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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영 목사의 군선교 이야기-10

아내의 군선교에 대한 헌신과 사명

지난 4월 16일은 결혼 21주년 기념일이었다. 사도바울을 흠모하여 서울 서초지역에 독신으로 교회를 개척한 필자는 1994년 1월 17일에 국군춘천병원 중환자실에 근무하는 조일님 대위를 취재하러 갔었고, 그해 4월 2일자 1면에 <화제의 인물> 「사랑을 실천하는 숨은 일꾼」이라는 표제로 기사가 나갔으며, 4월 16일에 대전 대흥침례교회에서 안종만 목사님을 주례로 결혼식을 치루게 되었다.

언제든지 순교할 각오로 독신을 고집했던 필자는 취재하러 갔다가 4회의 인터뷰 끝에 결혼을 결심하고 프로포즈 한 뒤 전격적으로 3개월 만에 결혼에 골인하게 되었다. 말이 3개월이지 목숨을 건 3개월 이었다. 서울 양재IC에서 연무대IC까지 승용차로 2시간 20분의 거리를 2시간 이내로 거의 매일 달리면서 수면이 부족해서 크고 작은 사고가 2번 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졸려서 고속도로 운전을 하다보면 산이 걸어서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보이고, 그러다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아서 사고가 났고, 또 한 번은 양촌 부근에서 차가 고속도로 밖으로 튕겨 나간 적이 있었다. 사고 규모로 보면 생명까지 잃을 상황이었는데도 신기하게 멀쩡했다. 결혼식에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로... 그런 와중에서 도우시는 주님의 손길을 통하여 예비하신 돕는 베필 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고, 믿음의 배우자와 결혼은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 이루어진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교제기간이 짧았지만 어려움이 많아서 성령의 도움이 없이는 가능하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인터뷰 자리에서 아내의 간증을 듣고 나서 무엇인가 설명을 할 수는 없었지만 독신의 마음이 흔들리면서 예비 된 나의 베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전한 사고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과 청교도적 믿음, 청빈적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그런데 정작 그 사람의 눈에는 내가 이상형도 아니고 별루였으니 그 짧은 기간에 그 마음을 돌려놓을 수 있던 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아마 힘들었을 것이다.
프로포즈할 때의 모습을 회상해 보니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게 되었는지? 생각날 때 마다 혼자 미소 짓곤 한다.겨울바다를 좋아했던 나는 조대위에게 연무대에서 가까운 군산으로 바다 보러가자고 제안 하였고 그녀는 기꺼이 응했다.
군산 앞바다 방파제에다 차를 세워놓고 심연한 분위기속에서 나는 용기를 내어 고백하기 시작했다. 주로 나의 부족한 점과 힘들었던 부분을 강조하며 진솔하게 얘길하니까 순수했던 조 대위는 내가 불쌍해 보였던지 긍휼함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내 손을 잡고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고나서 우리는 차에서 내려 어두움이 짙게 깔린 방파제에서 서있게 되었다.


내가 학창시절에 좋아 했던 분들 중에 동국대 교수이며 국문학자 이셨던 양주동 박사님이라고 계셨다. 유머가 많으시고 참 해학적인 분이셨는데, 그분이 출연하는 라디오 방송을 즐겨 듣다가 그 분이 프로프즈 한 방법과 대사를 우연히 듣게 되었고 내 기억 속에 그 내용을 저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당시의 프로포즈 현장에서 그 기억이 떠올라서 적용하기로 하였다. 대사 한마디 “달이 매우 밝습니다.” 달이 안 떴을 때에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은유적 표현으로 “당신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당신을 안고 싶습니다.”라는 의미라는 것이었다.


그 날 그 현장에서는 달이 안 떠 있었고 아내는 그런 고백을 받아들여 우리는 3개월 만에 결혼식을 올리고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신혼의 단 꿈도 잠시 우리의 가정생활은 항상 비상상태였고 전쟁터 같았다. 군인 가족과 목회자의 가정이 중복되었는데 그게 그리 쉬운 일인가! 그때부터 아내는 전후방 근무를 하면서 사모의 역할을 감당을 해야 했으므로 아마 내 기억으로는 아내가 쉬는 것을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아이를 셋이나 낳아서 육아까지 감당을 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든 나날이었다는 것은 더 이상 설명을 안 해도 짐작이 가리라 본다.


결혼 후 7년 쯤 지났을 때 였던가? 2001년으로 기억된다. 당시에 침례신문 편집국장으로 있었던 명철수 목사님이 국군간호사관 학교 교수로 있던 아내를 방문 취재하여 신문 전면 기사로 내보낸 적이 있었다. 이레 저레 아내는 침례신문과 깊은 인연이 있나 보다.


결혼 생활을 해 오면서 힘든 아내를 격려하기 위해 실천해 오는 것이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결혼기념일을 챙기고 이벤트 행사를 하는 것이었다. 특별한 것은 아니었지만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던 아내로서는 큰 기쁨이었고 즐거움이었다. 그런데 21주년을 맞이하는 지난 4월 16일은 세월호 1주기 추모일이라서 결혼기념일은 묻혀서 조용히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어쩔 수 없는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기념 이벤트는 이 글로 대신하고자 한다.


지난날을 회상해 보니 부족한 종에게 다가온 아내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고, 부족한 종의 모습을 보충하여 사역을 온전히 감당케 하실려고 보내신 천사였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생계 문제는 아내의 책임이었다.

그러면서도 인격적이고 영적인 면에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아내가 물질적인 면에서는 남편의 자존심이 상하고 스트레스 받을까봐 조심스럽게 처신한다. 그러나 그런 아내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남편노릇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생각은 떠나질 않는다.


민간 사역을 할 때나 군 사역을 할 때도 아내가 차지하는 비중은 컸다. 특히 아내의 군선교에 대한 사명과 헌신은 지극할 정도이다. 전역 후에 여러 군데의 스카웃 제의를 모두 거절하고 군선교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이 특별히 귀하게 여기시는 군교회 사역도 현역 편제 때문에 마냥 계속 할 수만은 없을 것 같아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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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수 총회장 “희망과 변화를 이끌어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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