 첫째는, 고린도 교회에 보낸 서신입니다. 즉 성도들에게 보낸 내용입니다. 둘째는, “우리”라는 단어가 2번 나옵니다. ‘우리’와 ‘여러분’과의 차이는 현재 말하고 있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는 것과 포함되어 있지 않는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안에도 사도 바울 자신도 포함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2)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땅에 살면서 힘을 안 쓰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학생들은 학생 나름대로 공부하는데 힘쓰고, 직장 다니는 사람은 직장 생활하면서 힘을 쓰고, 사업 하는 사람은 사업하는 가운데 부단히 힘을 쓰며 살아가듯이 대다수의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앞날의 성공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아갑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또한 예수를 믿고 나면 그 이
그는 히포(Hippo)의 주교로서 펠라기우스(Pelagius)와 도나투스(Donatus)파의 이설을 반박하였고, 초기 기독교의 사상을 수렴하고 중세 신학의 기초를 놓았다. 중세기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 사상과 지혜에 영향을 받았음을 인정한다. 그는 르네상스의 여러 사상가에게도 영향을 줬으며 쿠사의 니콜라스(Nicholas of Cusa)와 에라스뮈스(Erasmus)도 역시 이에 속한다. 탁월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북아프리카 히포(Hippo)의 감독으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바로 고백록(The Confessiones)을 집필했다(A. D. 397-401년). 그가 죽고 난 이후에도 고백록은 오늘날까지 여전히 읽히는 불후의 명저다. 고백록은 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많이, 널리 읽혀진 책으로서 철학자들, 문학가들, 심리학자들, 신학자들, 평신도들, 심지어는 비기독교인들 까지도 애독하는 책이기도 하다. 특별히 하나님을 떠나서는 진정한 안식이 존재할 수 없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절대적인 그의 신앙 표현은 오랫동안 빛나고도 남을 흔적이다. 시대를 뛰어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나아가 신앙인의 진심어린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이 책은 당대의
삼위일체 교리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의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며 동시에 한분이심을 가르쳐 준다. 또한 삼위일체론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고백함으로써 그들의 구속과 구원의 사건을 하나님 자신의 사건으로 고백한다. 이처럼 삼위일체론은 기독교 구원의 복음의 진수를 간직하고 보호해 주는 교리이다. A.D. 325년에 열렸던 니케아 공의회는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과 동일본질(homoousios)임을 확정함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바르게 고백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본질과 위격의 구별을 최초로 논의한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공헌에 따라 하나님은 “한 본질(ousia, one being)이면서 세 위격들(hypostasis, three persons)”이라고, A.D. 381년 콘스탄틴노플 공의회가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 즉 성부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의 세 위격들이 서로 구별이 되면서도, 하나님의 본질에 있어서 완전히 한분이시며, 동일하시다는 신앙고백을 성경적인 바른 신관으로 확정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그의 본질적 존재에 있어서 한분이시나, 이 한분 안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三位)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삼위일체의 교리를
1. [창세기 2:16~1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4) “죽으리라”는 말씀에 포함된 내용이 무엇입니까? 지옥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내용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의인이 죄인으로, 생명이 사망으로, 하나님이 주신 영생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만약 그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죽으리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는 지옥으로 가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혀주심(롬 3:14)”과 같이 아담과 하와 또한 인간의 죄악의 수치를 가리 우기 위해 희생 제물의 피 흘림을 통해 “짐승의 가죽옷(창 2:21)”을 입혀 주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아주 중요한 말씀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럼 애굽에서 구원 받고, 홍해에서 침례 받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는 2길이 없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원자 모세를 통해 믿음으로 구원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도 아담과 똑같이 2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2. [신명기30:19] “내가
