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설교를 잘 준비해서 설교해도 말씀대로 살려는 자세도 거의 없고, 연말 되면 임원도 서로 안 하려고 하고, 교회가 어느 정도 부흥되는가 싶으면 영적으로 병이 들어 우르르 쾅쾅 무너지고….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 호밥이 그에게 이르되 나는 가지 아니하고 내 고향 내 친족에게로 가리라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 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 우리와 동행하면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복을 내리시는 대로 우리도 당신에게 행하리이다”(민10:29~32) 그러던 중 우연히 민수기 10장 29~32절를 읽으면서 저의 목회 심정을 그대로 묘사해 놓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게 됐습니다. 이 내용은 “모세가 처남인 호밥에게 하나님이 주마하신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가려고 하는데 함께 동행하며 이스라엘 백성의 눈이 되어 달라”고 하는 간곡한 부탁의 내용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하나님이 맡겨주신 이 성도들을 데리고 천
본 기고글은 침례신학대학교 목회신학대학원 목회신학 전공에서 박사학위(목회자를 위한 효과적인 독서전략)를 받은 최호준 목사의 논문을 기고문 형식을 재구성한 것이다. 목사를 비롯한 교회에서 성별된 직무를 담당하는 영적 지도자들을 목회자 또는 사역자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교회가 교회로서의 본분과 기능을 다하게 하기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다. 목회자는 신자가 신자 되고, 교인이 교인 되고, 제자가 제자 되고, 교회가 교회 되게 하기 위해 일하는 성별된 봉사자이다. 목회자는 앞장서서 모범과 솔선수범으로 양떼를 이끌고 나가는 인도자이다. 그리고 그는 교리적으로 윤리적으로 양들을 돌보고 보호해주는 보호자이다. 그뿐만 아니라 교회 회중에게 격려와 도전을 주고 능력을 받아 일하도록 직분을 수여하며 뭔가 일이 되도록 교회를 이끌어 나가는 부여자이다. 또한, 모든 신자들을 동역자로 생각하여 각자에게 있는 능력을 발휘하도록 준비시켜주는 구비자이다. 그리고 그는 가능성 있는 사람들에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고, 할 수 있는 사람들로 하게하며, 하고 있는 사람들로 계속하도록 하는 촉진자이다. 이렇게 막중한 책임과 역할이 주어진 목회자에게 하나 더 갖추어야 할 사역의 역할이
1826년부터 1860년대까지 튀빙겐에서 가르친 바우어(F.C. Baur)는 전통적인 견해를 받아들여 바울의 사상이 유대기독교와 갈등에서 나왔다고 했고 더 나아가 1880년대 초기 그리스도교를 종교사적 방법으로 해결하려는 종교사학파는 바울 사상의 출처가 결정적으로 유대교가 아니라 헬라였다고 주장했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이러한 종교사학파의 길을 따른 루돌프 불트만은 루터교 용어를 사용해 바울 사상을 나타내려고 했다. 그는 ‘개인’이 중심이었고 ‘칭의’(법정적 개념)는 바울신학의 중심으로 봤고 바울은 유대교와 정반대였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불트만의 제자인 에른스트 케제만(Ernst Kasemann)도 ‘칭의’가 바울사상의 중심이라 강조했다. 윌리암 데이비드 데이비스는 ‘바울과 랍비 유대교’에서 바울은 유대교와 전혀 대적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사실상 거기에는 상당한 연속성이 있고, 또한 율법은 유대교에 부과되어 긍정적으로 역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바울은 자신의 새로운 믿음을 유대교의 성취로 간주했다. 유대교를 ‘율법과 순종(행위)의 종교’라 하여 바울의 기독교(‘믿음과 성령의 종교’)와 대조하는 것을 시대착오라 했다. 바울사상의 중심은 ‘이신칭의’
“나침반 바늘은 정확한 방향을 가리키기 전에 항상 흔들린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지금 흔들리고 있는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언젠가는 바른 방향을 가리키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달팽이 안에 달’에서 사람들에겐 다른 동물이 갖지 못한 특징이 한 가지 있습니다. 기다림입니다. 혹시 지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까? 