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제 벽에 무식하게 굵은 대목을 몇 개 박아 놓고 외출에서 돌아와서 거기에다가 외투나 가벼운 겉옷을 걸어 놓는다. 아내는 이따금씩 서재에 들러 보기 흉하게도 이런 못에다가 옷을 걸어 놓느냐고 거의 짜증스럽게도 훌훌 걷어서 다른 방에 갖다 버린다(?). 스탠드 옷걸이를 비치하면 될 것을 왜 그러느냐고? 언젠가 나도 모르게 대못을 벽에 박아 놓은 것이 있어서 그냥 쓰고 있는 것뿐이다. 자주 아내가 촌스러운 영감쟁이라고 놀려대도 끄덕 없이 지내는 이 노인의 무의미한 고집이라 할까? 그런데 어느 날 책에서 눈을 떼고 바라보니 못과 외투가 벽에 걸려 있는 것이 새삼스럽게 돋보이는 것이다. 나는 순간 자문(自問)해 봤다. 왜 나는 아내가 그토록 못마땅한 옷걸이 행세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라까? 그리고 더 깊은 실제문제로 나아갔다. 못이 거기 있어 옷을 거는 거냐? 옷이 있어서 못에 거는 거냐? 가령 외투 옷이 있었다 하더라도 벽에 못이 박혀 있지 아니했더라면 거기에 걸려 있지 않았을 것이 아니냐? 그렇다. 그런거다. 나는 놀라운 발견을 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발견한 나의 지혜에 스스로 감동(?)까지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편 또 다른 생각이 떠올랐다. 아무리 외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불가사의해 저의 좁은 식견으론 표현 불가능한 졸필이지만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인류 구속의 놀라운 섭리는 바로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신비중의 가장 큰 신비요 기적 중에 최상의 기적이며 하나님의 사랑 중에 지극한 사랑의 극치요 인간으로선 정말 전무후무한 역사적 사건이었으니, 예언된 “오리라 한 엘리야”로 마지막 선지자 침례 요한은 십자가를 지고 끌려가는 예수를 미리 내다보듯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라고 주전 80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도 53:7) 라는 예언의 성취를 증거했다. 이미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따먹고 불순종의 범죄인 원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여자의 후손인 예수께서 십자가에 들림으로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을 언약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4:1,2상)라고 엄명한 말씀은 주님의 지상명령(The Great Commission) 혹은 최후명령처럼 바울 사도의 유언이요 최후명령으로 때를 얻든 못 얻든 영혼구령을 명령했다. 선전종이와 공짜 이발 해방 후 우리 마을엔 이발소가 없었다. 고모부 댁에 가서 이발을 몇 번 했는데 당시 이발 기계는 두 손으로 머리를 깎는데 기계 이빨이 여러 개가 빠진 오래된 기계라서 머리털이 잘 깎이지 않아 전진후퇴를 할 때면 머리가 아파서 여러 번 울곤 했다. 그래서 어머니가 가위로 머리를 깎아주셔서 학교에 갔더니 동무들이 “머리칼을 소가 뜯어먹었다!”고 놀려댔다. 토요일이 되면 어김없이 노란종이를 아무 말 없이 뿌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었다. 동무들의 말은 “예수쟁이”가 예수 믿으라고 하는 “선전종이”(전도지)라 했다. 교회에 안 다니는 우리들은 놀려댔다. 어떤 때는 “예수를 믿지 말고 나를 믿어라!”고 골목대장인 내가 먼저 소리치면 아이들도 작은 막대기를 흔들고 나를 따라 하기도 했다. 그런데
