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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세 노(老)목회자가 고백하는 기적 같은 93년의 신앙 여정

야손 이야기 교실┃이재순┃314쪽┃요단

목회의 마지막 결승선에 선 선배들의 증언은 때론 따뜻하고, 때론 추상같은 각성을 일으킨다. 목회자로 부름받아 첫걸음을 뗄 때, 마지막 걸음이 어떠해야 할지 고민하며 바울의 고백을 떠올렸던 기억이 있다. 적지 않은 시간 교회 사역을 거쳐 기관 사역을 전임한 지 10년이 다 되었지만, 여전히 가르치고 전하며 교회를 섬기는 일은 쉬지 않고 있다. 교회 사역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웃고 울며 부대끼는 가운데 한 영혼을 세워나가는 생생한 접촉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한때 많은 이들의 영적 멘토로 존경받던 믿음의 선배들이 좌초하는 모습을 적잖이 보아왔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 안타까움이 실망감을 넘어 분노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분노를 계속 이어갈 수 없었던 것은, 솔직히 내가 돌을 던질 자격이 되는가에 대한 물음 앞에서다. 곱씹어 볼수록 자신할 수 없고, 이미 내 모습 속에 그런 증상들이 만성이 된 흔적이 어른어른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위로와 도전이 되는 책을 만났다. 우리 교단 원로 목사인 이재순 목사가 93세를 맞아 출간한 ‘야손 이야기 교실’이다. 이 책은 1933년 평안남도 강서에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등 한국 근현대사의 험난한 격동을 온몸으로 겪어낸 저자가 평생의 신앙 여정과 지혜를 엮은 책이다. 책의 제목에 쓰인 ‘야손(耶孫)’은 저자의 아명(雅名)이다. ‘예수’를 한문으로 耶穌(야소)라고 번역하는데, 저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예수님의 후손(後孫)’이라고 부여해서 ‘야손(耶孫)’이라고 정했다고 한다. 17세의 철부지 나이에 홀로 대동강을 건너 피난길에 올랐던 소년이 남한에 정착해 목회자로서 헌신하기까지, 예수님의 후손답게 살고자 분투해 온 저자의 궤적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책은 독자들이 쉽게 읽고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알차게 세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하늘의 소리”는 저자가 일생 전파한 진실한 설교를 엮어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전한다. 2부 “세상의 소리”는 저자가 목회 현장과 대학 강단에서 수집하고 사용해 온 100편의 감동적인 예화를 담았다. 특히 6·25 전쟁과 관련된 가슴 아픈 비화 14편이 수록되어 있어, 참혹한 역사를 기억하는 독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3부 “야손의 소리”는 저자의 진솔한 회고록이다. 북한 평양을 떠나 천신만고 끝에 서울에 도착하기까지의 소설 같은 탈출기를 생생하게 고백한다. 특히 저자는 전쟁과 생사의 갈림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마다 기적처럼 나타나 자신을 도왔던 은인들을 ‘천사’라 칭하며 마음 속 깊은 감사를 전한다. 탈출 과정에서 겪은 온갖 고난 앞에서도 타인에 대한 섭섭함은 털어버리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용서로 역경을 승화시킨 대목은 진한 감동을 선사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자신의 ‘두 애인’이 바로 ‘하나님’과 ‘대한민국’이라며, 나라를 잃고 전쟁을 겪었던 세대 특유의 뜨거운 우국충정과 숭고한 신앙심을 강조한다. 이 책을 추천한 도한호 전 침례신학대학교 총장의 말처럼, 이 책은 “한평생 믿음과 감사와 용서의 마음으로 인생을 산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고백”이다. 절대 빈곤과 참혹한 전쟁의 시대를 지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93년 세월을 굳건한 믿음과 성실함으로 돌파해 낸 노(老)목회자의 따뜻한 육성은 사회·경제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더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갈수록 척박한 영적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며 울며 씨를 뿌리는 목회자들에게는 소명을 완주할 수 있도록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이다. 각박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깊은 위로와 삶의 지혜를 던져줄 것이다.

박찬익 목사(교회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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