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희망하는 존재이다(Homo Esperans). 지금 우리나라는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형편과도 같습니다. 가시거리가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을 만큼 대형충돌사고가 예견되는 모습입니다. 지난해 2월 11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큰 대형 추돌사고가 인천공항 가는 길인 영종대교에서 있었습니다. 자그만치 106중 추돌사고 입니다. 세 명이 죽고 129명이 부상을 당한 끔찍한 사고였는데 주원인이 안개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지금 상황이 그 때와도 같습니다. 버스와 자동차가 마구 뒤엉켜서 아수라장이 된 것처럼 수습이 난감해보이는 사방이 꽉 막힌 것 같은 심히 어려운 형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날마다 지켜보는 국민들은 불안하고 착잡하기만 합니다. 거기에다가 이러한 현실을 대처하는 당자자들과 관계자들의 안일하고 무능한 태도를 보면서 국민들은 한심해 하고 더욱 분노하고 있습니다. 작금의 우리나라를 뒤덮고 있는 감정은 하나같이 억울함과 배신감과 허탈감이 주는 분노입니다. 그래서 심지어는 철부지 어린아이들까지도 손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동서남북 사방이 높은 장벽에 가로막힌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답답하고 막막하
“최상급의 용기는 분별력이다”-세익스피어 사사기에 보면 세 번째 사사로 등장하는 인물이 “삼갈”입니다. 열 두명의 사사 가운데 그에 대한 기록은 단 한 줄로 끝나는 것을 볼 때 그는 미미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소개할 게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삿3:31). 그런데 왜 성경은 그에 대한 기록을 한 줄에 불과하지만 남겨 놓았습니까? 그것은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분명한 교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에 중요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딤후3:16~17). 삼갈은 소 모는 자였습니다. 일개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 쓰셨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붙잡아 쓰시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원리는 동일합니다.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큰 일을 할 수가 있음을 삼갈을 통해 보여주십니다(고전1:27). 우리 눈에 보기에는 연약해 보이는 지체도 더 요긴하고 아름답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고전12:21~23). 그러므로 누구도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피어슨 아더 피어슨(Arthur T. Pierson, 1837~1911)이라는 한 위대한 인물과 또 그가 잠시 한국을 방문한 것을 인연으로 이 땅에 남긴 신앙의 유산의 일면을 상고하고자 한다. 생애와 교우관계 피어슨은 뉴욕 태생으로서 당대의 부흥사 무디, 최고의 설교자 스펄전, 백화점 왕 와나메이커(John Wanamaker) 등과 같은 해에 태어났으며; 버마의 침례교 선교사 아드니럼 저드슨(Adoniram Judson), 최초의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J. Hudson Tayler) 및 고아의 아버지요 기도의 사람이었던 조지 뮬러(George Mueller) 같은 지도자들과 친분을 가졌다. 피어슨은 스펄전 사후, 런던 메트로폴리탄 터버너클 교회(뉴파크 침례교회의 신축 성전)로부터 설교 목사로 초빙 받고 런던에 체류하는 동안(1891~93) 스펄전의 아들 제임스로부터 침례를 권유 받고 귀국 후 1896년에 침례를 받고, 그 일로 북장로교 필라델피아 노회로부터 잠시 면직처분을 받기도 했다. 학자로서, 설교자로서, 그리고 편집인으로서의 그의 생애를 볼 때 그는 참으로 하나님의 손에 붙잡힌 신념의 사람이었다. (조상열, 「피어슨기념성경학원」). 활약과 업적
모세가 40년간 광야에서의 망명생활을 끝내고 애굽으로 돌아왔을 때에 히브리 노예들은 엄청난 기대와 흥분에 사로잡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하셨던 해방과 자유 그리고 약속의 새 땅에 대한 기대로 부풀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 땅을 벗어난 그 순간 그들 앞에 전개된 환경은 그들이 가졌던 비전을 충족시켜주는 땅이 아니라 백성들이 경험하게 된 곳은 텅 빈 광야와 끝없이 펼쳐진 사막뿐이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대했던 약속과 비전에 엄청난 괴리 그 자체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광야에 나온 백성들은 자기들이 떠나온 애굽을 회상해 볼 때, 비록 그들이 그곳에서 노예로 살았지만 애굽 땅은 최소한 먹고 마실 것, 그리고 입고 살아갈 집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는 그 순간부터 백성들에게 다시는 애굽 땅을 기억하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애굽 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제나 달콤한 기억을 회상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애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비전을 주었습니다. 