1950년도를 전해서 우리나라에는 거지떼들이란 무리가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고난과 6·25 전쟁의 전란에서 생겨난 동냥패들의 모임이 거지떼들이었다. 나는 그때 십대 청소년으로 그 거지떼의 모습을 유달리 새겨보는 지혜를 가졌다고 할까! 나는 그들의 삶의 조직과 패턴을 자세히 검토한 것 같다. 그들에게는 일정한 조직의 패턴이 있었다. 보통 10여명의 거지들이 한 떼가 되어 동냥을 하고 다녔다. 그들은 어느 동네 누구네 집에 길사(吉事)나 장례일이나 제삿날을 꼼꼼히 기억했다가 그 날이 되면 어김없이 찾아가서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지만 당당히 동참한다. 그들의 조직을 자세히 보면 거기에는 왕거지 대장이 있고, 규율을 지키는 규율부장이 있고, 재무(?)를 관리하는 재무부장이 있고, 동네마다 길사흉사 등 대사가 있는 가구의 일시 주소를 챙기는 섭외부장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여기 부장이라고 한 것은 내가 지금 임의로 붙인 이름이지만 직분만은 꼭 그런 것 같다. 가령 섭외부장이 어느 집 잔치집에 들어간다. 다른 거지 양반들은 잔치집에 얼씬도 못하고 저 동네 한 모퉁이 보이지 않는 곳에 조용히 좌정하고 오직 섭외부장 한 사람이 잔치집에 들어가서 거지 인원보고와 거지 모인
얼마 전 기고한 니버(Niebuhr) 교수의 “사랑과 법”에 이어 어릴 적에 들은 도둑을 용서한 노인의 얘기이다. 도회지에 나가 살던 아들이 설을 쇠러 시골집에 내려왔다. 떠나 있을 땐 그리운 고향집이었지만 막상 돌아와 보니 한시라도 견디기 힘들었다. 집 벽에서 나는 황토 냄새가 너무 역겨웠다. 어디선가 된장 내처럼 쾨쾨한 냄새도 콧속을 후비고 들어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문밖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서 문틈으로 밖을 내다 본 그는 깜짝 놀랐다. 머리끝이 쭈뼛 선것은 도둑이었다. 다행히 손에는 흉기가 들려 있지 않았다. 살금살금 부엌을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 도둑의 등 뒤로 날쌔게 달려들어 도둑을 땅바닥에 메어쳤다. 그리고 제 허리띠를 풀어서 도둑의 두 팔을 꽁꽁 묶었다. 온 식구가 깨고 아버지 영감도 달려 나왔다. 영감의 손에는 지게작대기가 쥐어져 있었다. 성깔이 불같은 노인 영감은 다짜고짜 말 한마디 없이 작대기를 휘둘렀다. 그런데 그 지게작대기가 아들의 등판에 철썩 올라붙었다. 영감이 너무 흥분한 나머지 도둑을 때린다는 것이 실수로 아들을 때린 거라고 다들 생각했다. 아들이 종아리를 싸쥐고 있는데 김 노인의 작대기가 재차 아들에게로 겨누어졌다
시골 사는 남동생이 억척같이 살아서 땅 깨나 좀 사고 소도 수 십 마리가 되는 등 그 동네에서 1호 거부(?)라 할까? 또 그 옆에 살고 있는 그의 누님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그 동생은 몸을 기계처럼 쓴다는 것이다. 기계에도 윤활유가 있어야 돌아가는데 그 동생은 자기 몸 보신도 모른 채 일만 한다고 안타까워 못살겠다고 오빠인 나에게 호소해왔다. 그 동생도 환갑을 지난 나이에 농사일을 하기 때문에 조로(早老)현상이 보였다. 옆에서 보던 그의 누님이 제발 편하게 살고 건강 유의해서 먹고 자고 쉬라 해도 소 귀에 경 읽기란다. 그런데 그의 누님, 나에게 여동생이지만 그가 내리는 남동생의 여생은 모두 그럴 듯한 것이었다. 한 마디로 말해 그가 뼈 빠지게, 눈 들어가게 노동해서 한 푼 모은 것이 결국 자식 입에 들어가고 자기 입에는 알사탕 한 개도 빨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안되기를 일단 기대하고기도를 드렸다. 시골 남동생 이야기를 하다가 서울에 있는 나를 생각해 봤다. 나도 똑같은 코멘트를 받아야 마땅하다. 폭염 속에 오늘도 30도가 넘는 기온을 기록한 것을 보면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다. 그냥 노목(老牧)이 아니라 지금도 강의, 집필, 상담을 하고 있는 청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3:10). 피조물 인간이 하나님을 어찌 시험할 수 있는가? 더욱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감히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겠는가? 이것은 경망한 불경죄요 저주받을 일인데, 예수님도 마귀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신6:16)는 구약 성서의 말씀을 인용해 꾸짖어 승리하셨다. 그런데 말라기 선지자는 어째서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라고 하셨는가? 1967년 8월 무더위 속에 춘천 기독교 연합성회가 열렸다. 나는 오전에는 죽림동성경교회에서, 오후에는 동부교회 연합집회에서 통역을 맡았다. 그런데 미국 전도단을 서울에서 안내해 온 목사님이 젊고 발음이 좋은 교인과 목사님을 선정해 오전 예배에 먼저 데리고 가셨고, 72세의 노인과 더 나이 많은 분을 나에게 남겨 두셨다. 그 당시 나는 사복 군인으로서 춘천 군인 복지센터 관장으로 봉사하며 춘천침례교회 부목사로 사역하고 있었다. 72세의 노인 이름은 찰스 이 내쉬(Charles Nash) 집사였다. 그는 미국 오순절
