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서 그리스도인이라 일컫음을 받게 되었더라.”
당신의 진실된 칭찬 한 마디와 격려는 다른 사람의 ‘삶의 보약’이 된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귀한 보배’이다. 린칭쉔은 대만의 유명한 작가이다. 고등학교 2학년 시절 그는 장난기 많은 학생이었다. 학업 태도와 품행은 늘 선생님들에게 실망과 반감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국어 선생이었던 왕위창만 유독 그를 인정해 주었다. 자신이 휴가를 갈 때면 린칭쉔에게 국어를 가르치게 했다. 왕위창은 린칭쉔에게 “국어를 수 십년 가르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너는 큰 인물이 될 거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의 이 말에 린칭쉔은 감동했다. 그는 분발하여 선생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세월이 흘러 어른이 된 어느 날 양고기 집을 지나던 린칭쉔에게 낯선 사람이 인사했다. 그는 20년 전 그들이 만났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린칭쉔은 한 신문사 사회부 기자였다. 경찰서에 취재 나간 날, 도둑이 잡혀 들어왔다. 경찰은 “이 도둑이 여러 차례 범행을 저질렀지만 이번에야 검거됐는데 범행 수법이 뛰어나서 도둑맞은 일부 집은 심지어 몇 주가 지나서야 물건이 사라진 것을 눈치챘습니다.”라고 말했다. 도둑은 가슴을 치며 “대장부는 과감하게 행동하고 그 결과를 책임집니다. 만약 이 일을 제가 한 게 맞다면 저는 확실하게 인정할 겁니다. 그러나 저는 절대 이 집 물건을 훔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며 따졌다.
그러자 경찰은 도난 현장을 찍은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었다. 사신 속의 집 안은 온통 어질러진 상태였다. 도둑은 “이건 절대 제가 한 게 아닙니다. 전 이렇게 거칠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도둑의 기개에 린칭쉔은 감탄했다. 그래서 그는 이 일에 관한 기사를 이렇게 썼다. “치밀한 마음, 뛰어난 손재주 그리고 넘치는 기백을 가진 점잖은 프로 도둑은 처음 본다. 그는 도둑이 아니라 무슨 일을 해도 다 잘했을 것이다.” 낯선 사람은 바로 그 도둑이었다. 그는 지금 이 양고기집 사장이 되어 있었다. “선생님이 쓴 신문기사는 제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아무도 제게 그런 평가를 하지 않았어요. 선생님의 평가는 제 인생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린칭쉔은 그의 말에 감동했다. 자신의 감상적인 말 몇 마디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줄 몰랐던 것이다.
린칭쉔 이야기는 남을 인정하고 긍정하는 말 한 마디가 다른 사람의 ‘삶을 구하는 지푸라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상대의 상황에 따라 부정과 멸시로 대하며 얕잡아 본다. 이때 누군가 그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충분히 인정해 준다면 그는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고 자신의 행동방향을 바꿀 수도 있다.
사도바울은 신약성경의 13권을 저술한 인물이다. 그의 등장과 활약으로 기독교는 비로소 신학적 기틀을 닦을 수 있었고 전 세계에 복음을 증거할 수 있는 기독교 교리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다. 바울의 등장으로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가 아니라 세계종교로 성장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할 수 있었다. 사도바울이 기독교 역사 속에 놀라운 업적을 쌓는데 견인차 역할을 했던 사람이 바나바였다. 바나바는 사울의 뛰어난 능력을 알아보고, 그가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사역의 터전을 마련해 준 인물이다. 바나바는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질 정도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세워주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었다. 예루살렘교회가 성령의 능력을 입은 사도들과 성도들에 의하여 폭발적으로 부흥할 때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 들었다. 사도 베드로의 외침에 3000명이 회개하며 주님께로 돌아왔고, 그 외에도 수천명의 사람들이 회개하며 주님께로 돌아왔다. 그러한 가운데 고아들과 과부들이 교회에 모여 들었고 교회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도와줘야 할 역할이 주어졌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은 많은 재정적 필요가 요구되는 일이다. 이때에 바나바는 자신의 재산을 정리해 교회에 헌금했고, 이러한 모범적인 행동은 사도들과 성도들의 큰 칭찬을 받았다. 성경은 바나바를 소개할 때, ‘그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자’라고 했다(행11:24). 신앙의 모습을 따지기 이전에 바나나는 먼저 착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을 세우고 격려하는 착한 성품을 그는 가지고 있었다.
사도행전 교회가 큰 부흥을 경험했지만, 집사였던 스데반이 복음을 증거하다가 사람들의 돌에 맞아 순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스데반이 순교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사람이 사울이었다. 그는 유대교를 확실하게 믿는 열심당원으로 스데반이 외치는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논리와 열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고 격동시켜 군중들이 스데반의 말을 외면하고 돌을 들어 그를 쳐 죽이게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이러한 행동이 유대교를 보호하고 지키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후일에 다메섹 도상에서 핍팍자였던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잡아 감옥에 가두기 위하여 가는 도중에 빛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나 변화된다. 그리고 그는 사울이라는 이름을 개명하여 바울이 된다. ‘사울’이라는 이름의 뜻은 ‘구하여 얻은 자’라는 뜻이다. ‘바울’은 ‘작은 자’로 그 이름이 바뀐 것은 단순한 언어 변화뿐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교만하던 자신이 낮아지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종으로 변화된 상징적인 의미로도 해석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만나 변화된 사울은 뜨거운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했다. 하지만 예전에 그가 그리스도인들에게 한 행동이 있기에 많은 적들이 생겨나고 심지어 유대교를 믿는 열심당원들에 의해 그의 목숨까지도 위태로운 지경에 처하게 된다. 가까스로 믿는 성도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유지한 사울은 다소에 가서 몇 년간 하나님과 깊은 영적인 교제를 나누면서 지내게 됐다. 아무도 사울 돌아보지 않는 그 때에, 하나님은 예루살렘교회의 핍팍으로 안디옥까지 온 몇 사람을 통하여 안디옥교회를 세워 부흥케 하시고, 그 교회의 담임목사로 바나바가 부임하게 하셨다. 바나바가 안디옥교회를 담임하면서 안디옥교회는 크게 부흥하였다.
교회에 몰려드는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가르치고 훈련할 사람이 필요한 그때에 성령님께서는 바나바에게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려 오라고 하셨다. 사울을 안디옥교회에 데려온다는 것은 바나바에게 큰 목회적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사울이라는 사람이 초대교회의 집사였던 스데반을 죽이는 데 앞장섰던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사울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이 있었다. 그러한 때에 사울을 데려온다는 것은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바나바는 용감하게 안디옥교회 성도들을 설득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리고 온다. 두 사람이 힘을 합쳐 큰 무리를 가르쳤을 때에 안디옥에 이르러 비로서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컫음을 받게 됐다(행11:26).
바나바가 사울을 대변해주고 위로하고 격려하지 않았다면 사울은 기독교 역사의 무대에 서지 못했을 것이다. 당신의 진실된 칭찬 한 마디와 격려는 다른 사람에게 ‘삶의 보약’이 된다. 막다른 골목에 처한 사람에게는 더더욱 ‘귀한 보배’이다. 하버드 대학교 윌리엄 제임스는 “인간의 본성이 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칭찬을 듣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인간의 감정은 쌍방의 관계에서 나온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인간관계도 좋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인정받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내가 건넨 칭찬 한 마디와 격려 한마디가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삶의 보약’이 될 수 있다. 오늘 하루의 삶이 다른 사람을 살리고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 하루가 되기를 소원한다.
최천식 목사
약속의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