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겠습니다” 하고 말해야 할 것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자신 없는 말이다. 우리말 사전에서 ‘하도록’을 찾으면, “하여금…하도록”이라는 관용구로 설명됐고, “그로 하여금 집을 설계케[하도록] 하라”는 예문이 붙어 있다. ‘하도록’은 원래 단독으로는 쓰이지 않고 ‘하여금’ 다음에 붙어서 누구에게 무엇을 시킨다는 사역의 의미로 사용되던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앞의 ‘하여금’이 생략되고 뒤의 ‘하도록’만 남아서 우리말을 그르치고 있다. 주인이 하인을 불러서,“이 서방, 오늘은 재 넘어 매밀 밭에 김을 매고 오게” 했다. 하인이, “예, 김매고 오도록 하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하인의 말을 들은 주인이 성난 음성으로, “이 서방, 내가 자네한테 김매라고 했는데 누구한데 하도록 하겠다는 말인가?” 하고 역성을 낸다. 이 서방은 곧 주인의 뜻을 헤아리고 ‘하도록’을 빼고, “예, 어르신, 제가 매밀 밭에 김 매고 오겠습니다” 하고 대답한다.그 집에서 주인의 말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말 할 수 있는 사람은 주인의 지시를 받아서 일꾼들에게 전달하는[하도록 하는] 청지기 [뿐]이다. ‘하도록’은 다른 사람에게 일을 시키겠다는 말이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거나 여러 가지 원인으로 살해당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죽음의 성격이 문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반적으로는 단순 사고사, 의사(義死), 국가 유공자와 순국자를 구별하는 문제; 종교적으로는 순교와 순직을 구분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사고사, 의사자, 및 유공자1) 공무나 업무 수행 중에 천재지변이나 사고로 숨지는 것은 순직2) 위험에 빠진 동료나 동행인을 구조하다가 희생당한 사람은 의사자(義死者) 3) 공무 수행중인 동료나 상사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 국가에 공을 세운 사람은 국가 유공자(有功者)4) 나라를 구하기 위해 희생당한 죽음은 순국이다.그러나 비록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고 하더라도 사고나 천재지변에 의해 죽은 사람을 의사자나 유공자로 예우하는 것은 잘못이다. 오늘 아침 대법원에서는 군에서 가혹행위를 견디지 못해 자살한 병사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공을 세운 사람이 유공자이지 자살한 사람이 어찌 유공자란 말인가. 그런 의견은, 제안하는 이의 의도와는 달리 자살을 정당화하고 조장하는 동기를 부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소수 의견이기 바랄뿐이다. 연민(憐憫)이
일찍이 중국 송나라 시인 양만리(楊萬里)는 야생장미 ‘월계’(月桂)에 대하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읊었다. “제 아무리 화려한 꽃이어도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말인데, 지금도 자주 권력의 무상함을 말할 때 쓰인다.1661년 8월, 프랑스에선 이런 일이 있었다. 루이 14세가 다스리던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니콜라 푸케(Nicolas Fouquet)가 자기 살려고 ‘보르비콩트’(Chateau de Vaux-le-Vicomte)라는 어마어마한 대저택을 지었는데, 그는 그 집 하나를 지으려고 마을을 세 개나 사들였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 워낙 많아 자랑하고파서였단다. 그렇게 해서 그는 4년간이나 집을 지었는데 동원된 인원만도 18,000명이란다. 정원의 넓이만 해도 무려 10만평이란다. 이번에 내가 가보고 정말 놀라 자빠질 뻔했던 건 마굿간이다. 웬만한 우리나라 박물관보다도 더 컸다. 정말 최고급의 마차와 말들까지도 다 구비해놓았다. 놀라움은 집 크기만이 아니다. 당대 최고의 설계사, 당대 최고의 조경예술가, 당대 최고의 실내 장식가를 동원하여 꾸민 그 화려함의 극치는 혀를 내두른다. 그렇다면 정말 이 사람은 물려받은 유산으로만 그렇게 한 걸까?
