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의 시인이자 극작가인 모리스 메테를링크(Maurice Maeterlinck, 1862~1949)는 인생을 ‘한권의 책’에 비유했다. “태어나 죽을 때까지의 모든 여정은 매일 한 페이지씩 글을 창작해가는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오늘도 우리는 ‘인생’(人生)이란 제목의 책을 한 페이지씩 써 간다. 그러므로 이는 우리가 글로 쓰는 일기(日記)와는 다르다. 글로 써가는 것이 아닌, 삶으로 써가는 책이다. 행동으로, 말로, 표정으로, 생각들의 총체로 채워가는 책이다.자서전(自敍傳)과도 다르다. 자신이 쓰고 싶거나 기억하고 싶은 업적들로만 채워지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내게 인생을 선물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관점으로 오늘 내 삶을 바라보신 각도로 친히 써주시는 책이다. 그렇다면 지난 한 주간 내 책에 쓰여진 일곱 페이지는 과연 어떠했을까? 태어날 때부터 오늘까지 살아온 세월이 벌써 만 50년, 18095페이지나 넘겨온 나의 책에는 과연 어떤 것들이 기록되어 있을까? 너무 궁금하다. 생각해보니 혹, 양(量)에 있어서는 자랑할 게 있을지도 모르겠다. 주어진 24시간을 정말 빼곡히 채워왔고, 새벽부터 밤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
스페인이 낳은 위대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1852~1926)의 대표적인 건축물 “사그리다 파밀리아(聖家族)성당은 1882년도에 착공해서 153년이 되는 2035년도에 완공예정이라고 합니다. 성가족성당의 아름다움도 압권이지만 ‘가우디’가 남긴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서두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아름다움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가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그의 첫 번째 서신에서 그리스도인들은 누구나 부지런히 그리고 적극적으로 성장해야 한다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성장을 저해하는 어떤 요소라도 극복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을 향해 성장해 가야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의 몸, 그리스도의 밭, 그리스도의 집임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의 지체들에게 1절의 말씀에서 “형제들아”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형제들”이라는 말은 본문에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 자신이 “나는 여러분들과 같은 사람이며 형제”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구원의 복음을 위한 다양한 용어와 전달 방법이 사도행전 여기저기에 산재해 있다. 당시의 사회에서 통용되던 다양한 표현과 구원 개념의 활용이 사도행전의 구원 신학을 위한 ‘선포’(설교)와 사건들 속에 폭넓게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을 기초로 사도행전의 구원 신학은 전체 내용의 연계성 있는 구조 속에서 다면성을 가지고 입체적으로 펼쳐진다. 사도행전은 구원의 선포 속에 특징적으로 회개, 침례, 죄사함, 성령, 믿음, 하나님 나라, 부활, 심판, 질병치유 등을 포함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포와 구원의 실체는 어떤 하나의 사건이나 용어로 정의되기에는 매우 포괄적인 동시에 제한적이다. 이 때문에 사도행전은 구원을 마치 다의성을 가진 사상인 것처럼 오해한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기도 한다(각주, 이러한 오해를 전제로 한 변증이 예수를 통한 유일한 구원의 강조 속에 반영되어 있다.). 사도행전의 구원 신학은 사도행전의 내용 전개 과정 속에서 구체적으로, 점진적으로 통일성과 다양성의 조화를 이룬다. 펼쳐지는 구원 신학은 그 초점을 그리스도이신 ‘예수’에게 집중하면서 구원의 본질과 실체를 밝히며 전개되는 것이다. 사도행전의 구원 신학이 어떻게
세계에는 각종 기록이 존재합니다. 세계 신기록 보유자들이 많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하와는 절대로 빠지지 않습니다. 그녀에게는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이 붙습니다. 세계 최초로 창조된 여자입니다(창1:27, 창3:12). 세계 최초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간 여자입니다(창3:1, 6). 사탄이 여자를 먼저 공격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죄를 지은 여자입니다(딤전2:14). 그로 말미암아 세상에 처음으로 죄가 들어왔습니다. 세계 최초로 생명을 출산한 여자입니다(창4:16, 4:1). 그 당시 친정 엄마는 물론 상의할 이웃도 없고 출산을 받아준 산파도 없으며 도우미도 하나도 없는 상태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고 경험도 없이 아이를 낳느라 정말 외롭고 고생했을 것입니다. 창세기 3:20~21을 보면 아담이 자기의 부인이 된 아내 이름을 “하와”라고 불렀습니다. 하와는 범죄한 이후에 지은 이름입니다. 그 뜻은“산 자의 어머니”로서 세상의 모든 생명들은 아담과 하와의 후예입니다. 하와에게서 생명을 받고 태어났으니까요. 비록 죄를 지었을망정 그는 인류의 시조가 된 행복한 여인입니다. 하와에게는 또 하나의 세계기록이 있습니다. 그것은 처음으로 “옷을 입은 여자”라는 것입니다.
