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목회’란 뭘까? 쉬운 걸까? 어려운 걸까? 사소한 걸까? 위대한 걸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목회는 어렵지만 위대하다. 얼마 전, 결혼생활에 대한 주제로 주일 말씀을 나누며 묵상해 본 것인데, 생각해보니 결혼도 목회도 서로 통하는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별히 결혼생활에 대한 두 가지 오해를 생각해 보자. 첫째, 사람들은 결혼을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것과 같다”고만 여기는 경향이 많다. 물론 맞는 말이다. 인생에 이보다 더 가슴 뛸 일이 어디 있나? 죽도록 사랑하는 이와 죽기까지 함께 한다는 건 생각만 해도 벅차다. 게다가 더 넓은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까지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얼마나 우아하고 아름답고 행복하랴. 하지만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는 것에는 꼭 낭만만 있는 건 아니다. 거기 살려면 각오할 것도 많다. 예컨대, 초원이다 보니 비가 오면 질퍽거리는 길을 다녀야 하고, 새로 산 신발도 더러워질 수 있으며, 시도 때도 없이 돋아나는 마당의 잡초 역시 수시로 뽑아주어야 한다. 온갖 벌레와의 전쟁도 치러야 하고, 소똥 냄새에도 적응해야 하며, 외로움도 달래야하는 수고가 동반된다. 그것을 해낼 각오 없
연구자는 설교의 다양한 방식들 가운데 네 가지 방식을 중심으로 논하면서 어느 장르에는 어느 방식만이 유일하다고 하기 보다는 가능한 방식들을 복수로 제시하였다. 1. 키워드 방식(Keyword Method) 키워드 방식은 일반적인 설교 작성 방식 가운데 가장 보편적이다. 도날드 해밀턴(Donald L. Hamilton)은, 키워드 방식을, 먼저 본문을 기계적(혹은 구문론적으로)으로 펼쳐서 중요 아이디어나 개념들을 파악하고 그것들이 본문의 주제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함으로써 하나의 주제를 위하여 주요 개념들이 설교 개요를 형성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는 키워드 방식을 위한 전개 과정을 12단계로 구분하면서 본문의 중심사상으로부터 주제, 명제, 키워드 확정, 개요, 나아가 설교의 제목에 이르는 설교작성 단계를 밝히고 있다. 특이한 것은 명제에서 키워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질문형식으로 명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하여 키워드를 통하여 답변을 내림으로써 설교 작성은 키워드와 긴밀한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키워드 방식에서 본문의 중심 사상은, 본문이 무엇에 관한 것이냐를 말한다면, 주제는 그 아이디어에 대하여 본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라암셋에서 출발해서 숙곳을 거쳐 에담을 지나고 바알스본앞 비하히롯 사이 믹돌에 진을 쳤을 때 애굽왕 바로가 군대를 몰고 뒤쫓아 왔습니다(민33:5~7절, 출14:2~6). 그 모습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 가지로 반응을 했는데 심히 두려워 하나님께 부르짖었고(출14:10절), 모세에게 불평을 했습니다(11~12). 그들의 부르짖음은 믿음으로 한 것이 아니라 불신앙적 염려와 고통스러움으로 외친 비명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질적인 만성질환이 있었는데 원망과 불평입니다. 출애굽기 15:22~24에 보면 홍해가 갈라져서 쫓기던 이스라엘 자손들이 극적으로 살아나고 이어서 뒤쫓아 온 애굽 군대가 홍해바다 속에 수장이 되는 놀라운 기적을 보고서도 수르광야에서 3일 동안 물을 못 마셨다고(물이 써서 마라라고 함) 모세를 향해 원망을 합니다. 이게 인간의 간사함입니다. 믿을 수 없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이어지는 16:1~3에도 엘림에서 떠나 신(zin)광야에 이르렀을 때, 그들이 또 모세를 향해 원망을 합니다. 출애굽한 후 불과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 이유는 애굽에서 종살이 할 때 고기가마 곁에서 떡을 먹던 때를 그리
자유교회(Free Church)는 국가교회(혹은 시교회)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교회가 국가교회가 된 시발점은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가 313년에 “밀라노 칙령”(Edict of Milan)을 발표하여 기독교를 공인하고 기독교인들에게 신교의 자유를 허락하면서부터였다. 이는 한편에서는 기독교회나 복음이 로마제국을 정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기독교회가 세속권력과 결탁하여 타락(Fall of the Church)의 첫걸음을 내디딘 사건이었다고도 평가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교회가 국가권력과 바람이 난 것이다. 군사적 정치적 통일을 이룬 콘스탄틴 황제는 아직도 로마제국이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는데, 당시 급성장하고 있던 기독교 세력에게 손을 뻗쳐 자신의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 교회를 끌어들인 것이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이를 “콘스탄틴의 공생”(共生, Constantine Symbiosis)라고 부른다. 국가가 교회와 공생을 하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어떤 이들은 “국가와 교회의 결혼”(結婚, Marriage)라고도 하고 “국가와 교회의 합금”(合金, Amalgamation)이라고도