필자는 지금까지 누가복음 24장을 토대로 누가가 제시하는 부활현현의 체험과 그 속에 포함된 부활신학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이제는 요한복음 20~21장을 토대로 요한이 제시하는 부활현현의 체험과 그것에 포함된 부활신학을 제시하려고 한다. 사복음서 기자들이 공통적으로 예수의 공생애 사건의 결론으로서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제시하는데, 각 기자는 각자의 관심사와 방식을 따라 그 작업을 진행했다. 예수의 부활에 관한 초기 전승들에는 부활현현을 경험한 사람들의 목록이 포함되었으며(cf. 고전 15:5~8), 그 후에 빈무덤 이야기들과 현현 이야기들이 추가되었다. 요한도 기본적으로는 빈무덤 사건과 현현 사건들을 결합하여 예수의 부활을 묘사한다. 그러나 그는 부활현현 사건들을 제시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며 예수의 부활을 묘사함에 있어서 공관복음서 기자들과는 또 다른 국면을 부각시킨다.요한은 먼저 빈무덤 사건을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와 익명으로 나오는 예수의 사랑 받은 제자를 중심으로 묘사한다(20:1~10). 요한은 다음에 막달라 마리아가 홀로 그 무덤에 남았을 때 그녀가 개인적으로 체험한 부활현현 사건을 다룬다(20:11~18). 요한은 제자들이 함께
삼위일체 하나님은 상호 협력적인 존재시다. 물론 이점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삼신론에 빠질 위험이 있지만, 성경은 성부-성자-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협력적 관계이시고 협력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특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지으실 때(창 1장)와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고 교회를 세우실 때(엡 1장) 확연히 드러내셨다. 협력은 창조의 원리이다. 인간은 처음 창조될 때부터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은 존재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남자를 만드신 후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드셨다. 그러므로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서 함께 더불어 살고 함께 어울려 서로 협력하는 가운데 일을 성취해야 정상인 것이다. 하나님이 직접 만드신 가정도 그렇다. 남편과 아내가 한 마음 한 뜻으로 합심 단결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갈 때 가정을 세우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다.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의도는 협력관계를 손상시키고 깨뜨려 버리며, 왜곡된 거짓 협력을 추구하게 된다. 창세기 11장은 타락한 인류가 합심 노력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벨탑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일치된 언어와 주어진 능력을 가지고 하늘에 닿을 탑을 쌓아 그들의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고 하나
분별없이 사용되는 우리말 중에 “상황”을 빼놓을 수 없다. 상황은 “일이 되어가는 형편이나 모양”을 의미하는 말이다. 개인적 대화에서는 별로 많이 쓰이지 않으면서도 유독 뉴스와 스포츠를 포함한 보도 프로그램에서는 지나치도록 많이 사용되며 그만큼 오남용 사례도 많다(목회서신60회 참조). 다음의 사례를 보자 : 교통사고 현장에 나간 부하 경찰에게 서장이 전화를 걸어 처리과정을 묻는다 :“이 경장, 상황이 어떤가?” 상관의 물음에 대한 이경장의 가능한 대답 두 가지를 제시해 보았다 :(1) “네, 서장님, 가해 차량과 피해 차량을 갓길로 옮긴 상황이고, 양방향 소통이 원활하게 된 상황입니다. … 피해 차량 동승자는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2) “네, 서장님, 방금 가해 차량과 피해 차량을 갓길로 옮겨서 양방향 차량 소통이 원활하게 됐습니다. 두 운전자와 피해 차량 동승자는 지금 응급처치를 받고 있습니다.”대답 (1)은 말끝마다 “상황”을 붙여서 말을 얼마나 품위 없게 만드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반면에, 대답 (2)는 상황을 묻는 질문에 “상황”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상황을 조리있게 설명한다. 대답 (2)가 바른 표현이다. 잘못 사용된 사례 몇 가지
