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지와 쭉정이는 어떻게 다른가?가라지는 잡초같이 모양은 밀과 비슷하지만 이삭이 나면 쉽게 구별할 수 있다. 그리고 쭉정이는 껍질만 있고 속에 알맹이가 들지 않은 곡식이다. 예수께서 가라지와 쭉정이를 말씀하실 때 그 대상이 달랐다. 마태복음15장에 가라지는 원수가 곡식위에 덧뿌린 것으로 애초부터 곡식이 아닌 악한 것이나, 쭉정이는 원래는 아니었는데 곡식 가운데 내실이 없이 충실한 알곡이 되지 못한 것이나 병충해로 인해서 속이 빈 것이다.쭉정이는 가라지와 달리 하나님의 말씀으로 싹이 트고 이삭이 난 경험이 있는 성도다. 마태복음3:12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고 하셨는데 가라지는 추수할 때 가려지나 쭉정이는 추수한 뒤에 타작마당에서 키질을 함으로 가려진다.알곡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삶속에 적용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쭉정이가 되지 못하도록 햇빛과 수분을 제때 공급받아야 하고, 병충해와 같은 모든 벌레들을 제거해야 한다. 내가 잠든 사이 원수가 뿌려놓은 모든 교만과 자기의 의와 탐심과 탐욕이 어느새 알곡처럼 자라난다. 예수
캘리포니아 업랜드(Upland)의 리차드 에비(Richard E.Evy)박사의 저서「낙원으로 이끌려가서」(Caught Up Paradise)에 보면, 그의 낙원 체험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그는 수년 전 시카고의 숙모의 낡은 저택 발코니에서 거꾸로 떨어져 콘크리트 바닥에 머릴 받아 피가 낭자했고 찢어진 피부는 귀까지 쳐졌고 뇌는 노출되었다. 이웃 아주머니께서 구급차를 부르는 동안 간호사였던 에비 박사의 아내는 응급처치를 하여 병원 응급실 신경외과의사에게 넘겼다.월남에서 4년간 환자를 취급했지만 이런 환자는 처음이요, 당장 보아도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에비 부인은 체념의 기도를 했다. “하나님 만일 당신이 원하시면 살려 주시고, 만일 그가 할 일이 아무것도 없다면 데려가 주세요. 만일 우리의 남은 삶을 통해 주님의 일을 하시기 원하시면 그를 돌려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6시간의 봉합 수술 후 숨을 쉬기 시작했으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고 의사는 말했다. 에비 박사의 머리가 콘크리트에 부딪히는 순간 그는 중생했으며, 낙원으로 이끌려갔다. 땅에서 그가 죽어 있는 동안 그는 이끌려 하늘에서 아름다운 체험을 했다. 땅에서 하늘에 옮겨진 것은
한 나라의 문화 수준은 화장실이 대변 한다. 2천년 전 그리스 유적지에 대리석을 파서 만든 공동화장실 밑에는 물이 흐르는 수세식이였다. 2세기 경 인류 최초로 종이를 만든 중국인데 백두산 길목 휴게소의 화장실은 지금도 칸막이가 없고 휴지도 없다. 흉볼 처지가 않되는 것은 우리나라도 50년 전만 해도 용변 후 뒤지는 볏짚이나 나뭇잎을 사용하다가 지나간 신문지 잘라 화장실에 매달아 쓰기 시작한 것이 불과 3-40년 전 일이다. 그런데 요즘은 너무 화장지가 흔하다. “톡~! 하고 뽑으면 5원” 이라는 광고가 있었는데 그래서 내 바지 뒷 주머니에는 손수건 대신 화장지가 최소 2회 사용 후에야 용도폐기 처분 된다. 며느리가 손자녀석 손 닦아 준다고 일회용 화장지를 아무 생각 없이 톡 톡 2장 3장 뽑아 쓰는 것 보고 한 마디 했다. 난 일회용 화장지는 잘 사용하지도 않지만 책상 위 컴퓨터 닦을 땐 한번 뽑아 두 번 이상 빨아서 쓴다 했더니 기막힌 표정을 짓는다.우리 교회 본당 장의자 뒤편에는 십 여개의 화장지가 항상 놓여있다. 교회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화장지의 용도에 의문을 품는데 예배드리다가 흘리는 눈물 콧물 닦는다고 했다. 그리고 보니 우리 교인들은 눈물을 잘 흘
한 때의 부귀영화를 누린 헛된 인생살이로 “남쪽으로 뻗은 나뭇가지 아래서 한 바탕의 꿈”을 남가일몽이라 했다. 중국의 강남 양주 외곽에 순우분이란 협객이 있었다. 그의 집 남쪽에 큰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그 아래서 친구들과 술을 마신후 잠이 들었다. 그 때 자주빛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저희들은 괴안국 국왕의 사자인데 당신을 모시고 오라는 명을 받아 왔습니다.” 순우분은 그들을 따라가서 국왕의 부마(사위)가 되고 남가군의 태수가 되어 20년 동안을 다스려 태평성대를 이루니 왕도 그 소식을 듣고 재상(宰相)으로 삼았다. 재상이 된지 얼마 안 있어 단라국의 군대가 침입해와 3만의 군사로 싸웠으나 패하여 많은 군사가 죽고 아내마저 병으로 죽었다. 그는 낙담하여 관직을 사직하고 도성으로 왔으나 그의 명성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세력이 커지자 괴안국왕은 불안하여 “자네도 고향을 떠나온지 오래되어 한번 다녀 오게나?”했다. 순우분은 “저희 집은 여긴데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대답하자, “자네는 원래 세속 사람으로 여기는 자네의 집이 아니네!” 그리하여 왕의 사자를 따라 자신의 옛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그는 느티나무 아래서 지금까지 꿈을