있다면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름대로 무언가를 기다리며 산다는 공통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항상 기다림 속에 살고 있지 / 언젠가 내게 올 사람을 기다리고 / 고통과 아픔에게 벗어날 시간을 기다리고 / 폭풍같은 번뇌가 잔잔해질 때까지 기다리고 / 또 기다리지 … (중략) 현실이 고달프다고 포기해버린다면 결국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 / 어렵게 얻은 것일수록 그 소중함은 더 크지 않더냐 / 내 인생에 혹독한 시련이 왔을 때 나는 사람보다 신에게 기댔다 / 신은 언제든지 다가가면 안아주고 마음껏 숨 쉬게 해주었지 / 걷고 또 걷고 그러다보면 시간은 저절로 흘러가리 / 또 다른 삶이 다가오리 또 다른 희망이 다가오리 - ‘꿈꾸는 원덕사’(장용숙)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4월말 진도의 축제 중 하나인 신비의 바닷길 축제가 있었다. 진도 본 섬과 모도라고 하는 작은 섬 사이 2.8km가 조수간만의 차이로 약 40m 폭으로 깊은 곳은 15m도 더 깊었던 바닷길이 열린다. 진도 전 주민의 축제라고 할 만큼 큰 행사로 진도 문화 행사와 바닷길을 걸으며 조개와 미역 등을 수확할 수 있고, 복이 있는 날엔 낙지도 잡을 수 있는 기회다. 한 해 5~60만 명의 인파들이 모인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설을 만들어 전설적 사건에 치중하는 행사가 됐다. 그런데 1993년 지자체에서 “현대판 모세의 기적 신비의 바닷길이 열리는 이곳에 멋과 흥을 펼칠 터전을 세우다”라고 적힌 기념석이 세워진 것을 보았다. 진도의 목회자가 되어 우상과 미신이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섬 문화를 보며 눈물로 기도했는데, 그나마 성경의 용어를 이름하고 불려지도록 만들어 성경을 듣는 기회를 만들고 싶다. 비록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사건과는 전혀 다른 현상이지만 그것을 우상을 섬기는 일로 만들기보다 성경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면 훨씬 났지 않겠는가. 올 해 행사에 자원봉사자가 필요한 것을 알고, 부족하지만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찾아 신청했다. 그리고 외국인들을 안내
여기서 “한 몸”은 교회, 특히 우주적 교회를 의미한다. 죄인이 교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야 한다. 그것을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죄인들이 예수를 진정으로 믿는 순간 “‘풍덩’ 하고 성령의 강물 속으로 빠져서”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말하는 “성령침례”는 방언이나 진동이나 뒤로 넘어짐 등 어떤 육체적 체험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어서 교회(한 몸)가 된다는 사실을 “성령으로 침례를 받았다”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남침례교 신앙고백인 “침례교인의 신앙과 메시지(2000년판)”에서 “성령침례”라는 개념과 관련해 오순절 성령신학을 단호하게 배격하는 내용의 문장을 첨가했다: “그 분(성령-필자 주)은 중생의 순간에 신자 각자를 그리스도의 몸(교회-필자 주) 속으로 침례(성령침례-필자 주)를 베푸신다” 남침례교인들의 2000년판 신앙고백에서는 어떤 죄인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 순간에 그 분의 피의 능력으로 죄사함 받고 거듭나는 것(중생)이며, 거듭나는 순간에 그 신자는 성령을 받게 되어 우주적 교회의 한 부분이 된다
루터의 구원론의 관심은 “나는 어떻게 구원 받을 수 있는가?”라는 구원의 방법에서부터 출발했다.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가톨릭교회의 가르침대로 고행의 길을 걸었지만 해답을 얻지 못하고 절망하다가 로마서 1장 17절에서 ‘형벌적인 의’가 아닌 ‘대속적인 의’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값없이 주시는 믿음으로 구원얻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루터는 자신의 죄의 문제와 그것을 해결하는 방법으로서의 구원론을 체계화시켜 칭의교리를 만든 것이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말하는 구원론은 인간의 관점에서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시작된다. 하나님의 뜻과 약속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두게 된다는 삼위일체적인 관점에서 구원론을 제시하고 있다. 3) 평가 가톨릭은 갈라디아서를 ‘칭의·성화’라는 한 가지 개념으로 이해해 하나님의 은혜와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해 믿음과 행위를 모두 강조했다. 그러나 펠라기우스적인 인간의 선행(공로) 사상이 들어와서 섞이면서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인간의 행위나 종교의식을 통해서 구원받는 관점에서 구원론이 체계화됐다. 이는 갈라디아서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성령으로 거룩하고 영화롭게