근래 일부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말씨가 지나친 속어 사용과 거친 말투로 인해 생각 없이 내뱉는 시정 말이 되어가는 것 같다. 문헌에 의하면, 지나간 시대의 교양인(君子)들은 절제되고 고운 말을 사용한 것으로 나타나는데 요즈음은, 나라의 말씨를 대표하는 일부 방송 매체까지 여과되지 않은 거친 말을 쏟아내고 있다. 한 여성 앵커가 자신의 대담 “프로”에서 초청 경제 전문가에게 말한다. “그러니까 4/4분기의 경기회복은 물 건너갔다. 이런 말씀이지요? 재경부는 헛물만 켰군요.” “물 건너갔다”는 표현은 시정 상인들이나 가까운 친구사이에서 사용되는 남정(男丁)들의 속어(俗語)이며, “헛물을 켠다”는 말은 성행위를 묘사한 데서 나온 마구발방 말로서 방송인이 공적인 대화(보도)에서 사용할 말이 결코 못된다. 다음과 같이 고쳐 말해야 한다: “그러니까 4/4분기의 경기 회복은 불가능할 것이라는 말씀이군요. 재경부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또, 근래에는 한 문장으로 해야 할 말을 장난치듯 두 동강을 내어 말하는 습관을 가진 방송인이 많다. “관악산 댐 공사는 맞지 않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2012.4.15. 6:45,MBN). “이번 겨울도 끝자락을
2014년, 한해의 절반을 지나면서 그동안 내가 목회하면서 더 중요하게 여겨온 가치들에 대해 정리해봤다. 적고 보니 부족한 점 많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보려고 애는 쓴다. 1. ‘수단’보다는 ‘목적’ 2. ‘현상’보다는 ‘본질’ 3. ‘사실’보다는 ‘태도’ 4. ‘외형’보다는 ‘내면’ 5. ‘속도’보다는 ‘방향’ 6. ‘일’보다는 ‘관계’ 7. ‘결과’보다는 ‘과정’ 8. ‘권한’보다는 ‘책임’ 9. ‘혼자’보다는 ‘함께’ 10. ‘빨리’보다는 ‘멀리’ 11. ‘부분’보다는 ‘전체’ 12. ‘변질’보다는 ‘변화’ 13. ‘주장’보다는 ‘순종’ 14. ‘불평’보다는 ‘감사’ 15. ‘오해’보다는 ‘이해’ 16. ‘비난’보다는 ‘수용’ 17. ‘인물’보다는 ‘인상’ 18. ‘조직’보다는 ‘역동’ 19. ‘성장’보다는 ‘성숙’ 20. ‘양’보다는 ‘질’ 21. ‘겉’보다는 ‘속’ 22. ‘체격’보다는 ‘인격’ 23. ‘문제’보다는 ‘믿음’ 24. ‘화려함’보다는 ‘수려함’ 25. ‘과거’보다는 ‘미래’ 26. ‘처음’보다는 ‘나중’ 27. ‘들은 것’보다는 ‘듣는 것’ 28. ‘나’보다는 ‘남’ 29. ‘재미’보다는 ‘의미’ 30. ‘말’보다는 ‘삶’ 31. ‘
한국교회의 향후 10년은 구약성경의 요셉이 애굽에서 7년 풍년 후 7년 흉년을 경험하는 기간이 될 수 있다. 한국교회의 침체 기간이 30년이 경과하는 시기이다. 한 세대 동안 갈등과 현실 유지에 매달려 오고 있는 한국교회는 80%에 가까운 교회가 작은 교회들이다. 침체가 장기화 될 경우에 닥칠 위험은 여러 가지가 있다. 작은 교회가 무너지고, 교인들은 노령화가 되면서 자립이 어려워지고 다음세대를 준비할 여력이 상실 되게 된다. 앞으로 10년은 한국교회가 위기와 기회가 복잡하게 공존하는 미래에 직면 할 수 있고, 몰락과 부흥의 갈림 길이 될 수 있다. 2010년 통계청의 인구센서스 자료를 기반으로 저출산, 고령화의 파급, 한국교회의 위기 요소들을 고려 할 때에 2050년에는 한국교회 교인 숫자가 500~600만 명으로 감소 할 수 있고, 그 중에 60~70%는 55세 이상 은퇴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21세기는 대형교회들도 많을 것이지만, 작은 교회가 부각돼야 할 시기가 됐다. 전 세계적으로 ‘작고 강한 교회’운동이 일어나고 있고 이미 전개되고 있다. 작고 강한 교회의 시대이다. 한국교회의 작은 교회가 강하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사역이 활기차고, 교