‘세종실록지리지’에 충청도, 경상도, 함경도에서 전어가 많이 잡힌다는 기록이 있고,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는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말’이라는 문헌이 있으니 가을에 잡히는 전어의 맛이 일품이라는 뜻일게다. 전어는 맛이 좋아 사먹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부른다.전어는 살이 오르고 뼈가 물러지는 산란기에 먹는 것이 적기인데... 바다의 깨소금으로 비유되는 전어는 그 고소한 맛으로 가을철 입맛을 돋구는 최고의 별미로 꼽힌다. 전어는 통째로 구워낸 전어구이 뿐 아니라, 세꼬시 처럼 뼈째 손질돼 씹는 맛과 감칠맛이 제 맛인 전어회. 그리고 미나리, 오이, 깻잎 등과 함께 무쳐낸 달콤하면서도 아삭아삭한 전어회무침도 일품이다.전어 굽는 냄새는 어찌나 구수한지 옛말에 ‘집 나간 며느리도 전어 굽는 냄새를 맡으면 집에 돌아온다’ 했다. 전어는 커봐야 어른 손바닥 크기에 불과하다. 특별한 모양도 없고 빛깔도 없다. 그런데 전어는 제몫을 톡톡히 한다. 그 어떤 생선에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다. 자기만의 맛으로 온 세상 사람들을 불러들인다. 전어(錢魚) 같은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 한 생애를 살면서 큰 업적을 남기지 못해도 화려한 명패가 없
레슬리 던킨(Leslie Dunkin)씨는 소년시절에 집에서 길렀던 개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가끔씩 그의 아버지는 개가 주인의 말을 잘 듣는지 시험해보곤 했다. 큼직한 고기 덩어리 하나를 마룻바닥에 놓고는 개에게 “안돼!”라고 명령합니다. 고기 덩어리를 먹고 싶은 강한 충동이 있는 개는 주인의 명령에 복종해야 할 것인지 말아야 할 지 매우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개는 고기 덩어리와 주인의 얼굴 사이에 놓인 것이다. 던킨 씨는 “그 개는 결코 고기를 내다보지 않았다. 만일 고기를 본다면 불순종할 유혹이 너무 크다고 느낀 것 같았다. 그래서 개는 계속해서 아버지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여기서 비록 개라도 주인의 눈치를 살피고 유혹을 이기며 명령에 순종하는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대하여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는지? 개도 잘 훈련되면 주인의 말에 순종할진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도 교육과 수련, 연단과 훈련 없이 어떻게 말씀에 순종하여 유혹을 이기고 약속된 축복을 받을 수 있겠는가? 개도 큼직한 고기 덩어리의 유혹을 이겨내기 위해서 고기를 보지 않고 주인의 얼굴을 쳐다본 것처럼 우리의 주변에 손짓하는 그 많고 큰 유혹을 이기고 시험을 물리치기 위해선 위로
예전에는 부모님 환갑잔치가 성대하게 치러졌으나 오늘날에는 칠순잔치도 마다한다. 인생 70이 장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3년째 계속되어온 ‘은빛대학’은 65세 이상 어르신이 대상이지만 60대는 참석하길 꺼리신다. 교회에 새로 등록하신 노인분도 자신은 젊은 목장에 넣어 달라신다. 노인도 노인을 싫어함은 재력도 체력도 떨어지고, 몸에서 냄새가 나고, 잔소리가 많아지고, 엉뚱한 행동을 하기 때문이다. 이젠 노인이라는 말조차 싫어하니 ‘어르신’이라 해야 한다.10월 2일 제17회 노인의 날, 안타까운 소식은 부산의 도심 주택가 단칸방에서 숨진 지 5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는 60대 할머니의 시신이 백골 상태로 발견됐다. 추위를 피하려는 듯 두꺼운 겨울옷을 잔뜩 껴입은 채였다. 발견 당시 할머니는 완전한 백골 상태였으며 목장갑을 끼고 겨울옷을 아홉 겹이나 입고 있었다. 경찰은 홀로 살아온 할머니가 추위와 굶주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건강보험료가 2008년 8월 이후 체납돼 독촉장이 쌓여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사망 시점이 2008년 말일 것이라고 밝혔다. 할머니 철저히 혼자였다. 결혼도 하지 않았고 친구도 없었다. 전체 독거노인의 42.4%가 최저생계비 이하로
