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죽어야 하며 품위를 갖춘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더욱이 극심한 고통으로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마저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생명윤리 문제를 다루는 성직자와 학자들은 ‘비록 극심한 고통이 있더라도 환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자신의 실존적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면서 온전한 자유와 책임감을 함께 갖춘 온전한 의식으로 죽음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현대의학의 완화의료기술은 극심한 통증을 조절,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과거에는 생각할 필요도,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본 연구의 주제인 안락사와 관계해서도 인간의 힘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막는 일이 발생하고, 이미 사회문제화 되어 각 나라마다 법제화 되어 가고 있다. 안락사 법안을 최초로 통과시킨 국가는 네덜란드로서 2000년11월28일 네덜란드 의회를 통과하였고, 이를 계기로 전 국가로 논쟁이 유발되었다. 이러한 시점에 안락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시각이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I
특히 침례교인들은 교회들의 연합이나 모임을 또다른 교회로 여기지 않는다. 교제와 협력을 위하여 지방회와 총회가 있지만, 그것들은 참석자 개인들의 모임이지 그 자체가 교회는 아니다. 큰 지역교회가 작은 지역교회나 농촌교회를 도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들 간의 관계는 종속적이지 않고 상호 독립적이다. 침례교 목사요 교회행정 전문가인 에드워드 히스칵스(Edward T. Hiscox)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이미 언급했듯이 각각의 독특하고 개별적인 교회(each particular individual church)는 모든 교회적인 권리들과 특권들과 책임들을 수행함에 있어서 실제로 그리고 절대적으로 독립적이다(actually and absolutely independent). 다른 모든 교회들과 개인들과 사람들의 단체들도 역시 독립적이다. 그리스도만이 그들의 입법자가 되신다.또한 침례교인들은 각 지역교회는 자치권(자율권, Autonomy)을 갖는다고 믿는다. 지역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에서 “스스로”(Auto) “규범”(Norm)이 된다. 각 지역교회는 “스스로 통치하는 유기체”(Self-governing Organism)이다. 지역교회 이외의
안락사의 분류는 그 생명체의 의사에 따라, 시행자의 행위 방법에 따라, 또 윤리적인 관점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1. 생명체의 의사에 따라(1) 자의적 안락사(Voluntary Euthanasia): 생명 주체의 자발적 의사에 따르는 안락사를 말하는 것으로, 이를 다시 두 경우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어떤 생명 주체의 명령, 의뢰 또는 신청 등의 적극적 요구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을 의뢰적 안락사라고 한다. 둘째, 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아니나 안락사를 승낙하여 이루어지는 경우, 즉 적극적인 의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소극적인 의사에 의한 경우를 승인적 안락사라고 한다. 극심한 고통의 해결을 위해 의사에게 죽여 달라고 환자 스스로 요청한 후 이것을 의사가 받아들여 치사량의 주사약을 주입하여 죽게 하는 것으로 네덜란드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것을 법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네델란드의 안락사 지침은 ‘당할 수 없을 만큼의 심한 통증이 있는 환자의 자발적 요청이 있고 죽음을 지속적으로 원할 때 주치의사가 동료의사들과 상의한 후 의학적 혹은 약리학적으로 정당한 방법을 택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2) 비자의적 안락사(Non-voluntary Euth
베란다 한 구석에 놓여 있던 군자란이 겨울을 이겨내고 화려한 꽃망울을 터뜨렸다. 옹색한 가운데서도 온도와 햇빛과 영양분이 균형을 유지해주었기 때문이다. 사람 역시 온전한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교양과 지식과 건강이 균형을 유지해야한다. 어떤 사람은 몸은 건강한데 의지력이 약해서 언제나 시작한 일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은 지식은 많은데 판단력이 약해서 평생 남의 말만 듣고 남의 주장만 따른다. 이와 반대로 자신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독선적인 사람도 있게 마련이다. 모두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다. 목회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교에 힘을 다하는 교회가 있는가하면 구제와 사회참여에 힘을 기울이는 교회가 있고, 성경공부에 힘을 쏟는 교회가 있는가하면 기도와 집회에 전력을 다하는 교회가 있다. 어느 것도 좋다 나쁘다 하거나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므로” 은사대로 목회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교회의 기본적 기능인 예배와 전도와 교육과 봉사의 균형을 잃지 않으면 될 것이다. 만약 교회가 주어진 여러 기능을 조화롭게 실천하지 못하고 선교에만 치중(쏠림)하다가는 교회가 아닌 선
