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주까지 가서 장례식에 참여하고 돌아온 아내가 피곤할 법도 한데 의외로 표정이 밝았다. 이유를 물었더니 두 가지 얘기를 들려준다. 하나는 머플러를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얘기다. 천안아산역에서 KTX기차를 타기 위해 오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아산역으로 이동하는데, 도착할 때가 되어 급히 내리려다가 무릎을 덮고 있던 머플러를 그냥 놓고 내린 것. 그러고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KTX로 갈아타고 대전도 훨씬 지나서야 그 생각이 났단다. 그래서 어찌할까 고민하다가 용기를 내어 전철과 코레일의 분실물센터를 거쳐, 1호선 전철의 종착지 신창역에 전화를 걸었단다. 그랬더니 “그런 건 못 찾는다. 손님이 주의를 했었어야 한다”며 핀잔만 들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사람을 보내 찾아보고, 찾으면 전화를 드리겠다”며 아내를 안심시키더니 너무나 친절하고 상냥한 목소리로 안내를 하더라는 것이다. 그러니 아내는 그 답변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했으리라. 물건 찾는 건 둘째 치고.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신창역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단다. “찾았다”고, “그런데 이걸 어떻게 전해드리면 되느냐“고. 그래서 아내는 자신의 동선을 일러주었단다. “제가 지금 경주로 가는데 오늘 저녁에
Ⅴ. 강소형교회 만들기작은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 전제 조건들이 있다. 목사가 교회가 성장하기 위해 대가를 지불하기 원해야 하고, 교인들도 교회성장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기 원하고, 교회는 전도의 목표가 제자 삼는 것임을 동의하고, 교회가 심각한 임종적 질병을 가지 않아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빨리 성장하는 교회들 중에 중요한 성장요인들의 하나는 지도자인 목사의 믿음이다. 교회 지도자가 하나님께서 그의 교회를 통하여 행하기 원하는 것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고 그 비전을 교회에 효과적으로 사용할 때, 그의 믿음은 교회 성장을 일으킨다. 믿음의 은사는 성령의 능력을 행하는 은사이며 하나님을 위한 임무를 수행하고 모든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그 임무를 수행시키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다.교회란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의 공동체이다. 작은 교회 성장에서 교회의 건강을 결정하는 것은 사람들의 머리와 손과 마음의 건강이다. 그 결과는 각자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며, 자신의 특성을 개발하고,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을 미치는 교회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회성장은 질적 성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질적 성장은 교회를 이루는 사람들의 손과 발 그리고
21세기 교회는 치유목회를 펼쳐야 한다. 교회는 예수님의 사역을 계속해나갈 책임이 있는 바, 전파하시고 가르치시고 고치신 예수님의 삼대 사역을 중요 과업으로 삼아야 한다. 대략적으로 볼 때 진리를 가르치는 사역은 종교개혁을 통해 복음진리가 회복됨으로 상당부분 이루어졌고, 전파하는 사역은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현대선교 운동이 펼쳐지면서 많은 진척이 있었다.