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이르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어내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창 19:15~16)
소돔 주민과 롯이 갈등을 겪는 동안 천사들이 소돔의 타락상을 현장에서 파악했기에 심판은 피할 수 없게 됐습니다. 본격적인 심판이 있기 전에 우선 롯 가족부터 피신시키려 했죠. 그런데 창세기는 심판이 임한다는 긴급한 소식을 들은 롯이 탈출을 주저했다고 기록합니다. 롯의 속마음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한때는 소돔의 중심에 들어가는 것이 인생 목표였지만 지금은 그간 이뤄낸 모든 성취가 미련으로 남아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가족의 안위보다 자기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이기적인 태도가 다시 한번 드러났죠. 보다 못한 천사가 강제로 끌어낼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도 실은 롯이 아니라 아브라함을 봐서 한 행동이었습니다(창 19:29).
보소서 저 성읍은 도망하기에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를 그 곳으로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읍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창 19:20)
천사가 재앙을 피하려면 산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말했지만, 롯은 눈에 보이는 작은 성을 가리키며 피난처로 삼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 아브라함과 갈라서면서 가장 좋아 보이는 소돔을 선택했던 지난 일이 떠오릅니다. 롯이 산이 아닌 소알을 택한 이유는 분명해 보입니다.
그에게는 아브라함과 헤어지기 이전의 삶으로 되돌아갈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겁니다. 산으로 올라가면 다시금 떠돌이 생활을 해야 하니까요. 광야 생활만큼은 절대로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롯은 소돔처럼 크고 강한 성은 아니어도 도시생활을 할 수 있는 성읍이라면 작더라도 의탁하고 싶었을 겁니다. 바로 그때 소알이 눈에 보였겠죠. 가족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판에 그게 뭐가 중요하냐고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롯이 언제 다른 사람 생각을 한 적이 있었나요?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창 19:26)
소알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롯 가족 등 뒤에서 심판이 시작됐습니다. 노아 시대 홍수 심판이 하늘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내린 것이었다면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은 유황과 불이 하늘에서 떨어졌죠. 엄청난 불길이 소돔과 고모라 성은 물론 성 바깥 들판까지 태웠으니 심판을 피하려고 성문 밖으로 도망친 사람이 있더라도 피하지 못하고 죽었을 겁니다.
오로지 소알로 도망친 롯의 가족만 살아남았는데, 이 과정에서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어겨 소금 기둥이 되어 버렸죠. 그녀는 왜 뒤를 돌아봤을까요? 바로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살았던 이들이 몰살되는 일에 대한 두려움과 연민이 함께 있었을 겁니다.
죽어가는 이들을 그대로 놔두고 달아나기가 쉽지는 않았겠죠. 도리어 그렇게 엄청난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뒤를 돌아봐서는 안 된다는 규칙을 주신 하나님이 너무 가혹해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규칙을 주신 걸까요?
하나님께서 뒤를 돌아보는 행동 자체를 문제 삼으셨을 리 없습니다. 뛰는 도중에 아주 잠깐 등 뒤로 눈동자가 향했을 뿐이라면 당연히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겁니다. 문제는 뒤쪽으로 간 시선이 아니라 과거에 대한 미련이었을 겁니다. 유황과 불의 열기 속에서 애써 모은 재산과 공들여 쌓아 놓은 인간관계들, 힘들게 얻은 명예와 지위가 불타 버렸고 다시는 회복할 수 없다는 아쉬움이 죽어가는 이웃을 향한 연민과 뒤섞여 뒤를 돌아보았겠죠.
롯의 아내가 소금 기둥이 된 사건은 더는 과거에 마음을 두지 말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보여 줍니다. 그렇게 소금이 되어 버린 그녀를 보며 가장 큰 두려움에 빠진 이는 롯일 겁니다. 롯이야말로 움켜쥔 손을 펴지 못해 가장 쩔쩔매는 사람이었으니까요.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창 19:30)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린 아내를 뒤로한 채 일단 소알로 피신했지만, 그곳에서도 오래 머물기 힘들었습니다. 소알 주민에게 롯이 달가울 리 없었겠죠. 이방인인 데다 하루아침에 멸망한 소돔에서 빠져나왔다니, 그를 받아들였다가는 심판이 자기들에게도 임할 수 있었거든요. 처음 소돔에 갔을 때보다 더한 거부반응을 소알에서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계와 차별을 이겨내고 공동체 일원이 되기에 롯은 너무 늙었고 남은 재산도 없었죠. 소알 주민의 거부보다 더 큰 문제는 롯에게 소알이 그다지 안전해 보이지 않았다는 겁니다. 거룩하게 사는 사람만 소알에 모여 있을 리 없으니 롯이 보기에는 소알도 소돔처럼 언제 멸망할지 모르는 불안한 성읍이었을 겁니다.
결국 소알을 떠나 애초에 천사가 권했던 산으로 들어가 굴에서 살게 됩니다. 도시 생활을 포기했다는 점에서 소돔의 멸망과 아내의 죽음 앞에서 그가 느낀 절망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굴이 무덤으로 쓰이곤 했는데, 굴에서 생활했다는 건 죽은 사람처럼 살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창 23:19). 그곳에서 사회적 성공에 대한 모든 집착을 포기한 채 자신을 고립시키고 말았는데, 이런 변화가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가장 가까웠음에도 여태껏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던 가족에게서 말이에요.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온 세상의 도리를 따라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이 땅에는 없으니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후손을 이어가자 하고(창 19:31~32)
두 딸이 생각하기에 소돔과 소알을 모두 버리고 산속 굴에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절망은 도저히 극복될 수 없어 보였습니다. 산을 내려가 도시 생활을 시작할 가능성이 영영 없어 보였다면 자신들의 미래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소돔이 심판받기 전 이미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던 만큼 결혼 적령기였던 두 딸은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스스로 살길을 찾기로 결심합니다. 산속에서 자신들이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남자인 아버지 롯에게 술을 먹인 뒤 동침해 아이를 낳으려는 시도였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