필자는 막달라 마리아가 개인적으로 부활의 예수를 만나는 사건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살펴보고 있다. 저자는, 천사들의 등장 때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부활하신 예수와 마리아 사이의 대화를 제시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어찌하여 울며 누구를 찾느냐 하시니 마리아는 그가 동산지기인 줄로 알고 가로되 주여 당신이 옮겨갔거든 어디 두었는지 내게 이르소서 그리하면 내가 가져 가리이다”(20:15).예수는, 천사들이 했던 것과 같이, 부활의 소식을 직접적으로 전달하지 않고 마리아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예수의 존재의 결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예수는 두 개의 질문을 던진다: 첫째는 천사들이 했던 질문의 연속으로서 “네가 어찌하여 우느냐”는 것이며 둘째는 그를 따라온 첫 제자들에게 한 것으로서 “네가 누구를 찾느냐”는 것이다(1:38). 첫째 질문은 마리아로 하여금 그녀의 현재의 부정적인 심리 상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것은 그녀로 하여금 그녀가 슬퍼하고 아파하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예수는 마리아를 죽음과 슬픔의 과거로부터 이끌어내는 선한 목자로서 그녀에게 접근한다. 둘째 질문은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궁극적인 목표로서 부활하신 주님과의
그렇다면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인간은 어떻게 죽어야 하며 품위를 갖춘 죽음이란 어떤 것일까? 하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더욱이 극심한 고통으로 최소한의 인간적 품위마저 유지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죽음을 어떻게 맞아야 할까?생명윤리 문제를 다루는 성직자와 학자들은 ‘비록 극심한 고통이 있더라도 환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자신의 실존적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면서 온전한 자유와 책임감을 함께 갖춘 온전한 의식으로 죽음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더불어 현대의학의 완화의료기술은 극심한 통증을 조절, 인간적 품위를 지킬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다.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과거에는 생각할 필요도, 생각할 수도 없었던 일이 현실화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본 연구의 주제인 안락사와 관계해서도 인간의 힘으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막는 일이 발생하고, 이미 사회문제화 되어 각 나라마다 법제화 되어 가고 있다. 안락사 법안을 최초로 통과시킨 국가는 네덜란드로서 2000년11월28일 네덜란드 의회를 통과하였고, 이를 계기로 전 국가로 논쟁이 유발되었다. 이러한 시점에 안락사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바람직한 시각이 어느 때 보다도 필요한 시기라고 본다. II
따라서 침례교인들은 “대리종교”(proxy religion, 대표적인 예로 유아세례, 고해성사, 국가권력에의 의존, 목회자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신앙 등이 있다)를 배격한다.침례교인들은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거나 믿지 않을 능력,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하여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을 “종교문제에 있어서의 영혼의 유능성”(Soul Competence in Religion)이라고 한다. 자유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품대로” 창조하신 인간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고 믿는다. 비록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 자유의지가 부패하기는 했지만, 성령의 감동하심과 역사하심이 있을 때 인간은 마음문을 열고 예수님을 개인의 구주요 주님으로 영접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 영혼의 유능성(역량)은 인간이 획득해 낸 능력(a human achievemant)이 아니라,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해 주신 능력(an endowment from God)이요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a gift from God)인 것이다. 1963년판 「침례교 신앙과 메시지」(Baptist Faith and Me
