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의 은혜와 존경을 되새기자는 뜻으로 제정된 어버이날은 5월 가정의 달에 부모에게 효도하는 날로 제정되었다. 자녀들에게 있어 부모는 낳아주시며 길러주시고 끝없이 사랑과 희생으로 헌신하는 분으로 인식되어 왔다. 부모가 없었다면 내가 과연 이 땅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나의 미래와 비전이 있을 수 있을까? 나의 부모가 존재하고 있기에 내 삶의 희망과 미래가 있게 되었다. 그래서 부모에 대한 자식의 보답은 무엇으로 비교한들 다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성경에도 부모와 자식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살펴볼 수 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이삭은 아버지를 존경하여 섬기고 절대적으로 순종했던 것이다. 아브라함이 번제물로 이삭을 바치려고 했을 때도 이삭은 묵묵히 부친의 뜻을 따랐으며 자신의 처 리브가를 아비의 고향에서 찾아야 할 때도 아버지의 뜻을 따랐다. 그만큼 아비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보여준 모습이었다. 모세도 시내산에서 받은 십계명 중에 제 5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며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는 육신에 대한 부모에게 마음과 뜻을 다하라는 뜻이다. 하지만 요즘 세태에서 부모에 대한 공경과 존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제일 먼저 5월 5일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한 달 내내 가정에 관계된 날들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먼저 어린이주일을 맞아 각종 예배와 행사 등이 열리며 이를 활용해 교회학교 성장에 전환점을 모색하고 있다.어린이주일이 특별히 기쁘고 감사한 것은 어린이들에 대한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이 아이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가운데 잘 성장한다면 교회에서 그리고 이 나라와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인물들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당연히 부모의 기대가 더 크기에 부모는 자녀들을 더 세심하게 말씀과 기도로 양육해야 할 것이다. 자신들의 성장과정을 되돌아보면서 아이들이 시행착오를 겪지 않도록 거룩한 영향력으로 도와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내 자녀를 대하는 마음으로 사랑하고 기도해 줘야 한다.그것이 교회를 위해 그리고 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믿음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일들 중 하나일 것이다. 특별히 성경에 나오는 인물 중에 사무엘을 들 수 있는데 그는 삶이 깨끗해서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사무엘은 사방이 더럽고 추한 세계에서 마음과 영혼을 깨끗하게 보존한 정결하고 예쁜 아이였다.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
사랑하는 조황호 목사님! 어느 날 목사님은 제게 이런 문자를 보내 오셨습니다. “천국도 믿고 부활도 믿는데 내 마음이 왜 이렇게 힘이 들지요?”라고 말입니다. 그때가 목사님의 생애 가운데 가장 힘든 날이었습니까?목사님 오늘 아침에는 제가 질문을 드립니다. 천국도 믿고 부활도 믿는데 내 마음이 왜 이렇게 슬픈 건가요? 그저 나보다 몇 걸음 먼저 가시는데 말입니다. 어제부터 하늘도 슬픈 비를 내리고 있습니다. 저희 수원교회에 부흥회 초청 강사로 오셔서 설교하시던 첫날, 온몸으로 설교하시던 열정에 은혜 받고 넋이 나가 있다가 예배 후에 조용히 말씀 드린 일이 기억납니다.“목사님 내일 부터는 천천히 해요. 오늘밤 한 주간 받을 부흥회 은혜 다 받았으니 내일부터는 천천히 해도 돼요.” 그때 목사님 하신 말씀이 귀에 쟁쟁합니다.“내가 언제 다시 이 교회 와서 부흥회 설교하겠어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하고 가렵니다.”찬란한 사도행전의 역사를 재현하는 교회를 꿈꾸며 불을 토하듯 감동 있는 설교로 청중을 사로잡고 한국교회를 깨워서 바로 세워준 성령의 사람, 열정의 부흥사! 당신은 진정 한 시대의 성령의 불꽃 이였습니다.화성중앙교회의 양떼 들을 가슴에 안고 푸른 풀밭에 뉘이