따라서 성경만큼 보편적이고 영원한 책은 없다. 성경의 진리는 기록된 당시나 지금이나 여전히 살아서 역사한다. 아울러 성경은 삶의 모든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광범위한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로써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이며, 영원한 진리이며, 인류 구원의 유일한 지침이며, 인간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생명의 양식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성령님의 감동하심 가운데 성경을 기록했고, 그 기록된 것을 받은 독자들이 기록된 성경을 읽을 때에 깨달음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엡 3:1-4). 성경은 읽혀져야 하고, 그 뜻이 깨달아져야 하며, 그 교훈이 개인과 교회에 의해서 실천돼야 한다. 그것은 성경만큼 뛰어난 힘과 영향력, 그리고 감화를 주는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일을 하거나 또는 중요한 일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목적의식이 분명해야 한다. 특히 독서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 더 확실하게 목적을 되새기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냐하면 목적의식을 갖고 독서하는 목회자와 목적의식 없이 독서하는 목회자는 관심이나 흥미, 책임감이나 집중력 그리고 이해하는 관점에서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목회자는 일단 양적으
비록 칼빈주의와 알미니우스주의가 이신칭의의 관계에서 서로 대립하고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멀린스의 ‘강권적 은혜’는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구원론을 강조한다고 보인다. 따라서 하나님의 ‘강권적 은혜’는 칼빈주의와 알미니우스주의를 동시에 포용하고 있기 때문에 갈라디아서의 구원은 삼위일체적인 하나님의 역사라는 입장에서 통전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연세대의 서중석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기독교의 이신칭의에 관한 쟁점이 시대의 당면한 문제를 넘어 초시간적이고 보편적인 의미로 믿음과 행위를 이해해 왔기 때문에 대립적일 수밖에 없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칭의사상은 그것을 필요로 하던 구체적인 정황 속에서 나온 이론이다. 그 정황을 무시하고 그것을 보편적이고 무시간적인 사상으로 전제한다면, 인의론은 다른 양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믿음과 행위에 관한 양면의 칼처럼 대립적 상황을 연출한다. 기독교 신앙이 믿음을 강조하면 행위를 상대적으로 덜 강조하게 되고, 행위를 강조하면 믿음을 상대적으로 덜 강조하게 된다. 이 문제를 취급한 루터는 갈라디아서 주석을 통해 그 방법을 찾는다. 그의 방법은 매우 간명하다. 루터의 대안적 방법은 갈
명성황후는 고종(高宗)의 정비(正妃)이며 조선의 마지막 왕 순종의 어머니이다. 명성황후는 아버지 여성부원군 민치록과 어머니 한산 부부인 이씨의 소생으로서 아명(兒名)은 아영(또는 자영)이다. ‘민비(閔妃)’는 일본인들이 황후를 비하해서 만든 호칭이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고, 숙종(肅宗)의 모친 명성왕후(明聖王后) 김씨와 혼돈하지 말아야 한다. 민아영은 열네 살 때인 1866년 신정왕후 주씨와 흥선대원군에게 고종의 왕비로 간택되어 명성황후가 됐다. 처음에 화기애애하게 시작된 대원군과 민아영의 관계는 황후가 낳은 왕자가 대원군이 지어 보낸 탕약을 복용한 후에 급사한 사건 이후에 급격이 나빠져서 정적이 됐다. 명성황후는 감히 흥선대원군의 권위에 도전해서 결국 그를 권좌에서 축출하고 권력을 장악했다. 그러나 1882년에 신식군대인 별기군을 과도하게 지원하다가 훈련도감에서 월급도 받지 못하고 천대 받다가 해고된 군인들이 군란(壬午軍亂)을 일으키자 장호원으로 피신하면서 권력을 상실하고 대원군이 복귀해서 민씨 일가의 세력을 숙청하기 시작했다. 명성황후는 청나라에 도움을 요청해서 대원군을 청나라로 납치하고 다시 권력에 복귀해서 1884년 12월 4일, 김옥균 박영효 서
일본의 작가 구리 료헤이가 1989 년에 발표한 “우동 한 그릇”이라는 단편소설이 있다. 1972년 섣달 그믐날 저녁, 도쿄의 “북해정”이라는 음식점에 한 어머니가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들어가서 우동 한 그릇만 시켜도 되느냐고 물었다. 주인은 물론 된다고 대답하고 우동 한 그릇에 젓가락 세 개를 놓아 줬다. 그 후 그들은 섣달 그믐날 저녁마다 그 식당에 가서 우동 한 그릇을 주문했고 주인은 그때마다 몰래 소바 1인분 반을 더 올려줬다. 그런데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어느 해에는 우동 두 그릇을 주문하는 것이었다. 그날 밤에 식당 주인은 어머니가 두 아들에게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됐다. 부인의 남편이 직장에서 사고를 일으켜 죽으면서 여덟 명이 다치고 회사에도 큰 손해를 입혀서 그 가족은 십여 년 동안 일해서 그 날 빚을 다 갚고, 기념으로 우동 두 그릇을 주문한 것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부터 “북해정” 식당에는 그 가족의 발길이 끊어졌다. 그러나 그 식당은 섣달 그믐날 저녁마다 손님이 아무리 많아도 그 가족이 앉았던 자리에는 “예약석” 팻말을 붙여서 비워놓고 그 가족의 사연을 알고 있는 단골손님들과 함께 그 가족을 기다렸다. 그런데 십 수 년이 지난
낮과 밤의 일기 차가 심하다. 낮에 뜨겁던 날씨가 새벽엔 찬 기운까지 돌아 이불이 생각나게 한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신다. 이곳 진도에 비가 오지 않아 늦게 벼를 심어 이제 좀 자라나고 있는데 날씨가 추워지면 물속에 잠겨 있는 뿌리가 겨울인 듯 착각하여 열매도 맺지 않고 썩어 버린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을 때에 심고 추수할 때에 추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것에 때가 있다는 말이다. 어느 비가 오는 날이었다. 차를 운전하여 산 비탈길을 가는데 산 아래에 차들이 많이 모여 있다. 눈 여겨 보니 누군가 산 위에서 장례를 치르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날씨에 일하는 사람들이 힘들겠구나 생각을 하며 지났다. 몇 일이 지난 화창한 어느 날 비슷한 장소를 지나가는데, 마찬가지로 차들이 길가에 서 있고 산 위에서 묘지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문득 몇 일전 비가 오던 날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쓴 웃음과 함께 입에서 기도의 소리가 나왔다. “주여 좋은 날 좋은 시에 주님 앞에 가게 하소서.” 그리고 마을에서 한글학교를 하며 어르신들과 함께 불렀던 노래가 생각났다.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