우리가 대마초 또는 마리화나(marijuana)라고 하는 식물은 인도산 칸나비스 사티바(cannabis sativa) 삼 잎과 꽃에서 추출한 일종의 마약이다. 이 식물은 생명력이 강해서 더운 곳이나 추운 곳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이지 않고도 젊은이들이 쉽게 구할 수 있다. 마리화나는 동남아시아와 남미 등 세계 각지에서 재배되어서 미국을 비롯한 북미주 일대와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마리화나는 잎으로, 액체로, 또는 가루로 만들어져서 주로 젊은이들을 파고드는데 안타까운 것은 전문가들이 아직 그 해독(害毒)과 중독성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캐나다 정부는 마리화나의 해독이나 중독성이 증명되지 않았고, 또 마리화나가 마약으로 분류되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밀수와 밀매가 성행하고 그로 인해 범죄가 만연한다고 판단하고 마리화나를 중독성 금지 약물에서 해제하였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은 정신적 예속이 육체적 습관성 보다 더 무서운 중독이라고 말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도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은 육체적 중독 보다 정신적 의존도 때문일 것이다.캐나다와는 달리 마리화나를 마약으로 분류하고 모든 마약을 엄격하게 통제하는 중국과 아랍 국가들은
사냥개에도 종류가 많다. 몇 종류만 살펴보자. 저먼 셰퍼드 독. 셰퍼드라는 말은 양치기를 의미하는데, 이 견종의 목양견의 역사는 오래 되었으며, 유럽 각지와 아시아 서부에 넓게 분포 된 적도 있었고, 그 토지에 적합한 목양견으로 활약해 왔다. 이 개는 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경비견이나 수사견으로, 맹인들에게는 맹도견으로, 농부에게는 목양견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불 마스티프. 불독과 비슷한 모습의 험악한 외모를 한 불 마스티프는 말 그대로 ‘디자이너 독’으로서 19세기에 불독과 마스티프의 이종 교배를 통해 각각의 특성을 결합시켜 개발되었다.불 마스티프는 불독의 용기와 사나움, 마스티프의 힘과 후각을 겸비하고 있기 때문에 사냥꾼에게는 매우 이상적인 보호자이자 벗이 되고 있다. 도베르만. 전통적인 소몰이 개와 롯드와일러, 핀셔, 맨체스터 테리어, 그리고 그레이하운드 등의 교배를 통하여 개발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도베르만은 1900년에 옥일 켄넬 클럽에 의해 공인되었으며, 세계 곳곳에서 경찰견으로 이용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에게 그의 친한 친구가 두 마리의 사냥개를 선물했던 적이 있다. 어느 날 알렉산더는 그 사냥개들을 데리고 토끼사냥을 떠났다. 하지만
I. 들어가는 글2000년대 들어 ‘생명윤리’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부터 10년 전 황우석 교수의 사이언스 논문 조작과 관련해 생명윤리 논쟁이 첨예하게 펼쳐졌고, 이로 인해 우리나라 생명윤리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나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했고, 안타깝게 했다. 현대의학 기술의 발달은 인간의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살리는데 많은 기여를 해왔지만 이로 인해 고통스런 죽음이 무의미하게 연장되는 경우도 종종 생기게 되었다. ‘고통 없이 죽을 권리’에 대한 환자 자신의 요구, 회복 불가능한 환자의 가족이 겪게 되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과 정신적 고통, 그리고 노령화와 더불어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환자들의 증가 등은 죽음의 방법과 시기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야기하게 되었다. 2005년 3월 20일 국민일보에 난 아래의 기사는 죽음의 방법과 시기를 둘러싼 사회적 문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15년 전 심장마비로 식물인간이 된 한 여성의 생명연장장치(생명연장 장치란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말기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다양한 의학적 기술들과 처치들을 말한다. 생명연장 장치의 사용은 보통으로 의학적인 결정에 따르게 되며, 경우에 따라
첫째로, 안디옥에 있는 지역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예루살렘에 보냈고(행 15:2~3), 예루살렘에 있는 지역교회가 사도들과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그들을 영접하였다(행 15:4).둘째로, 바울 및 바나바와 예루살렘교회의 지도자들 간에 이방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기 위해서 안디옥교회가 회의를 개최하도록 주도한 것 같다. 다른 말로 하면 사도들이나 다른 지도자들이 아니라 (안디옥) 교회가 주도하여 회의를 개최하도록 한 것이다.셋째로,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지만 전체 교회(“온 무리”)가 논쟁에 귀를 기울여 “들었다”(행 15:12). 넷째로, 사도들과 장로들과 함께 전체 교회(“온 교회”)가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사항을 전달하기 위하여 “그 중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로 결정하였다”(행 15:22). 이 때 택함받은 사람들은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였다.다섯째, 편지는 안디옥과 수리아와 길리기아에 있는 교회들에게 전달되었다(행 15:23).여섯째, 안디옥 교회(“무리”)가 그 편지를 받아서 “읽고 그 위로한 말을 기뻐하였다”(행 15:31). 예루살렘 회의의 과정에서 “많은 변론이 있기는 했지만”(행 15:7), 참석