그러나 고치는 치유사역은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가 20세기 이르러 심리학의 발전과 목회상담 분야가 열리면서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치유사역은 편향적인 모습으로 인하여 많은 오해와 편견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목회상담을 비롯한 교회 내에서의 치유목회에 대한 강조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미국 서던신학교에서 목회상담을 공부한 안태길 박사는 한국사회와 한국교회에 치유사역이 강조되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지정학적인 면에서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아온 결과 피해의식 등이 집단무의식화 되어 있고, 문화적으로 샤머니즘, 불교, 유교 등이 혼합된 종교의식이 저변에 깔려있으며, 급진적인 근대화로 인하여 환경적으로 빚어진 가정문제와 인간관계로 인한 상처들이 깊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
누가는 부활현현 사건에서 제시된 예수의 말씀들의 많은 부분을 사도행전의 시작 부분에서 사도들에게 주시는 부활하신 예수의 마지막 말씀들로 다시 제시했다. 사도행전 1:4~8에는 누가복음 24:44~49에 나오는 예수의 마지막 말씀들이 상당 부분 반복된다. 특히 누가복음 24:47~49에서 사도행전의 역사가 예고되고 사도행전 1:4~8에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마지막 말씀들이 반복된 것은 누가복음에서 사도행전으로 옮겨가는 서사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또 다른 특징은 누가복음에서 예수의 마지막 말씀들과 사도행전 1장에서 그것의 상응하는 부분 둘 다 예수의 승천 사건으로 맺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두 부분에는 약간의 조화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예수의 승천은 40일 동안의 부활현현 사건들 후에 이루어진 반면(행 1:3), 누가복음에서는 부활절 당일 저녁에 일어난 것으로 제시된다. 누가복음 24장에서 부활현현 사건들이 부활절 당일에 순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묘사된 것은(눅 24:13, 36, 44, 50) 사건들의 극적인 강도를 나타낸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는 다른 관심사들로 인하여 누가복음과의 차이점을 남겨놓았다.누가는 부활현현 사건의 마지막
퇴임을 앞두고 가지고 있던 승용차를 한 직원에게 넘겨주고 새 차를 샀다. 그동안 개인적으로 승용차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주말과 야간에 가까운 곳에 출입할 때 일일이 기사에게 의존하지 않기 위해서였다.새 차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토요일 오후에, 옛집에 다녀오면서 어떤 육교를 올라가는데 뒤쪽에서 『쾅』 하고 부딪치는 소리가 나더니 차가 몹시 흔들렸다. 나는 영문을 몰라 어리등절 했는데 마침 1차선을 가던 대형 트럭이 육교 위에 멈춰 서 있다가 내가 가까이 가니 한 백여 미터 쯤 앞 갓길에 정차하고 있는 하얀 승용차를 가리켰다. 그제야 나는 상황판단이 되었다. 그 차가 차선을 바꾸면서 내 차의 바퀴 부근을 친 것이었다.나는 다행히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 내가 가해 승용차 뒤에 차를 세우자 한 4, 50십 세 쯤 되 보이는 여성 운전자가 내게로 오더니, “다치지는 않으셨는지요? 제 잘못이예요. 제가 변상 하겠습니다”하고 말했다. 나는 그 때까지, 잘 잘못 간에 접촉사고가 났을 때 먼저 사과하는 운전자를 나는 본 일이 없었다. 내 승용차는 뒷문에 흠이 좀 생기기는 했지만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조심 하셔야지요. 난 괜찮으니 어서 가세요”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 듯 늘 새로울 것도 없이 매일 반복되는 우리의 뻔한 일상들. 과연 그 일상들은 얼마나 위대할까? 오늘 아침도 역시 스스로 일어나기는커녕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5분만 더”를 외치며 여전히 이불쟁탈을 벌이는 엄마와 딸의 일상. “오늘도 늦었다”면서도 머리는 꼭 감아야 하고 고데기는 꼭 대야하는 사춘기 딸을 바라보는 엄마의 일상. 둘러앉아 아침밥 먹는 일은 꿈도 못 꾸고 토스트 하나조차도 겨우 한입만 베어 먹은 채 “다녀오겠습니다”라고만 외치며 뒤도 안돌아보고 뛰쳐나가는 딸의 일상. 과연 등교차라도 잘 탔는지 걱정되어 베란다로 내다보며 한 번 더 “잘 다녀와” 인사를 건네는 엄마를 그제야 보고는 “어, 엄마”라며 살인미소 한방과 손 한 번 흔드는 것으로 미안함을 때우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며 그 아침의 분주함을 일단락 짓는 엄마의 일상. 이렇게 아침마다 반복되는 이 일상들은 과연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할까? 역시 오늘 밤에도 학원 두 개를 들러 집으로 돌아온 아들, “다녀왔습니다”라는 인사조차 힘없어 보여 등에 맨 가방 받아주는 것으로 하루의 고단함을 덜어보려는 엄마와 아들의 일상. 그래도 엄마 마음엔 얼른 씻고 방에 들어가 조금만 더 공부했