꽃과 똥이 다르듯이 나비와 똥파리는 다르다. 나비가 똥을 싫어함과 똥파리가 꽃을 싫어함은 그 속에 싫어하는 혼(魂)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나비가 꽃을 좋아하고 똥파리는 똥을 좋아하는 것도 그 속에 좋아하는 혼이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동양사상에서 그것을 하늘이 명해준바 타고난 성품이라고 했다. 즉 성(性)은 하늘이 내려준 것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나비보고 똥에 앉으라 하던지 똥파리보고 꽃에 앉으라 해도 그 놈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속에 있는 혼의 다름 때문이다. 그 혼의 문제는 성의 문제이다. 나비는 똥을 피하고 똥파리는 꽃을 피하는 것은 똥과 꽃의 문제가 아니라 그놈들의 혼성의 문제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찬송가 소리가 어떤 유행가보다도 듣기에 좋지만 불신자들은 그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말씀이 달고 오묘한 말씀이지만 불신자들에게는 무슨 주문이냐고 귀를 막는다. 그리스도인에는 진리의 영이 계셔서 진리를 좋아한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요14:17) 그러나 세상은 그 진리의 영을 받을 수가
첫 번째 재판이 끝나니 독방에서 합방으로 옮겨졌다. 74년 3월 10일 처음 독방에 들어왔을 때 고독감에다 환멸을 느껴 누구와 말 할 사람을 찾아봤다. 건너편의 죄수들과 통방도 시도했으나 경비가 삼엄해 여의치 않았다. 사람인(人)자는 막대기 두 개가 서로 기대어 있는 것으로 사람은 서로 의지하고 도우며 대화하는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임을 독방신세에서 절감했던 터였으나 4개월간 독방과 합방 4개월간 성경을 17독하고 50여권의 책을 읽고 9사 상하층 건물 200명의 수감자들에게 전도하고 기도하며 묵상하다보니 오히려 독방생활이 매우 친숙해졌다. 그런데 첫 번 재판이 끝나자 한 평도 안되는 방에 합방해 들어가니 먼저 들어온 5명 중 ‘감방장’ 길봉수 씨는 ‘감방규율’인 안철용 씨와 의논해 나의 자리를 마련해주고 ‘좌상’이라 불렀다. 나는 좌상이 무엇인지 모른 채 6명이 첫날을 지내는데 당시엔 긴급조치 아래 많은 죄수가 들어와서 용신하기조차 어렵고 밤에는 새우잠이나 앉아서 자는 형편이 되니 오히려 외로웠지만 독방생활이 당장 그리워졌다. 온갖 종류의 죄수들이 한 방에 모였고 무더운 여름 고약한 땀 냄새, 코고는 소리, 몸부림, 잠꼬대, 이를 가는 소리
옛날 어르신들께서 젊은이를 보고 던지는 한탄스러운 말이 있다. “이 식충아, 그것도 못하느냐? 이 식충아, 그러면 어떻하노?” 너무도 한심스러운 젊은이의 행동을 목격하고 답답해서 던진 어른들의 말이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생각을 못하고, 마땅히 해야 할 행동을 못하는 젊은이들을 보고 밥만 먹어치우는 벌레들이라는 말이다. 사람이 밥 먹어 치우는 벌레라고? 그게 식충(食蟲)이다. 말하자면 밥값을 못 하는 사람들에 대한 모독적인 호칭이다. 식충인간은 입으로 넘어간 밥에 부끄러운 인생살의 주역들이다. 밥을 먹었으며 밥값을 하라는 것. 불교의 수행 중에 매끼마다 밥그릇을 향해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는지 자성하는 관례가 있다고도 한다. 식충인간들은 밥값을 못하는 인간 일뿐만 아니라 한편 밥 찾아 하루 하루를 보내는 삶이 그들 삶의 전부라는 것이다. 평생 사는 것이 밥을 구하는 일, 그리고 그 밥을 먹고 배설하는 일, 그게 식충인간의 삶의 전부이다. 벌고 떠 벌어도 밥값에 다 들어가는 수입을 엥겔계수가 높다고 하는데 정말 작은 수입 때문에 밥 타령하는 것도 인간의 비극이고 엥겔계수 걱정 안해도 될 사람이 밥 타령하면서 사는 것은 더욱 비극이다. 이래저래 밥 밖에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