변화하는 세상 풍조와 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말이다. 이를 바꾸어 말하면 언어의 변화과정이 문명의 변천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동회사무소가 주민 센터로 바뀐 것은 관공서가 권위적 인상을 씻어내고 주민의 편의를 위해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일 것이며,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뀐 것은 그것이 단순한 전화의 기능을 뛰어넘어 사전, 계산기, 성경찬송, 전화번호부와 메모장, 사진기, 백과사전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는 최첨단 전자기기라는 의미일 것이다. 시대의 변천을 나타내는 말로는 향교가 학교로, 서원이 대학으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경무대가 청와대로 바뀐 것 등을 찾아볼 수 있다. 특권층만 소유하던 자가용이 모든 시민이 다 소유하는 승용차가 되고 변소가 화장실이 된 것은 우리 국민의 의식과 경제수준의 향상을 말해준다. 지불이 결재로 바뀌고 다방이 카페로 바뀐 것 또한 우리 문화의 변화를 나타내는 표현이다.발음의 변화를 살피건대, 우리말에는 외국어를 고유의 발음대로 하지 않고 일본식이나 한문의 발음을 따른 것이 너무 많다. 그래서 프랑스를 불란서로, 빠리를 파리로, 터키를 토이기로, 홍콩을 향항으로 발음해왔다. 그러나
사복음서들에서 공통적으로 빈무덤 이야기는 부활현현 이야기로 이어진다. 빈무덤 이야기가 예수의 부활에 관한 간접적인 증거인 반면, 부활현현 이야기는 직접적인 증거의 성격을 갖는다. 신약성서 어디서도 예수의 부활 자체에 관한 어떤 묘사나 언급이 제시되지 않았으며 오직 부활의 결과인 부활현현 사건으로 제시된다. 예수의 제자들이 부활의 주님을 본 것은 외인들(비신자들)이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부활현현의 체험은 이미 예수를 믿은 사람들의 신앙을 확증하고 새롭게 하며 온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도마 사건은 부활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의심하는 제자들을 주님 자신이 도와준 사건이다. 예수의 부활은 그의 삶과 사역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을 나타낸다. 그것은 또 예수의 공생애 동안에 그에 대하여 가졌던 제자들의 신뢰에 대한 하나님의 인정이기도 하다.부활현현 이야기에 있어서도 각 복음서 저자는 자신의 방식을 따라 고유한 내용을 다룬다. 마태는 부활의 예수께서 그 무덤을 방문했던 여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을 보고한다(마 28:9~10). 요한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무덤을 최초로 방문했던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였으며 부활현현을 최초로 경험한 사람도 그녀라고 전한
4. 이방인 동방 박사의 현현 경배동방 박사 역시 현현한 예수 앞에서 경배를 하였지만 마태복음에 언급된 다른 현현의 경배와 일단의 상이한 점이 있다. 일반적으로 마태가 언급한 현현의 경배 자들은 마태공동체의 내부 인물이거나 팔레스타인 거주민 이었다. 반면에 동방박사는 이방인 지역 출신으로 팔레스타인을 방문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마태는 이방인 지역에서 온 동방 박사의 예수 경배를 신적 현현 경배로 설정했는가? 동방 박사는 신적 계시를 따라 동쪽에서 별을 보고 예수가 있는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2:9). 동방 박사는 여행의 목적인 예수를 찾았고, 무릎을 꿇어 머리를 조아린 자세로 경배하며 예물을 드렸다(2:11). 본 구절은 보편적으로 마태의 선택적 기준에 의해 편집되었다는 학설로 인정받고 있다. 포엘은 동방 박사의 아기 예수 경배에 묘사된 신적 현현은 누구를 경배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지를 마태공동체 구성원에게 분명하게 제기하려는 동시에 이방인도 경배자라는 신학적 의도가 담겨있다고 주장하였다.동방박사가 가져온 예물 가운데 유향과 몰약은 팔레스타인 지역 사람들이 동쪽에 있는 지역에서 수입하는 물품이었다. 당시 사회는 유향을 신성한 물품으로 규정하고 있었다(
III. 성경의 실례들사실 신약성경에 의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모든 신자들의 공동체인 천상적인 개념인 “우주적 교회”(Universal Church)와 지상의 일정한 지역을 중심으로 모이는 신자들의 공동체인 “지역교회”(Local Church, 개교회) 이외에는, 지방회나 노회나 총회나 연맹이나 연합회 등 지역교회들을 묶어주는 연합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각 지역교회들은 독립적으로 존재했고 필요하다면 상호 협력하는 관계를 유지하였다. 신약성경에 의하면 교황이나 총대주교나 총회 산하의 지역교회들을 지휘하고 통솔하는 의미의 감독이나 총회장이나 노회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신약성경에서 회중주의적 행정이 이루진 대표적인 예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 죄를 반복적으로 범한 형제에 대한 치리(마태복음 18:15~20)본문은 예수님께서 죄를 반복적으로 범한 형제에 대해서 그를 어떻게 죄로부터 돌이켜 다른 형제들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것인가에 관하여 교훈하신 내용이다. 죄를 범한 형제가 발견되면 은밀하게 개인적으로 그리고 사랑의 마음으로 권면을 할 것이고, 만약 권면을 듣지 않으면 두세 사람이 함께 찾아가서 그와의 대화를 통해 죄로부터 돌이킬 수 있도록 도우라고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