미국 남침례교회 톰슨(Thomson)이라는 목사는 꿈속에 나타난 예수님을 보고 무척 놀랐는데 나아가 충격적인 책망을 들었다. “너는 왜 재림에 대하여 설교하지 않는가?”라고 말씀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설교를 돌아보니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한번도 설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톰슨 목사는 놀란 나머지 땀에 흠뻑 젖은채 꿈을 깬 후 그 다음 주일 설교는 재림에 대하여 “예수님은 곧 오신다.”로 제목을 잡고 설교준비를 했다. 그는 잘 준비된 설교를 힘껏 외쳤다. 교인들은 은혜를 받았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 설교 역시 똑같은 “예수님은 곧 오신다.”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그리고 그 다음 세 번째 주일의 설교도 “예수님은 곧 오신다.”를 말씀했는데 왠일일까? 교인들이 찾아와 “목사님, 어찌된 일입니까? 똑같은 설교를 세 번이나 하셨다구요!”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에도 “예수님은 곧 오신다!”라고 재림설교를 힘주어 외쳤다. 똑같은 제목의 같은 내용의 설교를 듣던 교인들은 고개를 숙이고 있든지 또 들은 설교가 잠꼬대로 또는 자장가가 되었는지 태반이나 조용히 잠이 들었다. 이미 다 들은 설교에 지겨웠는지 아니면 우리 목사님이 갑자기 어떻게 되신것이 아닌가 의구심을
이상근 목사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하셨다. “그런데 신약성경을 읽어보니 예수님도 말세 또는 종말을 예언하셨고, 사도 바울도 임박한 주의 날을 거듭 강조했고, 베드로 사도 역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사도 요한도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다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이르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 인줄 아노라“(요일 2:18)고 경고 했는데, 그러면 2000여 년 전에도 말세였고, 지금도 말세라고들 떠들고 야단이니 헷갈립니다.” 이 목사님은 “그때는 말세의 시작이고 그동안은 말세의 진행이며 2000년이 가까워진 지금은 末世之末世 또는 말세지말세라고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쉽게 말하면 개의 꼬리는 말세의 시작이고 지금은 개의 꼬리의 끝부분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되겠군요” 라고 대답하셨다. 1961년 이었으니 52년 세월이 흘렀는데··· 1992년 다미선교회의 날짜 짜맞추기 종말예언이 빗나갔기에 마귀의 선수제압으로 정말 오늘날엔 종말에 대한 말도 못 꺼내는지?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징조를 볼 때 “자다가 깰 때”인 것만은 짐작하고도 남고, 아무래도 성경의 많은 예언은 이 시대의 모습에
1. 들어가는 글인권(Human Rights)은 어느 누구나 예외 없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되어야 할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인간은 인간이라는 그 이유만으로 존중되어야 하고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인권은 사회뿐만 아니라 성서에서도 반드시 지켜져야 할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언급 하고 있다. 그러기에 교회는 인간이 사회 속에서 존중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인권은 기독교윤리의 중심주제이며, 교회에게 주어진 아주 중요한 실천과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은 기독교 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잊혀 져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이 저지른 유대인 대학살인 홀로코스트(Holocaust)를 경험하면서 교회는 인권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교회의 실천과제로 수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권에 대한 교회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인권이란 용어는 토마스 페인(Thomas Paine)의 저서 ‘인간의 권리’에서 처음 사용되어 졌다. 인권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현대적 의미의 인권사상은 근대 서구의 사회운동 및 정치적 투쟁을 통해 생성됐다. 사람들이 인권을 요청하게 된 실제적 배경은 각종 불법에 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