이머징(emerging)이란 문자적인 뜻은 “새롭다, 떠오른다, 최근, 신흥 등”의 의미이다. 즉 뭔가 구태의연하지 않고 새로운 시각과 새로운 접근을 통해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는 교회의 시각적, 상징적, 예전적 유산을 찾아내어 다시금 그 의미를 되살리는 동시에 그것을 21세기 상황 속에서 재해석하여 적용하고자 노력한다. 즉 이머징 교회는 초대교회의 귀중한 유산을 회복하여 근원적 뿌리를 되찾고자 하는 흐름이다. 머레이(Stuart Murray)는 그의 책 「기독교 시대 이후의 교회」(Church After Christendom)에서 이머징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이머징 교회는 공통점이 너무 없고 예외적인 사항이 많아서 보편화하여 묘사할 수 없다. 대부분의 이머징 교회는 각기 새로워 분명하게 규정짓기에 너무 유동적이다. 그래서 각각의 특징에 따라 독자적으로 불린다. 이머징 교회를 나타내는 호칭에 대하여 일치된 의견이 없다. ‘교회답기 위해 새로움을 찾는 교회,’ ‘떠오르는 교회,’ ‘신선함이 나타나는 교회,’ ‘미래 교회,’ ‘그 다음 교회,’ ‘다가오고 있는 교회’ 등이다.”이머징
이번 주간에는 우리가 오남용(誤濫用)하는 말 중에 “모습”을 살펴보기로 한다. “모습”은 사람을 묘사할 때 사용하는 말로서, 옆모습, 웃는 모습, 뒷모습, 산길을 걷는 여인의 모습, 거울 앞에 앉은 누나의 모습, 등으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은은하고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그런데, 근래에는 주로 매스컴을 통해서 이 말이 엉뚱한 의미로 오남용 되는 사례가 많다. 필자가 메모한 오용사례 몇 가지를 검토해 보기로 한다. 1) 사람이 아닌 일과 몬을 [잘못]가리키는 경우다음 예문은 장맛비가 내려서 한강과 인근 지천이 범람했을 때의 현장 취재 리포트 내용이다: “이것은 오목교 모습입니다. 여기는 청대교 북단모습입니다. 물이 없는 모습인데요.… 지금은 물이 차 있는 모습입니다.”이 경우에는, “오목교 모습” 대신 “오목교 전경”, “물이 없는 모습 대신” “물이 빠진 상태” 혹은 “조금 전까지는 물이 없었는데 지금은 물이 찼습니다”하고 말해야 한다.부동산 활성화를 말하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거래량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하고 말하는 것도 잘못이다. 그래프를 보고 레이저빔으로 지적하면서 설명하는 경우라고 할지라도 “거래량이 늘어나는 현상,” 또는 “추세”라고
2012.10.14. 중앙일보에 실린 글이다.‘財閥(재벌)’이라는 한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진다. 그 어원을 보면 그렇다. 글자 ‘閥(벌)’은 ‘門’과 정복하다라는 뜻을 가진 ‘伐(벌)’의 합성어다. 고대 중국에서는 군대의 장수가 싸움에서 이겨 돌아오면 축하 파티를 열곤 했다. 이때 문(門) 밖 왼쪽에 서 있던 공로 병사를 ‘閥’이라고 했고, 오른쪽 병사를 ‘閱(열)’이라고 했다. 지금도 ‘閥閱(벌열)’이라는 말은 ‘공로가 있는 가문’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門’ 안에 ‘伐’을 쓴 이유 역시 싸움과 관계가 있다. ‘伐’은 ‘人(사람)’과 ‘戈(창)’이 합쳐진 것으로 ‘칼로 목을 베다’라는 게 원뜻이다. 정벌(征伐), 벌목(伐木) 등으로 쓰임새가 발전했다. 결국 글자 ‘閥’은 ‘싸움에서 칼로 적을 여럿 벤 수훈 병사의 집안’이라는 뜻이다. 글자 ‘財(재)’는 재물을 뜻하는 ‘貝(패)’에 ‘무엇인가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상태를 의미하는 ‘才(재)’가 결합됐다. 말 그대로 ‘돈을 벌고, 쌓아둘 수 있는 것’이 바로 ‘財’다. 이 ‘財’와 ‘閥’이 합쳐져 만들어진 ‘財閥’의 사전적 의미는 ‘돈을 벌어 쌓아둘 수 있는, 여러 분야에서 공이 많은 가족이나 집단’