이 땅만 벗어나면 새로운 곳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비전입니다. 그리고 탁월한 지도자 모세가
기독교한국침례교 총회도 총회 규약 전문에서 “침례교회는 신약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정신에 따라 생활 속에서 복음을 실천하고 또 지상에서 하나님의 왕국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해왔으며, 성령님의 교통하심 아래 서로 협력하면서 천국 확장 사업을 공통 임무로 여긴다고 밝히고 있다. 19세기 미국의 감리교회는 순회 목회자들이 말에서 내려 정착된 목회자들이 되었을 때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20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남침례교에는 비록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사례금도 제대로 받지 않는 설교자들이 오염되지 않은 ‘옛날의 복음’(old-time gospel)을 설교함으로 부흥의 전기를 마련했다. 남침례교회들은 분파형에서 교회형으로 변형되지 않았다. 즉 지역에 안주하고 정적인 형태의 사역이 아니라 전통적인 견해들을 고수하면서도 역동성을 잃지 않았으며, 교회의 권한이 독립적이고 민주적인 교회회중에게 있다는 믿음 그리고 열정적인 사역자들의 목회 등이 그 성장 원인으로 분석된다. 미국 남침례교는 교회들의 연합된 복음전도와 선교 사업의 활발한 전개를 위해서 협동선교방식을 채택하였다. 협동프로그램(cooperative program)은 주님께서 분부하신 지상사명의 성취를
“최상급의 용기는 분별력이다”-세익스피어 사사기에 보면 세 번째 사사로 등장하는 인물이 “삼갈”입니다. 열 두명의 사사 가운데 그에 대한 기록은 단 한 줄로 끝나는 것을 볼 때 그는 미미한 존재인 것 같습니다. 소개할 게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삿3:31). 그런데 왜 성경은 그에 대한 기록을 한 줄에 불과하지만 남겨 놓았습니까? 그것은 그를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분명한 교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기에 중요한 뜻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딤후3:16~17). 삼갈은 소 모는 자였습니다. 일개 평범한 농부였습니다. 그가 어떻게 사사가 되어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를 붙들어 쓰셨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붙잡아 쓰시느냐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 원리는 동일합니다.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사람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큰 일을 할 수가 있음을 삼갈을 통해 보여주십니다(고전1:27). 우리 눈에 보기에는 연약해 보이는 지체도 더 요긴하고 아름답게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고전12:21~23). 그러므로 누구도 핑계를 대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의 이스라엘은
월터 라우센부쉬(Walter Rauschenbusch, 1861-1918). 라우센부쉬는 로체스터침례신학교를 졸업하고 적지 않은 재산을 가지고 “지옥의 부엌”(Hell’s Kitchen)이라고 불리던 뉴욕 서부지역의 빈민가에 들어가서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당시의 미국교회가 오직 영혼 구원만 외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복음은 사회적 구원을 동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로체스터침례신학교의 교수 재직 시 “사회복음 신학”을 펴내어 “사회복음”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버나드 램(Bernard Ramm, 1916-1992). 램은 이스턴침례신학교(EBTS)를 졸업한 후 모교와 로스앤젤리스침례신학교 및 아메리칸침례신학교에서 교수 생활을 했다. 한국에서 출판된 그의 저술로는, 프로테스탄트 성경해석의 교과서로 불리는 “성경해석학”, “과학과 신학의 대화”, “복음주의 신학의 흐름”(말씀사) 등이 있다. 그는 널리 알려진 역사변증학자이다. 에드워드 카넬(Edward J. Carnell). 카넬은 침례교 목사로서 오켄가(Harold J. Okenga)에 이어 패서디나의 풀러신학교(FTS) 2대 총장을 역임했다. 한국에서 출판된 그의 저술로는 “기독교변증학”과 “정통주의신학”
