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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 사회 속에서

백동편지-50


나 미국을 쓸고 주름잡고 다녔어요.” 오래 전 미국에서 조금 생활하다 온 사람들이 많이 하는 말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으면 미국에서 잘 나갔나 보다.’ 생각할 수 있는 말이다. 그러나 고향을 떠나 타행에서 그것도 머나먼 이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나마 싸들고 간 사람들이야 다르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하층 생활을 하며 생활을 해야 한다. 그 말대로 대부분 이민자들이 건물 청소를 하거나 뜨거운 스팀이 나오는 세탁소에서 빨래를 하며 일을 한다. 말 그대로 미국의 건물을 쓸고, 수 많은 옷을 다림질로 다리며 주름을 잡는 것이다.

 

미국 유학을 다녀오신 어느 목사님께서 미국 유학시절, 미국 음식은 그렇게 맛이 없고, 과일도 달지도 않고, 고기도 질기기만 한 줄 알았다며 나중 집회 초청을 받아 갔을 때 그렇게도 음식도 맛있고, 과일도 달고, 질 좋은 고기가 있는 줄 알았다고 하신 소리를 들었다. 계층에 따라가는 식료품이 있는 미국에서 가난했던 유학시절에 싼 것만 사서 먹었다는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로 들리지 않는다.

 

얼마 전 연휴에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던 딸들과 함께 이야기하다 아빠는 대학을 가지 말고 한 해 쉬라고 했으니까 용돈 안줄거야말하는 작은 딸의 소리에 미안해라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었다.

가난한 유학생으로 대학을 다니는 두 딸과 함께 세 사람이 대학 생활을 해야 하는 때가 있었다. 적은 수입으로 등록금을 마련하기 쉽지 않아 커뮤니티칼리지라고 하는 지역 대학이 그나마 적은 등록금이라서 1년만이라도 그렇게 하면 어떨까 하고 한 말이 딸에게는 큰 아픔으로 남았던 것 같다.

 

목회를 하다 갑자기 떠난 미국 생활은 공부만 할 수 없는 상황에 무엇이든지 일을 해야 했다.

하루 종일 뜨거운 스팀 속에서 다림질도 하고, 한국 사람이 운영하는 상점에서 장사도 했다. 또 한국에서 목회하며 예배당 건축한 경험으로 집수리도 했다. 일주일 내내 하루 종일 일하다 보면 일을 하러 왔나? 공부하러 왔나? 일 만하다 한국에 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가족과 타국에서 생활하고 공부하려면 일하지 않으면 안됐다. 아내마저도 하루 종일 남의 집에서 음식을 하고 청소를 하다 화장실에 앉아서 잠시 쉬어야 했던 시간이었고 말한다.

 

손은 칼로 수없이 베이며 억척스럽게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미국 현지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교제도 하며 여러 가지 도움을 나누었던 고마운 사람들을 잊을 수가 없다. 타국인이 되어 현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미국을 가기 전 한국에서 목회를 할 때 교회 부설로 세운 외국인 노동자 센터에서 중국 노동자들을 도왔던 생각이 났다.

작지만 섬겼던 일들이 섬김을 받는 대상자가 되어 다문화 사회라는 것을 실감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한국에 와 진도에서 목회를 하며 외국인 노동자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또 아동센터의 가정 대부분이 다문화 가족의 자녀들이다. 타국에 서의 생활을 경험으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니 도움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는 것이다. 내 나라 내 것이 아닌 우리의 것이기에 낯설고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마음뿐이지만 조금 더 불편하지 않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주님의 계획이라면 다문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섬길 수 있기를 소망한다. 특히 농어촌 지역인 진도에는 많은 외국인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태평양을 건너갔던 것처럼,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낯선 타국에서의 생활을 하다 힘들게 꾸린 가정을 등지고 자녀를 두고 떠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서너 살밖에 안 된 아이를 포함해서 두세 자녀를 두고도 가정을 떠나는 마음이 얼마나 힘들까 생각을 하며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궁리해 본다.

 

싱크대에서 양치질을 한다며 외국인 며느리를 그렇게 미워하는 시어머니의 하소연을 들으며, 다문화 외국인보다 현지 한국인의 의식 변화가 더급하고 중요함을 실감하게 된다. 다문화 사회 속에서 외국인과 현지인의 좋은 만남이 되도록 작은 밀알이 되기를 소망한다.

 

김태용 목사 백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