고린도후서3:3에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하는 말씀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 하나님으로 믿는 기독교인들을 ‘그리스도인(christian)’이라는 명칭으로 부르기 시작한 곳은 안디옥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습을 분명하게 드러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인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추천서나 증명서가 없어도, 이름표를 달고 다니지 않아도 선한 행실을 통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쟁이’임을 알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의 편지’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러한 표현은 언행일치, 심행일치하는 참다운 기독교인들이 되어야만이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는 거룩한 사명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으리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고 있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불륜과 간통을 숨기기 위해서 밧세바의 남편이자 충신인 우리아를 죽이기로 결심하고, ‘위계에 의한 살인 및 살인교사’의 방법으로 우리아를 죽이기 위해 음흉한 편지를 장군 요압에게 보냈다. 살인편지의 노래는 사무엘
5. 한국교회가 성경 말씀대로 구원기관이 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죄의 고백과 회개의 실천이 필요합니다. 한 곳만 선택한다면 누구로부터 시작해야 합니까? 1) 목회자(31명, 46%). 2) 평신도(1명, 1%). 3) 목회자와 평신도 모두(36명, 53%). 6. 교회가 회복해야 할 일이 있으면 무엇입니까? 모두 선택해 주십시오.1) 분명한 복음 제시(59명, 87%). 2) 목회자의 자질과 도덕성 회복(59명, 87%). 3) 사회 신뢰도 회복(45명, 66%). 4) 분열과 갈등을 회복하는 교회의 건강운동938명, 56%). 5) 교회의 수적, 질적 회복 운동(32명, 47%). 6) 세상을 섬기는 교회상 정립(29명, 43%). 7) 기타는 기록해 주십시오(16명, 24%). 기타 답변내용1)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본이 되는 목회자, 성도, 교회가 되어야 한다. 2) 성도의 정체성 확립, 기도와 순종. 3) 오직 말씀 오직 기도. 양적인 성장보다 복음에 생명 건 제자 양육. 하나님의 음성듣기, 개인의 잡년과 고정관념 제거. 4) 회개를 촉구하며 천국과 지옥이 선포되는 주일강단 설교와 기도운동. 5)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과 기도회복. 6
현대 사회는 다중적인 특징을 가진다. 단일민족, 단일 언어를 강조해온 대한민국도 21세기 들어 급속하게 다문화 사회로 나가고 있다. 근로자, 유학생 등 정식으로 입국한 외국인이 100만 명을 넘어서고, 그들의 가족들과 비공식적인 입국자들을 합하면 400만 명에 이를 것이라는 말도 있다. 2050년경에는 인구의 10%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미 다중인종적, 다중 문화적 사회로 근접해 가고 있다. 해외여행과 인터넷 그리고 국내 거주 외국인들의 영향으로 다문화적인 성향이 점점 심화되고 있다. 다문화 사회의 대표는 미국일 것이다. 원주민인 인디언을 비롯하여 유럽계 백인들 그리고 아프리카 흑인들과 남미 멕시코인들 등등 수십 인종들이 어울려 살아가고 있다. 미국에서는 흔히 “멜팅팟”(melting pot)이라는 말로 그들의 사회적 특징을 표현하고 있다. 여러 재료를 한 솥에 집어넣고 푹푹 끓여 만든 혼합된 죽과 같은 사회라는 말이다. 약간의 자기 색깔도 있고 맛도 있지만, 전체가 어우러져서 죽 맛을 내는 것이다. 사실 미국 사회가 그런 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게 뒤섞이다 보니 마찰음도 나는 것이 사실이다. 빈부격차와 교육 정도와 사회적 신분의 사