“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고 (많은 사람) 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단 12:4)” 하나님께서 BC 530년경에 다니엘을 통해서 이 세상 마지막 때의 징조를 말씀해 주시기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고 지식이 더한다”고 하셨습니다. 이조시대 때는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부산에서 서울까지 오는데 한 달 보름이 걸렸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님은 고3때 경상남도 진주에서 서울로 대학 시험을 치루기 위해서 새벽 캄캄할 때 출발했는데 한밤중에 서울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자동차로 서울에서 부산까지 4시간 30분, 고속전철로는 2시간 40분, 비행기로 30분이면 가게 되었습니다. 1896년, 라이트 형제가 처음으로 비행의 꿈을 꾸기 시작해서 1903년에는 역사상 처음으로 동력 비행기를 조종하며 비행시간 12초, 비행거리 36.5m를 날았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하늘에 날아다니는 비행기를 보면서 “내 평생에 저 비행기를 한번이라도 타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은 지금 현재 너무나 자연스러운 삶으로 바꿔져 있습니다. 저희 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을 경주로 갔었는데, 요즘 학
“나는 이방 여인이거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그 옛날 이방의 땅 모압에서 온 작은 여인 롯이 베들레헴의 유력한 사람 ‘보아스’에게 한 질문은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동일하게 해야 하는 질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룻이 질문한 이 물음에서 진지하게 진리를 찾아야 하며 또 이 말씀을 우리들의 신앙생활에 적용해야할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근본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자신에게 질문해 봐야 합니다.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온 모압의 어린 여인 룻이 베들레헴의 유력자 보아스에게 경이로운 마음으로 질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질문이 얼마나 정확하고 완전한 질문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베들레헴의 유력한 사람 보아스에게 한 질문은 보아스의 계보를 통하여 탄생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예시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보아스의 자비와 사랑으로 그의 아내가 된 이방 여인 룻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총을 떠나서는 결코 해석 될 수 없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 고백의 은총을 누리며 살고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스
4. 침례교 신앙의 실천적 요소들 침례교는 역사적으로 복음전도, 교회개척, 세계선교를 위한 실천적 신앙정신과 교회생활로 교회성장과 교단 발전을 이룩하여 온 교회이며 신자들이다. 침례교는 또한 본질적으로 성경과 영적 체험에 기초한 실천적 신앙과 생활로 교회와 교단적인 정체성을 정립해 온 신앙공동체이다. 침례교 신앙의 주요한 실천적 요소들을 몇 가지 선정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1) 복음전도와 선교의 실천 침례교인들은 전통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이다. 영혼구원, 전도, 선교는 침례교인의 특징적 표지이다. 침례교의 선구자격인 재침례교도들의 신앙에서의 놀라운 점은 교회 지도자들의 선교에 대한 업적이 아니라 보통 회원들이 선교에 헌신하였다는 점이다. 재침례교도들은 온 세상을 향한 책임이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존 번연은 가능한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기 위해 설교하였고, 전도를 설교의 일차적인 목적으로 간주하였다. 하지만 특수침례교인들의 칼빈주의 신학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초창기 침례교인들의 특징이었던 복음 증거에 대한 책임감을 둔화시켰다. 18세기 이후 깊은 퇴보에 빠져들었던 영국의 침례교회에 다시 불을 붙인 것은 설교자 스펄전(Charles Had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