최근 한국신약학회에서 “신약성서와 하나님”이란 주제로 발표한 침례신학대학교 장동수 교수(신약학, 사진)는 한국 신학계에서 신약과 구약의 통합연구와 함께 하나님 중심(나라)의 연구가 이뤄져야 함을 강조했다. 장동수 교수는 해외 신학자들의 견해를 근거로 들면서 하나님에 대한 포괄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거나 무시되는 경향을 지적했다. 또한 이러한 이유를 △뚜렷한 그리스도 중심성 △신약의 하나님 언급의 간접성과 연결지어 설명했다. 장 교수는 “신약의 저자들은 구약 및 저자들의 동시대 유대교의 하나님 개념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신약에는 하나님의 주제로 등장하는 이야기가 없고 오히려 기독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등 여타의 신학적인 주제들을 다르면서 하나님을 언급할 뿐”이라고 밝혔다. 신약의 27권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책이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책이라는 타이틀로 시작되고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묵시라는 타이틀로 시작된다. 4복음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이며, 사도행전은 그가 열방에 증거되며 교회가 세워지는 역사이고 나머지 책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에게 보내진 서신들이다. 이렇듯 신약은 하나님보다 기독론이 강조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
사랑 중에 가장 순수하고 뜨거운 사랑은 아마 첫사랑일 것입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첫사랑을 그리워하고 못 잊어합니다. 인간적인 사랑만 첫사랑이 있는 게 아니라 신앙에도 첫사랑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처음 주님을 만나고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누릴 때나 사명을 받고 설레면서 부푼 꿈에 젖었던 때의 첫사랑이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오래 지나다 보면 빛바랜 사진처럼 첫사랑의 감격과 흥분과 열정이 점점 식어버립니다. 처음에는 맑게 흐르던 물도 오래 흐르다 보면 이끼가 끼듯이 우리의 영혼과 사명에도 영적인 이끼가 끼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혹시 우리의 신앙과 삶에도 이런 불필요한 이끼는 없습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서 곳곳에 끼어 있는 것을 씻어내기를 소원해봅니다. 요한계시록 2장은 소아시아의 대표적인 교회였던 에베소교회를 향해 주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아시아주의 수도이며 "아시아의 빛"으로 불리웠던 에베소에 세워진 에베소교회는 순회선교사인 바울사도께서 가장 오래 머물면서 심혈을 기울여 세운 교회입니다. 그래서 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이 다 주의 말씀을 들었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영향력을 끼쳤으며 에베소교회를 중심으로 여러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마 15:14)” 나귀의 턱뼈만으로 블레셋 군인 1000명을 때려죽인 삼손이 훗날 블레셋이 삼손을 포로로 잡은 후 제일 먼저 그에게 가했던 제재가 무엇이었습니까? 두 눈을 뽑아 소경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소경이 되면 아무리 하나님이 주신 큰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하더라도 그 능력으로 세상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순간부터 그는 비참한 인생이 시작되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그 시대에 영적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과 제사장,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영적 소경이란 지적을 당했듯이 마귀는 이 마지막 때에도 영적 지도자들의 눈을 어둡게 만드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눈만 어둡게 만들면 자기들의 종으로 마음껏 부려 먹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설령 우리들 안에 예수의 능력이 있다하더라도 자신들의 노리개 감으로 마음껏 즐기며 놀 수 있기 때문입니다.우리들이 가장 마음을 쏟고,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부분은 우리의 영적 눈이 어두워져서 영적 분별력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해야겠습니다. 우리의 영적 눈이 점진적으로 더
