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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놈이냐 종님이냐


20년 전 교내 채플시간에 설교하시는 연로한 노 교수님의 목소리만큼은 마이크가 없어도 될 정도로 크고 카랑카랑하다. 내용인즉 요즘 목사들은 종놈이 아닌 종님으로 살려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종은 종일 뿐 인데 저 스스로 종님이 되려 한다는 말이다. 목사가 스스로 자신을 높이고 대접을 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 성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목사의 말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으라든가 또는 하나님의 사자로 받들란 말을 하기도 하고 그렇게 가르치기도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쉽게 할 수 있을 만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성도를 사랑하는 목사가 적은데 문제가 있다. 가족의 역기능도 이와 같다.


상처 입은 아버지가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지 못하고 내세우는 권위는 아들에게는 상처가 된다. 그러므로 순기능의 권위는 아버지가 아들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가운데 사랑을 받은 아들이 성숙해가며 아들 스스로 아버지의 권위를 세워주는 것이다.


근처에 개신교에서 이단이라 부르는 교회가 개 교회 건물을 여럿 사들였다. 자신들의 교회는 가정을 파탄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고 가정을 소중히 여긴다는 광고문을 교회 정문 앞에 게시했다. 그 교회의 특징이 교주인 자신이 하나님처럼 신격화했고 자신이 죽자 아내가 어머니 하나님으로 등극했다. 인간이 신격화 되어 교리가 된다면 그 교리는 결국 성도들을 옥죄고 상처를 주는 일이 되고 그 권위는 역기능적인 권위가 된다.


사도 바울은 스스로 내가 그리스도라고 말하지 않았다. 자신은 죄인의 괴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임을 고백했다. , 자신은 복음의 통로에 불과한 피조물임을 강조했다.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가 하늘나라에서는 높임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므로 권위는 교리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문제다. 목사라고 해서 성도에게 아버지처럼 군림해서는 안 된다.


목사 자신의 삶의 현주소를 먼저 보아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목사 자신의 가정이다. 자신의 가정에서 부모와의 관계, 부부관계, 자녀관계에 있어서도 역기능적인 부분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더구나 온전한 일평생의 삶을 함께 나누는 가족보다도 짧은 기간에 만난 성도들을 향하여 목사 자신을 높이게 된다면 가정의 역기능이 교회의 역기능으로 확장 될 수 있다.


누가 온전한 목사로서 복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느냐라고 나에게 묻는다면 불완전한 목사이기에 온전한 복음을 전할 수 있다고 답하고 싶다. 나의 부족과 모자람을 자랑하는데 주님이 높임을 받으신다는 말이다. , 자신의 부족과 수치심을 드러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런 부족한 인생, 그리고 지금도 이와 같이 불완전한 인생이 그리스도 안에서 요만큼 주님이 사용하시는 그릇이 되어 쓰이고 있다고 고백 할 뿐이다.


 그리고 늘 성도에게 사랑이 부족함을 스스로 느끼고 미안함을 고백했으면 좋겠다. 부족한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힘입어 함께 지어져 가며 더 깊은 사랑을 약속하며 성숙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성숙한 교회에서 목사와 성도, 성도와 성도 사이에 거짓 없는 참 사랑이 흐르게 된다면 성숙한 교회가 될 것이다.


한 인간을 대상으로 전 인생을 살펴보면 태내기 그리고 젖먹이 일 때는 어머니가 대상이었고 분화가 일어나고 성숙해 가면서 아버지와 가족, 그리고 학교에 들어가며 선생님과 친구들, 청년이 되며 이성과 동료, 그리고 자신이 결혼을 하면서 배우자와 자녀가 대상이 된다.


이런 일련의 대상과의 과정이 사랑으로 잘 충족이 됐다면 자아가 확장되어 이웃과 인류로 참자아가 확장해 나가는데 어려움이 없다. 그러나 그 대상과의 관계, 특히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많이 받았다면 나와 타인, 나와 대상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일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내적 상처가 많은 사람이 목사가 되었을 때 내재 된 수치심으로 더욱 완벽한 목사가 되려하고 내가 목사로서 대접받지 못한다고 생각 할 때 무의식적으로 느껴지는 수치심으로 인해 분노 할 수 있고 이러한 분노를 방어기제와 억압기제로 가리기 위하여 사회사업가나 목사로서 좋은 이상과 신념, 그리고 교리로서 열심히 일을 하면서 자신의 권위를 합법적으로 내세우려 하는 행동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돕는 배필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모성애란 이름으로 베풀고, 지식과 지혜를 가르쳐 주신 여러 스승님, 자신의 존재를 서로 일깨우며 놀이를 통해 하나가 되는 법을 서로 가르쳐 준 친구들, 아플 때 치료해준 여러 의사, 매일 먹을 것들을 준비하는 데 도움을 주신 많은 농부와 어부, 그리고 나라를 지켜주신 분들, 복음을 전하여 주신 아름다운 분들 등 수많은 분들의 은혜를 입어 감사히 나도 그 구성원으로 설 수 있었다.


목사는 단순히 목사와 성도의 관계에서 하나님처럼 군림해서는 안 된다. 주님이 여러 대상들로부터 나에게 은혜와 사랑을 주신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생명의 통로가 되어 종놈의 마음을 가지고 섬길 뿐이다. 그렇게 성숙한 사랑으로 삶을 통해 땅에 묻혀 썩는 밀알이 되어야만 비로소 싹이 나고 잎이 나고 가지가 자라 열매를 맺는다. 몸의 각 지체들은 서열관계가 아니다. 그저 한 몸일 뿐이다. 서로 사랑하므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바로 선다. 목사가 종님이 아닌 종놈으로 설 때 그렇게 된다.


박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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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현안에 왜곡․확대 해석은 공멸의 길
존경하는 3500여 침례교회 동역자 여러분! 무더운 여름의 끝자락에서 불철주야 목회의 사명을 감당하고 계시는 동역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114차 총회는 115차 정기총회를 준비하며 교단의 현안을 제대로 바라보고 우리의 문제와 위기를 직시하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총회를 비롯해 한국침례신학대학교 관련 현안에 대해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로 왜곡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확대 해석되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어, 총회장으로서 이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침신대가 ‘평가 인증 유예’에 대해 대의원들이 알아야 할까요? 지난 2025년 6월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평가에서 한국침신대가 ‘인증 유예’ 결과를 받게 됐습니다. ‘인증 유예’라는 생소한 단어 때문에 한국침신대를 사랑하는 모든 침례교 목회자들은 의구심과 혼란에 빠졌습니다. 더 안타까운 사실은 왜곡된 정보, 제한된 정보, 진영에 입각한 해석에 근거한 정보가 인터넷 언론과 SNS 등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유포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우리 침례교단은 과거 왜곡된 정보와 제한된 정보, 진영에 입각한 해석에 근거한 정보로 교단의 자랑이었던 침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