“모자라는 부분을 채워가는 것이 행복이다” - ‘혼자 사랑하고 상처받지 마라’ 중에서 역대상 28장은 죽음을 앞둔 다윗이 이스라엘의 모든 고관들을 모아놓고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다는 계획에 대해 말하며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이 일을 맡긴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전쟁을 많이 해서 피를 흘렸기 때문에 성전건축을 맡기지 않으신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1~3절). 그리고 솔로몬을 향해 자애로운 눈빛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다윗은 솔로몬에게 세 가지를 당부했습니다(9절). “하나님을 알아라” “하나님을 섬겨라” “하나님을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하거나 정치를 잘해야 한다거나 어리다고 무시당하지 말라”는 등의 요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의 유언과도 같은 당부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권면이며 합당한 요구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찾으며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다면 가정이든 교회나 나라를 막론하고 형통하며 평탄한 길로 나아갈 것을 믿습니다. 자신의 뒤를 이어 여호와의 나라를 이어받는 어린 아들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
-책을 보는 안목- 책을 대할 때 살펴야 할 몇 가지 항목을 소개하고자 한다. 첫째로, 추천사를 쓴 사람이 그 책의 주제(분야)와 연관이 있는 인사인지, 혹은 책의 내용과 관계없는 각계의 유명 인사들인지 살펴야 한다. 또한 추천자가 두세 명이 넘는 책은 대개는 저자의 홍보용이거나 책의 본연(本然)과는 동떨어진 특수목적의 책일 것이다. 많은 추천자를 나열하는 것은 저자가 스스로 책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행위이므로 학자나 저술가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둘째로, 머리말(서문, 또는 저자의 말)은 책의 저술 목적과 내용을 요약 진술한 것이므로 제일 먼저 읽어야 할 내용이다. 셋째로, 목차가 편집된 모양을 보면 책의 짜임새를 알 수 있다. 들쑥날쑥 짜인 목차는 책의 내용도 다듬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넷째로, 판권(出板權) 페이지는 과거에는 대부분 책의 제일 뒤쪽에 붙였으나 근래에는 앞 쪽 속표지 뒷면이나 다음 장에 넣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들어가는 내용은 책의 인쇄일, 발행일, 저자, 출판사, 출판권 소유자, 판수(版數)와 가격 등이다. 중판(重版)을 거듭한 책일수록 많이 읽혀지는 책이므로 판수를 확인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다섯째로, 책을 펴내는 출판사는
미국에 사는 동안에 한 달에 한번 매달 초가 되면 시내 한복판에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수시로 몰아치는 토네이도나 자연재해를 피하기 위한 대피 훈련이다. 한국에서 민방공훈련을 하던 생각이 났다. 세계 어디나 안전한 곳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전쟁의 공포가 없으면 자연 재해 등으로 준비하고 훈련하는 일들을 보며 공평하심을 생각한다. 세차게 바람이 부는 섬마을에 살면서 수시로 불어오는 바람은 이제 이웃처럼 느끼며 살아간다. 어느 날인가 밤새 심하게 바람이 불어 잠을 설치던 날에 아내가 제주도에 사는 처제에게 연락을 했다. 그랬더니 거긴 바람이 불어 나갈 수도 없다고 하소연했단다. 미국의 그 큰 땅 중간에도 바람이 불어 난리인데 바다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는 섬이랴. 그러나 “참새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29)하신 하나님께서 모르실 리가 없으실 것이다. 세상의 주인이 누구신지, 자연의 섭리를 다스리시는 분이 누구신지를 알려주시려는 하나님의 메아리,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의 연약함을 깨닫게 하시려는 주님의 메아리로 들을 수 있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일 게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전12:1 상). 바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