그리스도인의 가장 아름다운 특성은 “기쁨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일반적인 선언이 아니라 사도 바울의 신앙 간증인 동시에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선언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기뻐하며 살아야 하는 이유를 증명해 주기 위해서 사도 바울은 그 모범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은 살맛을 잃어버린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질, 건강, 자녀나 부모, 성취에 대한 좌절, 과로, 질병, 인관관계로부터 오는 스트레스 등 여러 가지로 기쁨을 잃고 살아갑니다. 현대인들의 이런 삶 속에서도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상황과 형편을 넘어서 기쁨을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고통가운데서 살아갑니다. 기쁨이란? 그리스도인이 누려야할 가장 숭고하고 아름다운 가치이며 아름다운 보물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영적 재산을 회복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은 교제의 참 가치를 깨달아야 합니다. 기쁨은 절대 혼자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이란 더불어 나누고 누릴 때 참 기쁨이 됩니다. 귀먹고, 말 못하고, 보지 못하는 세 가지 장애를 가졌던 위대한 여성 헬렌 켈러는 “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을
연구자는 설교의 다양한 방식들 가운데 네 가지 방식을 중심으로 논하면서 어느 장르에는 어느 방식만이 유일하다고 하기 보다는 가능한 방식들을 복수로 제시하였다. 1. 키워드 방식(Keyword Method) 키워드 방식은 일반적인 설교 작성 방식 가운데 가장 보편적이다. 도날드 해밀턴(Donald L. Hamilton)은, 키워드 방식을, 먼저 본문을 기계적(혹은 구문론적으로)으로 펼쳐서 중요 아이디어나 개념들을 파악하고 그것들이 본문의 주제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파악함으로써 하나의 주제를 위하여 주요 개념들이 설교 개요를 형성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그는 키워드 방식을 위한 전개 과정을 12단계로 구분하면서 본문의 중심사상으로부터 주제, 명제, 키워드 확정, 개요, 나아가 설교의 제목에 이르는 설교작성 단계를 밝히고 있다. 특이한 것은 명제에서 키워드를 설정하는 과정에서 질문형식으로 명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하여 키워드를 통하여 답변을 내림으로써 설교 작성은 키워드와 긴밀한 연관성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키워드 방식에서 본문의 중심 사상은, 본문이 무엇에 관한 것이냐를 말한다면, 주제는 그 아이디어에 대하여 본문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어릴 때 목회자로 소명을 받은 후에 저의 관심은 목사님들의 설교에 있었습니다. 목회자의 절대적인 사명이라면 설교가 될텐데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하는 목사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저는 성장기에 이동원 목사님을 비롯해서 정말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설교를 해주시는 담임목사님들을 만났기 때문에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물론 듣는 것과 실제로 하는 일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래도 설교를 하는 일보다는 듣는 일이 많았던 시절에 적지 않은 교회들을 다녀보면서 참 이상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가든지 그 교회 목사님의 설교는 참 중요하고 핵심적이고 복음적인 내용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보면 정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느 교회는 부흥을 하고, 은혜를 받는가 하면, 어느 교회는 정말 복음적인 말씀이 선포되는 데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은혜에 목말라 있더라는 것입니다. 이게 가만히 보니까, 그 말씀이 어떻게 들려지느냐와 관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의 설교에서 나온 예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한 10여년 쯤 전에 그 교회에 서울대에 다니는 맹모 학생이 있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