자원외교 비리로 혐의를 받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의 자살은 가득이나 지치고 힘든 국민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더 마음이 무거운 것은 이전의 다수 연예인 자살자들이 대부분 기독교인들이었던 것처럼 그도 생명의 종교인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이다.‘에밀 뒤르켐’이 그의 ‘자살론’에서 자살률이 낮은 카톨릭과 반대로 개신교도들의 자살이 많은 것은 개인주의적 경향이 짙기 때문이라 하였는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개인주의가 인본주의의 제왕으로 등극한 오늘날 낯설지 않은 진단인 듯하다.한 걸음 더 나가 조성돈 교수는 자살을 ‘사회적 질병’중 하나라고 말한다. 그만큼 자살은 이제 우리 사회와 삶의 한 부분이 됐다. 어찌됐든 이러한 우리 사회와 우리 교회의 부정적 현상은 안타까움을 넘어 분노하게 한다. 물론 오죽했으면 자살하겠는가하는 동정도 할 수 있지만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에게 있는 생명의 소유권을 사람이 가질 수 없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한 술 더 뜬 이규태 장로라는 사람의 부정이다. 그의 삶은 국가와 사회, 교회의 부정의 극치였다. 그의 죄가 만천하에 드러남은 모두를 위해 천만다행으로 주님의 심판이라 할 수 있다. 방산비리혐의를 받는 그가 서울의 모 교회의 장로로 교회의
1944년 5월 10일은 우리 기독교한국침례회 교단으로서는 일본의 압제 속에서도 우리 믿음의 선조들이 끝까지 신앙 순수성을 간직한 역사적인 날이며 혹독한 핍박의 날로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일제는 1910년 한일합방을 시작으로 우리민족은 36년의 식민지 통치 속에 들어갔으며 특히1938년부터는 일본 총독부가 주관이 되어 일명 황민화 정책을 펼치면서 우리 조상들에게 신사참배, 창씨개명, 일본어 사용 등을 강요하는 소위 한국인들의 정신과 영혼까지도 일본화 시키겠다는 민족 말살정책을 시행했습니다.그 결과 신사의 경우 1945년 6월까지 신궁 2곳, 면단위 신사 77곳, 마을단위 신사 1,062곳이 세워졌으며 이것도 부족하여 각급 학교 등에는 ‘호안덴’을 세우고, 각 가정에는 ‘가미다나’라는 가정 신단까지 만들어 아침마다 참배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신사참배에 동원된 인원은 조선신궁 참배자만도 1940년에 약 215만 9,000명, 1942년에는 약 264만 8,000명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 한국교회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계속되는 일제의 강압에 눌려1936년 6월에 감리교단을 시작으로 국내 최대 교단인 장로교단 마저 19938년 9월 10일에 제27회
오늘날 한국 사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노인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책임이 가중되고 있다. 노인인구의 지속적인 증가추세로 인한 퇴직 후 여가시간과 수명의 연장 등으로 인한 문제는 더 이상 개인적인 문제로 미룰 수만은 없게 됐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은퇴 후 시간이 늘어나면서 ‘제2의 인생’이 더욱 길어지는 추세다.따라서 은퇴 후 경제적 활동의 비중증가와 함께 여가활동으로 보내는 시간이 더욱 증가하고 있다. 노인들의 평균수명 증가와 건강상태 호전으로 노인들 가운데서 병약해서 일할 수 없는 노인들의 비중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반면, 건강하게 장수하는 노인이 늘어나면서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도 은퇴 후 30~40년을 노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또 초고령사회에서 생활하게 될 노인들은 현재의 노인들에게 비해 교육수준이 현저히 높아질 전망이다. 노인이 차별시 되는 사회에서 노인의 교육, 노동, 여가라고 하는 인생의 주요 과업이 이미 결정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그 틀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이에 노인층에 대한 사회복지와 노년기의 발달과업 수행과 관련한 노인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경제력이 있는 노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라는 속담이 있다. 무슨 일을 하려고 생각하였으면 망설이지 말고 곧 행동으로 옮기라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어떤 사안에 대해 신속하고 정확한 처리가 요구될 때 사용하는 말이다.우리 교단은 지금 어느 때보다 이 말이 이뤄져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수단과 방법, 절차와 규정이 어떻게 됐던 간에 보다 지혜롭게 하지만 신속하고 적절하게 사후 처리가 이뤄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다.본지를 비롯해, 교계 언론들이 침례교회를 주목하고 있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모습보다는 안타까움과 문제, 분란 등의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상황이 씁쓸할 지경이다.무엇보다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교단이라는 침례교회가 언제부터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우리 스스로를 되돌아 봐야 할 것이다. 이는 우리 목회자 스스로의 자성, 그리고 세상과 타협한 교회와 교회 구성원들의 진정한 회개에 있다.혹자는 교단의 치부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며 우리 스스로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성경적이라 할 수 없는 방법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에서 놀라운 승리를 거둔 뒤, 범죄함으로 아이성에서 패배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의 치부
