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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기 20세기 신오순절주의 성령운동

오순절 성령운동의 이해 - 12
김한순 목사
홍성성산교회
전 총회신학교 교수

데이비드 듀 플레시스의 성령체험
데이비드 듀 플레시스는 1960년 스코틀랜드의 섬 앤드류에서 열린 “신앙과 직제 위원회”에서 연설할 때 오순절신앙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즉 누군가로부터 오순절 부흥운동의 성공의 근거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는 질문이 종종 던져질 때,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사도행전 1:8 말씀과 같이, 우리는 사도계승보다는 사도적인 능력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가져왔으며, 또한 우리는 감히 이 땅에 축복의 성령이 처음 임한지 20년이 지났어도 그 가치가 퇴색되지 않고 지속됐던 것처럼, 자기의 역사적 성공이 자기의 신학적 독특성, 즉 능력 안에 계신 성령의 체험이라고 믿는다고 말하면서 오순절주의는 이러한 영적인 관점에서 자기를 이해하고 자기의 사명을 이해한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듀 플레시스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선교활동의 일환으로 오순절주의가 성장하게 됐음을 설명했다. 즉 오순절주의의 이러한 성장은 선교사의 능력이나 교육 혹은 새로운 방법의 사용이 아니라, 신약성서에 나타난 사도들의 방법들을 아주 충실하게 따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제시했다. 그는 우리가 성령침례의 축복이, 성령께서 처음 임한지 20년이 지나서도 가치가 있었던 것처럼, 오순절 이후 2천년이 지나서도 가치가 있었던 것처럼, 오순절 이후 2천년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효과가 있음을 믿는다고 했다(행2:1~4, 행19:1~6).


데이비드 듀 플레시스와 세계교회협의회
데이비드 듀 플레시스는 오순절주의의 가르침을 세계교회협의회에 도입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했지만, 세계교회협의회는 영적 갱신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매우 뒤늦게 표명했다. 그들은 이전의 개신교 보고서를 주로 참조해 1980년에 깊고도 상세한 보고서를 작성했는데, 이 세계교회협의회 보고서는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는 영적 갱신의 근본적인 교회일치운동을 “희망의 전조”로 인식했다. 비록 그 보고서가 은사주의자들의 사회-정치 활동에 대해서는 회의적이긴 하였지만, 이 운동이 지닌 영적인 면과 공동체 형성에 이바지한 점에 대해서는 긍적적이면서도 고무적인 평가를 내렸다. 


오순절운동이 은사운동이 되어 기독교 세계에 전파되도록 힘썼던 것은 데이비드 듀 플레시스가 담당했다. 그는 1936년 영국인 오순절파 부흥사인 스미스 위글워스의 예언을 받고 오순절운동을 기독교 각 교단들에 전하는 것을 필생의 사명으로 삼았다. 그 결과 이를 통해 은사운동이 1960년 이후에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됐던 것이다. 이로 인해 그는 일명 “오순절운동의 미스터”라 불리었던 것이다. 그는 1937년에 미국에 가서 하나님의 성회 교단의 교회집회에서 설교했다. 그러다가 그는 1947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세계오순절대회의 총무로 봉사했다. 그 후에는 세계교회협의회와 접촉했고, 1959년에는 일리노이 에반스톤에서 열린 제2차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 참석해 오순절주의를 소개했다.


무엇보다 “미스터 오순절 운동”으로 불리는 데이비드 듀 플레시스는 “예수는 침례 주는 자”라며 성령침례의 교리를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 영성센터를 세우고 이 센터에서 성령침례의 결과는 방언 말함이라고 단정적으로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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