계획성은 사람의 인격과 역량을 평가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오늘날은 계획성이 없는 사람은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는다. 실재로, 그런 사람에게는 기회를 주어도 지나치거나 모자라서 잡지 못하고, 큰 재산을 물려준다 해도 규모 없이 사용해서 곧 탕진하고 말 것이다. 목회자에게 계획성은 두 말 할 필요 없는 필요불가결의 요소이다. 목회계획의 필요성계획에는 목적과 목표가 있다: 국가를 두고 말하자면, 목적은 안전하고 민주적인 복지국가를 건설한다는 높은 이상(理想)을 의미하며, 목표는 언제까지 무엇을(국민소득, 인권, 국방 등등) 어떻게 하겠다는 구체적이며 실현 가능한 계획을 의미한다. 교회는 연말이 되면 목회자의 지도 아래 한 해 동안의 사업을 평가하고 새 해를 위한 예산, 교육, 선교와 전도, 심방, 직분(안수) 등 교회행정 전반에 대한 계획을 세운다. 이것이 곧 목회계획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목회자가 더 구체적이거나 제한적인 계획을 별도로 세울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 계획 없이 목표만 세우고도 은혜롭게 성장하는 교회들이 적지 않은 만큼 누구든 목회 방식을 두고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라고 해서 계획 없이 목회하는 일
첫째, 장기목회 철학을 가져야 한다. 목회는 속도가 아니고 바른 방향이 중요하다. 목회 계획은 바른 목회태도에서 나온다. 씨앗이 땅에 심기고 조건이 되면 자라서 성장하고 열매를 맺게 된다. 하나님의 부름에 철저히 순종했으면 행동하고 인내해야 열매를 맺게 된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열매를 맺는다.둘째, 모방목회전략이다. 평범한 목회자는 탁월한 목회자의 목회 방법을 배우고 진정한 목회로 만들어 가야 한다. 목회에서 실행착오를 줄이는 방법은 탁월한 목회를 하고 있는 분을 닮는 방법이다. 탁월한 목회자의 목회 태도와 방법과 열정을 보게 된다. 진정한 모방목회는 자신을 발견하는 목회이다. 점차 자신에 맞는 모형을 발전시켜나가는 목회이다.셋째, 평신도 목회자를 양성하라. 교회는 사람만이 희망이다. 목회가 힘들고 어려운 것은 목회의 두 주체가 가지는 문제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 목회자의 영성이 바로 서지 않았기 때문이고 둘째, 평신도들이 영적인 군사들로 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두 주체를 바로 세우는 일은 이들의 삶 속에 말씀과 기도, 찬양이 살아있고, 성령의 인도하심이 지속적으로 충만하게 나타날 때에 가능하다.넷째,
필자의 모교회인 여의도침례교회를 개척하고 40년간 목회하신 한기만 목사님께서 지난 1월 29일 돌아가시어 장례를 치렀다. 위로예배와 천국환송예배 그리고 하관예배에 참석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느끼게 됐다. 인상적인 것은 문상소를 방문했을 때 영정 사진 앞에 한 목사님이 사용하시던 성경책이 놓여 있었는데 사도행전 20장 24절 말씀이 펼쳐져 있었다. 여러 색깔 거듭해서 줄쳐져 있는 그 구절을 보면서 ‘아, 이 구절이 한 목사님의 사명선언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한 목사님은 진정 사명을 위해 사명성취를 향해 일평생을 달리신 분이셨다. 이렇듯 모든 성도, 모든 교회, 모든 목회자는 사명을 위해 살아야 한다. 사명이란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 성취를 위해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부르시고 사용하시는 개인과 교회 또는 어느 단체의 존재 목적이고 성취해야 할 과업에 대한 헌신의 근거이다. 하나님은 개인과 교회를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위하여 불러 쓰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소명이라고 하며, 그 부르심에 대한 인식과 확신을 소명감