전세계 교회가 4월 5일 주일을 부활주일로 지킨다. 가톨릭교회나 자유주의 신학을 신봉하는 자들이 구약의 율법이나 의식주를 우선시하는 것처럼 형식적인 부활 기념을 지내서는 안 된다. 크고 작은 행사에 치중해서는 안 될 것이다. 주님의 부활은 온 세상 사람들의 사망 권세를 이기고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15:14)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복음도 헛것이고 신앙도 헛것이라고 선포한다. 부활이 복음의 핵심인 동시에 신앙의 핵심임을 의미한다. 그런데 우리는 복음을 전파하면서 얼마나 부활을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의 신앙에서 얼마나 부활을 찾아볼 수 있는가? 또한 교회에서 부활절 외에도 부활에 대한 말씀이 얼마나 선포되고 있으며, 부활이 강조되고 있는가? 만일 부활절에만 연례적으로 ‘부활’을 언급하고 행사를 치른다면, 이는 교회가 복음과 신앙의 핵심을 모르거나 놓치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복음 메시지를 들어보면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신 구원자(Savior) 그리스도는 넘쳐나지만, 다시 부활하신 주(Lord) 그리스도는 찾아보기가 어
금년에도 어김없이 부활절을 맞이했다.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의 고난이 온 인류를 위한 고통이었음을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새로운 신앙의 결심을 하게 된다.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것을 생각하면 나태했던 신앙의 모습을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다. 어버이날이 되어서야 나를 향한 부모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조금이라도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 겸연쩍기는 하지만 그렇게라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다.요즘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보면 좋은 말이 없다. 말속에 ‘화’가 섞여 있고 ‘분’이 섞여있다. 문제는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같은 모습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비록 세상 사람들은 화를 내고 분을 내더라도 성도들은 그것을 순화시켜서 어찌되었든 세상을 밝게 만들어야 하는데 성도들 역시 같이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성도들이 어떤 가치와 생각으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적어도 세상 사람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려면 세상 사람과는 달라야 한다.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 방식대로 휩쓸리어 가다가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도들이 생각해야 할 가치는 생명이다. 또 하나 영원한 생명을 이야기하는 부활
교회의 사명은 영혼구원이 최우선이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고, 사회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기주의와 독선에 함몰되어 복음 전파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나아가 이웃의 아픔을 외면하는 비현실적인 사역에만 치중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비롯해, 한국교회 대표 연합기관들도 예외는 아니다. 목회자들의 독선과 이기주의, 명예 때문에 분열되는 갈등을 겪고 있는 현실이 비기독교인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 하나는 요즘 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에 하나가 “복”이라는 단어다. 그것이 세속적인 복이든 영적인 복이든 아마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복이 빠진 설교가 드물고, 복이 빠진 기도가 드물다. 그러다 보니 예수를 믿는 것이 복인지, 복을 받기 위해 예수를 믿는 것인지 주객이 바뀌는 경우를 흔히 본다. 기독교 진리를 오해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알게 된 그 자체가 가장 크고 중요한 복인데, 그것을 경시하고 더 큰 복을 받겠다고 엉뚱한 일에 분주한 사람들이 많다. 이는 진리의 우물가에 앉아서 목이 마르다고 엉뚱한 포도주를 찾는 격이다. 마치 우물가의 여인처럼 영원한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