2. 강소형교회를 만들기 위한 제안한국교회의 위기는 인구 감소, 경제쇠퇴, 사회변화 등과 같은 외부 요인들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시작됐다. 내부의 문제는 성장의 한계를 스스로 못 넘게 만드는 두려운 것들이다. 본 논문에서 한국교회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강소형교회 만들기 방안들을 위한 시도를 하였다. 일차적으로 문헌 연구를 하였고, 강소형교회들의 사례 조사와 침례교단 68교회의 설문조사를 통하여 강소형교회가 되기 위한 내용을 제시하고자 한다. 건강한 교회의 특징은 8가지로 목사, 평신도, 사역, 조직, 소그룹, 전도, 성경적인 우선순위와 나눔을 가지는 교회이다. 1) 목사(1) 바른 신학과 교리를 가르치고, 은혜의 복음에 대해 확실히 가르치는 교회가 되라(롬 3:20~22), 신학교에서부터 바른 신학을 배우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분명히 전해야 영혼이 구원받고 교회가 성장한다.(2) 기도와 말씀에 전념하고, 소명에 끝까지 충실하고 분명한 목회 비전을 제시하는 교회가 되라(잠 29:18). 소명의 사람은 생명을 다해 최선을 다해 목회한다. 믿음의 비전은 미래에 이룰 하나님의 청사진이다. 목사가 준비한 그릇만큼 성장하며 현실적이어야 하고 허황된 꿈을 버려
근래 이르러 교회의 건전성 여부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과연 오늘날의 교회가 제대로 된 교회인가 하는 참으로 난감한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 이것은 목회자와 성도들을 향한 따가운 시산이기도 하다. 교회의 이런저런 모습이 사회적으로 물의를 빚으면서 던져지는 비판적 질문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그렇게 된 이유는 사회의 책임도 아니고 어느 누구의 책임도 아니고, 교회와 성도 자체의 문제이다.중세교회가 초대교회의 모습을 상실하고 있을 때 종교개혁이 일어나 복음을 회복하고 교회의 모습을 되찾는 것 같았으나 또 다른 형태의 목회자 중심주의에 빠져 교회의 본질적 DNA가 되살아나지 않은 채 대선교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교파주의에 매몰된 채 지구촌 곳곳에 교회당이 세워졌다.20세기 초 기독교 목회의 중점사항은 성장이었다. 복음이 더 널리 전파됐야 하고, 교회가 더 많이 개척되어야 하며, 교회 내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야 하고, 이를 위해 교회당도 더 크게 지어야 하고, 교회의 재정도 늘어야 했다. 소위 말하는 교회성장 운동이 20세기 후반 까지 세차게 몰아쳤다. 그 결과 외형상으로 기독교는 부흥했고, 숫자 면에서 괄목할만한 증대를 이루었다. 그런데 성장은 이루었지
직업적 방송인들에게근래 우리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방송인들은 모두 오른 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볼[포인트] 펜을 끼워들고 나온다. 한참 전에 NBC와 CNN의 몇 앵커들이 펜을 들고 나오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우리나라 방송인들도 모두 펜을 들고 나온다. 펜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으나 필요하다면 테이블 위에 준비해두고 사용한 후에 다시 제자리에 놓는 것이 바른 사용법일 것이다.뉴스나 대담 프로그램을 보면서 전문 출연자들의 손놀림이 너무 많아서 손 유희나 수화(手話)를 보는 것 같이 생각될 때도 있다.우리말에는 형용사와 의성어(擬聲語)가 풍부해서 몸짓을 별로 필요로 하지 않는다. “저 높은”이라 할 때 하늘을 가리키거나, “얼굴”을 말 할 때 얼굴 모양을 만들거나, “고기압의 가장자리에” 하면서 오른 팔을 벌릴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제스처(몸짓)는 의사 전달을 돕기 위해 꼭 필요할 때 잠시 사용하는 것일진대 어떤 출연자는 처음부터 층계를 쌓듯 두 손을 다 사용해버려서 다음 단계를 묘사할 때는 팔을 한껏 들어 올려야 하고 그래도 모자라서 엉거주춤 일어서는 것 까지 본 일이 있다. 제스처는 분명한 의사 전달을 위해 언어 보조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지, 광범위한 시청자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