지도자에 대한 서적 몇 권을 찾아 읽었더니 대부분의 저자들이 일반적으로 지도자의 기본 요건으로 알려진 (1)해당분야에 대한 경험과 (2)전문지식 및 (3)인격과 (4)지도력에 덧 붙여“미래지향적 안목”을 필수요건으로 지적했다.이와 같은 정의(定義)는, “새의 눈을 가진 자 흥하고 벌레의 눈을 가진 자 망한다”는 옛 말처럼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에 것만 보고 꿈틀거리는 지도자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혁신가는 지금이 어려워도 장래를 내다보고 준비하며 훌륭한 지도자는 편안한 오늘을 사기 위해 내일을 내주지 않는다. 나폴레옹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에 100년 후의 파리를 생각해야 한다면서 수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시 전역 지하에 지상 도시 규모에 버금가는 거대한 상하수로를 건설했고, 비슷한 시기에 시카고 시는 마차가 다니던 시청 앞 진창길에 100야드 너비의 도로를 닦았다.그 때 건설된 지하시설과 시청 앞 도로가 지금까지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때 지도자에게 필요한 절대 요건이 선견지명이라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역사(役事)가 없었다면 두 도시는 오늘날의 파리와 시카고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역
다시 겨울이다. 추위도 추위지만, 길마저 미끄럽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도 내릴 때만 복스럽고 분위기 있을 뿐, 일단 땅에 내린 뒤에는 무서운 무기가 된다.얼마 전에도 한 식당을 향해 가다가, 낮은 기온으로 길마저 꽁꽁 얼어붙어 많이 미끄러워져 있던 저녁, 마주오던 어르신 한분이 그만‘꽈당’하고 엉덩방아를 찧으심을 보았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은 듯 했지만, 저렇게 이 겨울은 특히 노약자들이 조심해야 할 계절임이 느껴졌다. ‘어딜 나서는 것부터가 참부담 되는 계절이겠다.’싶어졌다.물론 그렇다고 다 그러는 건 아니다. 미끄러운 겨울길이라고 모두가 넘어지진 않는다. 넘어진다고 모두가 다치는 건 아니다. 넘어지지 않는 이도, 다치지 않는 이도 얼마든지 있다. 왜일까? 첫째, 민첩해서이다.아무래도 젊은이들은 동작이 민첩하여 중심을 잘 잡으므로 좀처럼 넘어지지 않는다. 혹 넘어져도 다치지 않게 잘 넘어진다.둘째, 쿠션이 많아서이다.완충장치가 충분해서이다. 그래서 적당한 살도 필요하다. 아무래도 살(?)이 많으면 넘어져도 뼈까지 다칠 일은 덜 할 게다.셋째, 길을 잘 살펴서이다.어느 곳이 유난히 미끄러운지, 어디를 밟고 걸어야 하는지를 세심히 살펴 걷기 때문이다. 뛰지
종교개혁가들은 이러한 로마가톨릭 교회의 화체설을 비판하며 화체설에 입각한 교회의 미사를 개혁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 비판과 그 개혁은 미진하였다. 마르틴 루터는 화체설을 비판하면서“공재설”(Consubstantiation)을 주장하였다. 그는 성도들이 주의 만찬에 참여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하였다. 떡과 포도주가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속에 그 분이“실제로”임재(Real Presence)하시고 “육체적으로” 임재(Physical Presence)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성도들이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면서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만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비해 쟝 깔뱅은“영적 임재설”(Spiritual Presence)을 주장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임재하는 것이 아니라“영적으로”임재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루터나 깔뱅이나 모두 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예수 그리스도가 떡과 포도주에 임재해 있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실제에 있어서는 로마가톨릭의 화체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육체적이든 영적이든 예수님이 임재해 있는 떡과 포도주에는 하나님의 신비스럽고 마술적인 능력이