누가는 부활현현의 마지막 국면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의 중심적인 국면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셋째 국면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들의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의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이다. 그런데 누가는 이 복음의 선포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을 부각시킨다(cf. 행 1:8). 누가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서 예루살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비록 예수는 갈릴리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감당했지만, 그의 궁극적인 목적지는 예루살렘이었다. 예수는 결국 예루살렘을 향해 가셨으며 그곳은 그의 순교의 장소가 되었다. 그런 예루살렘이 이제는 복음 선포의 출발지가 된 것이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백성 유대인들의 종교적이며 정치적인 중심지였다. 그런데 그 예루살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을 거부하고 반대하며 배척하는 사람들의 중심지이기도 했다.누가는 예수의 공생애 사역이 갈릴리에서부터 예루살렘을 향해 진행해 나간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누가는 예수께서 갈릴리 사역을 끝내시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면서 행한 사역의 내용을 그의 복음서의 중심 부분으로 삼아 제시했다(눅 9:51~19:28). 누가복음에서 이 중심 부분을 “여행 서사
필자가 대학에서 학생지도를 맡고 있던 1980년대 초반의 군사정권 시절에 문교부(교육부) 교육정책실로부터 즉시 학칙을 개정하고 결과를 보고하라는 화급한 공문이 내려왔다. 주요 학칙 개정 내용은 학사경고를 세 번 받은 학생은 [즉시] 퇴학 처분 할 것과 학생의 정치 참여 금지 항목을 신설 하라는 것 등이었다.학생의 정치 참여 금지는 문제될 것이 없었지만 3회 학사경고 자 퇴학처분은 큰 문제였다. 우리 대학에도 스무 명 정도의 학생이 해당되었기 때문이다. 교무위원회는 장시간 논의 끝에 학칙은 지시대로 개정하되 시행 일시에, “이 규정은 [1983년] 신입생부터 적용 한다”는 경과조치를 첨부해서 우편으로 보고했다.학칙을 접수한 교육정책실에서는, 지방대학이 국가 시책을 어기고 일방적으로 경과조치를 첨부했다고 질책하면서 학생처장을 찾았다. 감독기관에서 불호령이 떨어지니 직원이 수업 중인 나를 불러내어 교육정책실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게 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졌다.나는, 후에 교육부 차관과 대학 총장을 역임하기도 한 당시의 장모 교육정책실장에게, 신입생을 받을 때 대학이 교부한 학칙은 학생들과의 약속인데 대학이 그것을 일방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면 누구나 알고 있는 독일의 문학평론가 G. E. 레싱의 『세 반지 이야기』라는 희곡이 있다.예루살렘에 회교 세력이 막강하던 시절, 유대교인 나단과 기독교인 성전기사와 회교 교주 살라딘이 같은 도시에 살면서 종교적인 이유로 서로 적대관계에 있다. 성전 기사는 나단의 양녀 레아를 사랑했지만 종교문제로 뜻을 이룰 수 없었다.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던 회교 교주 살라딘은 말 트집을 잡아서 나단의 돈을 빼앗으려고 나단을 불러서 회교와 기독교와 유대교 중 어떤 것이 참된 종교인지 묻는다. 나단은 직접적인 대답 대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옛날 동방에, 누구든지 그것을 소유하는 사람에게는 만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게 하는 신비한 반지가 있었다. 그런데 그 반지 소유자가 죽을 때가 가까워 오자 세 아들 중 누구에게 그것을 주어야 할지 걱정됐다. 그는 세 아들을 똑같이 사랑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똑같이 부지런하고 심성이 착했기 때문이다. 그는 생각 끝에 모조품 두 개를 만들어서 세 반지를 섞어버린 후에 아들들에게 몰래 하나씩 나눠줬다.얼마 쯤 세월이 지난 후, 다른 형제도 반지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된 형제들은 영문을 몰라 진품을 가려내기 위해 랍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