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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에 대한 이해-1

박종화 목사의 가정사역-11

결혼은 평생의 약속이다.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마19:6). 하지만 구약(신24:1~4)은 이혼에 관한 말씀이 있다. 물론 이것은 인간의 죄성으로 말미암아 발생 되는 일이며, 사람이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하지 못하여 인생이 저지르기 쉬운 죄에 대하여 그 부족한 부분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명기 24:1~4의 말씀에 대해 의문이 드는 것은 아내(여자)의 부정에 대한 말씀은 있는데 동등한 관계로써의 남편(남자)이 부정을 행하는 경우에 대해 말씀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편의 부정에 대하여 아내의 고통은 묵과하라는 것이냐고 하면 거기에 대한 말씀이 없기에 일단 판단을 유보하는 편이 좋겠다.

그러나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남편은 아내의 머리라는 것이다. 아담에게서 하와가 나왔다는 것이고, 남편이 머리고 아내가 몸이라는 사실이다.

 

성경에서 이혼과 재혼이 허용되는지에 관한 논란은 주로 마태복음 5장 32절과 마태복음 19장 9절의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하고 있다. “음행한 연고 외에”라는 말씀에 대한 다수의 성경 학자들의 해석은 ‘약혼’ 기간의 ‘음행’을 말하고 있다. 아마 예수님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가 발생한 경우라면 이혼이 허락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성적 관계는 부부의 유대 관계에서 필수적이다.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 마19:5; 엡5:31). 그러므로 결혼이라는 울타리 밖의 성적 관계 때문에 이 유대 관계를 깨는 것은 이혼이 허락되는 사유가 될 수 있다.

 

“다른 데 장가드는”(마19:9)이라는 구절에서 재혼은 아무 잘못이 없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즉, 이혼 후의 재혼에 대한 허용은 성적 부도덕을 범한 쪽이 아니라 그 죄의 피해자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죄를 범한 쪽”의 재혼에 관해 분명한 말씀이 없다.

 

어떤 이들은 고린도전서 7장 15절을 또 다른 ‘예외’로 보는데, 믿지 않는 배우자가 믿는 자와 갈라서면 재혼이 허락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이 본문은 재혼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단지 믿지 않는 배우자가 헤어지기를 원한다면 믿는 자가 그 결혼 관계를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학대(배우자 또는 자녀를)’ 역시 이혼의 유효한 사유가 된다고 주장합니다만 이에 대한 명확한 하나님의 말씀은 없다. 그러므로 이혼에 앞서 믿지 않는 배우자가 갈리게 되지 않도록 복음을 전하고 사랑을 해야 하며, 학대하는 배우자와 부부치료로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회복하는 일에 우선 적으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성경은 하나님이 이혼을 싫어하신다는 것(말 2:16)과 화목, 용서가 믿는 자의 삶의 표식이 돼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밝히고 있다(눅11:4, 엡 4:32).

 

여기서 우리의 자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인간들의 죄성을 합리화하는 쪽으로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 말씀을 말씀대로 믿고 받으려는 겸손한 자세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이혼을 했거나, 이혼을 생각하거나, 이혼을 추진하고 있거나,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를 사랑하시고 조명하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즉, 중요한 것은 현재의 상황에서 말씀을 받아들이고 주님께 순종하는 모습을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기독교상담을 통해 이혼에 관하여 적용해 보자. 상담자로서 나는 가해자인 배우자와 피해자인 배우자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에베소서 5장 21절 말씀처럼 부부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관계를 바랄 뿐이다. 한 쪽의 일방적인 복종은 폭력이다. ‘피차 복종’은 배우자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 되는 사랑하는 관계로 서의 복종이다. 그러므로 한 쪽으로부터의 강요된 복종은 부부의 갈등과 역기능을 초래한다.

 

이러한 때에는 일단 피해자의 고통을 피하기 위해 피해자의 자아경계를 세우는 일에 집중을 하게 된다.

이제는 피해자 자신 스스로가 가해자인 배우자로부터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힘이 자신에게 있음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가해자의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가지게 한다.

 

동시에 가해자 쪽은 왜 자신이 가해자인지를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자신이 어려서부터의 원가족에서 자신의 부모로부터 받았던 상처와그 피해를 현재의 자신의 원가족에게 가해자가 된 것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줘야 한다.

 

이렇게 부부의 갈등에서 각각 서로의 원가족으로부터의 상처를 직면하고 그 상처가 현재 자신들 부부관계에서 어떻게 재연되고 있는가를 보게 함으로 자신들의 가면과 참 자아를 찾게 해주는 것으로 부부치료가 진행된다. 여기에 자녀가 있다면 과거에 자신들이 받은 상처를 그대로 자신들의 자녀에게 상처를 대물림하게 되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자신들의 자녀들에 대한 치료도 함께 하게 하는 것이 가족치료다.

 

그동안 그림자로서의 착한 것이나, 그림자로서의 악한 그 모든 것이 상처의 결과라는 것을 말했다. 인간에게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다. 자신이 십자가에 (참이라고 여지만 사실은 거짓이었던) 자기를 못 박아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연합해 사는 것(새 생명, 거듭남, 거짓 자기를 벗고 참 자기를 찾는 것)이 구원이다. 그러므로 거짓 자기로서 봉사자, 종교가의 탈을 쓰고 자기를 드러내는 선한 행동을 했다면 이 자체가 악이다.

 

즉, 상처 입은 그림자로서의 모습으로 배우자나 남에게 믿음에 대한 행동을 했어도 이 또한 악이다. 분명 자신의 역기 능이 누군가에게 대물림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선한 행동이든 악한 행동이든 그리스도(참)가 없으면 모두 악이다.

 

상담에서 그림자로서의 선한 행동이든, 악한 행동이든 모두 상처 입은 자들의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기에 이러한 그림자로서의 행동은 다음 세대에 상처를 물려주는 도구들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혼에 관해도 피해자로서나 가해자로서도 그리스도가 없다면 모두에게 악(惡)이 될 수 있다는 사실들에 대하여 인지하고 느끼고 알아야 한다.

 

피해자로서의 배우자가 이를 참고 기다린다는 것은 참 힘들다. 그래서 이혼을 결심하곤 한다. 가해자로서의 배우자는 자신의 가해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라고 한다.

 

이러한 싸움은 갈등을 증폭시키고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며, 이혼으로 종지부를 찍게 된다. 부부 자신들의 원가족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그대로 자신들의 자녀에게 대를 이어 상처를 주는 결과를 낳고 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배우자 탓을 한다. 그것이 맞는 말이든 맞지 않는 말이든 자녀들에게 부모가 상처를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부모는 모두 가해자가 되는 것이다.

 

어렵지만 이혼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하라고 하면 ‘이혼은 죄악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이미 이혼을 한 상태라면 그 가운데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보고 서로(각자)의 치유와 자녀의 치유에 힘을 쏟아야 하며, 이혼 전이라면 인내하고, 믿음과 상담을 통해 도움을 받고 서로 치유를 위한 노력을 쏟아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치료의 과정을 부부가, 그리고 부모와 자녀가 경험하며, 거짓 감정이 아닌 진실된 감정을 나누고, 역기능에서 순기능으로의 가족치료를 경험하게 될 때 성경에서 말하는 부부가 한 몸이고 가족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나의 상황이 현재 어떠하던지 실망하지 말고 여전히 이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는 주님을 통해 자신이 치유되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가족이 되기를 기도한다.

박종화 목사 빛과사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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