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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그노(Les Huguenot)에 대하여

‘도한호 목사의 목회와 상식’- 136

위그노? 가톨릭 국가인 프랑스에서 칼뱅의 개혁을 지지하던 개신교 신자들을 경멸하는 호칭으로 만들어진 합성어이다

프랑스에서의 개혁운동은 1559년 파리에서 칼뱅주의 신앙고백인 <개혁파신조>가 발표되면서 불이 붙었다. 프랑수아 1세는 위그노에 대해 관대했기 때문에 그의 통치기간 중에 위그노는 큰 세력을 형성해서 프랑스 인구의 6분의 1과 전쟁 영웅꼴리니(Gaspard de Coligny)제독과 스페인의 자치 왕국 나바라(Reino de Navarra)의 군주 앙투완느 까지 위그노가 되었다. 이처럼 위그노의 세력이 강해지자 가톨릭교도들로 구성된 기즈 당(Les Guises)이 반발했고, 이에 발맞춰 프랑수아 2세는 위그노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1560년에 프랑수아 2세가갑자기 사망하자 미망인 까뜨린느(Catherine de Medicis)는 메디치 가문의 증손녀로서의 영향력을 이용해서 왕위를 계승한 샤를 9세와 손잡고 권력을 장악하고 나서는 위그노를 제거할 계획을 세웠다.  까뜨린느는 국왕의 승인을 받아 1572824, 성 바돌로메오(St. Bartholomew) 축제일에 기즈 당과 군대와 가톨릭교도들을 동원해서 꼴리니 제독을 살해하고 위그노들을 무차별 학살했다.

국왕이 학살 중지 명령을 내렸으나 약탈과 만행은 프랑스 전역으로 번져서 한 달 동안 최소한 2천명에서 1만 명에 이르는 위그노를 학살했다.


1598, 부르봉 왕가(Bourbons)의 앙리 4세가 개신교 신자들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낭트 칙령”(Edict of Nantes)을 내림으로서 외형상으로는 36년에 걸친 위그노 전쟁(1562-98)이 종식된 것으로 보였으나 탄압은 계속됐고 1685년에 루이 14세는 낭트칙령을 폐지해버렸다.

프랑스에서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혁명까지는 신앙의 자유를 회복할 수 없었다

 

진리를 위해 죽음을 불사한 개혁자들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면, 피렌체의 사보나롤라와 두 수도사가 교살됐고, 보헤미아의 얀 후스와 27명의 프로테스탄트, 스코트랜드의 패트릭 해밀턴과 조지 위샤르트, 잉글랜드의 휴 라티머, 니콜라스 리들리, 존 후퍼와 캔터베리 대주교 토마스 크랜머 등은 화형당했다.

아나뱁티스트 펠릭스 만쯔를 수장하고, 훼브마이어를 화형하고 그의 아내 엘리자베스는 다뉴브 강에 수장했으며, 마이클 자틀러를 화형하고 그의 아내 마가레타는 넥카 강에 수장했다. 피의 살륙이 이교도와의 전쟁이 아니라 한 하나님을 믿는 신자 간에, 더구나 개혁 세력 간에도 자행됐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망령되이 사용될 수 있는지 옷깃이 여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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