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자기부인과 자아실현

키르케고르 산책-5
이창우 목사
카리스아카데미

기독교는 전통적으로 자기 부인(self-denial)을 강조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자기를 부인하면서 주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기독교가 점점 더 성장하고 현대로 오면서 이런 경향은 쇠퇴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이자 심리치료사인 유진 드류만은 기독교 전통의 핵심적인 개념인 자기 부인을 “마조히즘적 자기 부인”으로 보고 이런 기독교를 자기 혐오, 자기학대, 심지어 가정학대를 정당화할 여지를 남겼다고 비판합니다.


한편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핵심가치는 유지하면서도 이것이 마치 자아실현에 도움을 준다는 새로운 변화도 있었습니다. 김규보는 “거짓 자기, 참 자기, 자기 부인: 대상관계 이론을 통한 기독교 자기부인 고찰”이라는 그의 논문에서, 기독교 영성의 자기 부인의 이상이 자기애로, 자기애가 자기 문화로, 자기 문화가 자기 극복으로, 마침내 자아실현으로 옮겨갔다고 비판했던 부룩스 홀리필드(E. Brooks Holifield)의 말을 인용합니다. 필자는 현대 사회에서 기독교의 자기 부인이 결국 자아실현에 봉사하는 처지로 전락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교회가 더 이상 자기를 부인하는 삶의 가치를 강조하려 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말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이 가치를 실천해야 하는 점에 도달했을 때는 회피하려 합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과정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회중들도 싫어합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어디에서 자기 부인의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람의 내면에는 거짓 자기와 참 자기가 있습니다. 문제는 거짓 자기가 사라지지 않는 채, 계속해서 거짓 자기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획득할 때입니다. 예를 들어, ‘자성예언’이 있습니다. 어려운 용어를 제시했으나, 기본적인 개념은 어떤 예언이나 생각이 이뤄질 것이라고 강력하게 믿음으로써, 이것이 행동의 변화를 일으켜 실제적인 성취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주장에 대해 반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운동선수나 시험을 치르는 학생들에게 이런 효과는 정말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자성 예언’을 하는 사람의 내면의 자기가 거짓 자기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롬 6:6~7)


이 말씀에서 말하는 옛사람은 결국 거짓 자기가 아닐까요? 먼저 우리의 거짓 자기에 대해 죽지 않는 한, 어떻게 우리가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 거짓 자기에 대해 죽지 않은 채, 계속해서 할 수 있다는 가능성만 제시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의 영혼은 점점 더 신기루에 사로잡히지 않겠습니까? 죽어야 할 거짓 자기를 계속해서 더욱 죽지 못하게 살리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의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의 자기 부인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생각보다 더 원초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거짓 자기가 죽지 않은 한, 참 자기가 있을 수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거짓 자기가 죽지 않는 한, 아무리 세속적인 긍정적 가치를 강조한다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거짓 자기를 죽지 못하게 하여 우리의 상태를 더욱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제 목회 현장에서 자기 부인의 가치가 살아 있는지 반문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습니다. 과연 우리의 목회는 어떻습니까? 자기 부인의 가치가 살아 있습니까? 아니면 자아실현이라는 가치를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것은 아닌지요?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질문으로 던지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거짓 자기가 죽고 나면 참 자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참 자기는 자기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걸까요?



총회

더보기
총회 현안에 왜곡․확대 해석은 공멸의 길
존경하는 3500여 침례교회 동역자 여러분!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불철주야 목회의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동역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114차 총회는 115차 정기총회를 준비하며 교단의 현안을 제대로 바라보고 우리의 문제와 위기를 직시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총회를 비롯해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관련 현안에 대해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로 왜곡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확대 해석되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어, 총회장으로서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침신대가 ‘평가 인증 유예’에 대해 대의원들이 알아야 할까요? 지난 2025년 6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평가에서 한국침신대가 ‘인증 유예’ 결과를 받게 됐습니다. ‘인증 유예’라는 생소한 단어 때문에 한국침신대를 사랑하는 모든 침례교 목회자들은 의구심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왜곡된 정보, 제한된 정보, 진영에 입각한 해석에 근거한 정보가 인터넷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침례교단은 과거 왜곡된 정보와 제한된 정보, 진영에 입각한 해석에 근거한 정보로 교단의 자랑이었던 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