지도자가 없거나 주인이 시원찮은 단체는 흔히 무주공산(無主空山)이라 불린다. 아메리카 대륙의 서부 개척시대에는 말을 타고 평원을 내달려서 먼저 경계를 정하고 말뚝을 세우면 제 땅이 되던 때가 있었다.그 무주공산 북아메리카 대륙이 오늘날과 같이 지도자와 서민이 함께 존중되는 나라가 되기까지는 미국 헌법의 기초를 놓은 로저 윌리엄스와 에이브러함 링컨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우리는 인류 역사와 성경과‘삼국지연의’나 시내암의 ‘수호전’등 문학작품에서 수많은 영웅호걸의 부침(浮沈)을 본다.얼마 남지 않은 수군과 전선(戰船)으로 남해바다 울돌목에 배수진을 치고 수많은 일본군 전함과 맡서 싸운 이순신 장군 같은 이가 없었다면 어떻게 임진왜란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으며, 처칠과 같이 용기 있고 걸출한 전략가가 없었다면 독일의 무차별 포화 아래에서 누가 영국을 구할 수 있었으며, 맥아더 장군같이 지혜와 용기를 겸비한 군인이 없었다면 누가 어떻게 공산군을 물리치고 한반도의 자유를 수호할 수 있었으랴!그런데 역사는 이들 위인들의 인간 승리 여부를 한 때의 성공과 업적에 두지 않고 뜻밖에도 시대적 요구를 깨달은 지혜로 진퇴(進退)를 결단한 용기에 두었다.
“( 뱀 )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 부패 )할까 두려워하노라” (고후11:3)세상 모든 싸움에는 전략이 있듯이, 특히 마귀와의 영적 싸움을 치루는 우리에겐 그 어떤 싸움보다도 잘 싸우고 승리하기 위해서 마지막 때의 마귀의 전략을 잘 분석하고 그에 대한 정확한 대안을 구사해야만 하겠습니다.우리가 하나님께 진실함으로 찬양 드릴 때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지 진실함을 떠나 건성으로 거짓되게 찬양하면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진실한 곳에 역사하시고 거짓된 곳엔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마음이 깨끗함으로 있을 때 하나님이 그곳에 찾아오셔서 역사하는 것이지, 미움과 시기와 탐심과 불평 등 더러운 것이 마음에 차 있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가기가 힘들뿐더러 그러한 곳에는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마귀의 전략은 성도들의 마음을 부패시키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신앙생활을 “쭉정이와 가라지” 신앙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교회는 가되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게 하며, 또한 교회 내부에서도 많은 문제를 야기 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병들게 하는 것입니다.위의
주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번 성탄절을 통해 오직 우리 주 예수님 홀로 우리를 다스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사사기 8장과 9장은 이스라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 사후(死後)에 이스라엘의 지도력에 공백이 생기자 기드온의 첩의 몸에서 태어난 ‘아비멜렉’이 이복형제 70명을 기드온의 성읍으로 불러 한 반석위에서 몰살시킨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끔찍한 살육의 현장을 요행히 피하게 된 기드온의 말째 아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이 엄청난 살육의 사건을 나무들의 ‘우화’로 백성들을 향해 소리쳐 알리는 사건의 기록입니다.이 끔직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이유는 이스라엘을 다스릴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자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형제를 살육하게 된 것입니다. 9장에서 보면 ‘아비멜렉은 어머니의 고향 세겜 성에 가서 여룹바알(기드온)에게 70명의 아들이 있지만 오직 자기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설득하고 있습니다. 아비멜렉은 추악하고 잔인한 사람입니다.(9:5) 이 사건에서 하나님은 ‘요담’의 입을 빌어서 ‘나무의 우화’로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잘못된 지도자를 허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