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은 성경 전체에 곳곳에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분입니다. 그는 여러 면에서 본을 보여주며 우리에게 거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아브라함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비중은 실로 대단합니다. 우리 주 예수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는 두 분 중에 첫 번째로 소개되고 있을 정도로 존귀하신 분입니다(마1:1). B.C 2세기 경의 유대인의 경전인 요벨서에 의하면 아브라함에 관한 기록이 나오는데 14세 때에 우상숭배하는 것을 혐오해 여러 번 자기 부모와 친족들에게 우상숭배를 금할 것을 강력하게 요청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그가 60세 되던 해에 우상을 섬기는 사당에 불을 질렀는데 이 때 불을 끄려다가 그의 형제인 하란이 심하게 화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보시고 그를 선택해서 소명을 주시고 부르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Ur)를 떠나라고 명하셨고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을 했습니다. 당시의 우르는 달(moon) 신을 섬기는 우상의 도시였는데 그곳을 떠나서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르는 지금의 이라크 남부지역으로 성경에는 갈대아인의 땅(
아담의 18대손은 나홀입니다. 나홀은 “나하르”라는 말에서 유래됐습니다. 이는 “뒷바람” “콧바람”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홀이란 이름은 “숨이 차다, 헐떡거리다, 콧김을 내뿜다”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의미로 보면 그다지 은혜로운 이름은 아닌 듯 합니다. 실제로 나홀은 무의미한 인생을 살다 간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9세 때 아브라함의 부친인 데라를 낳고 119년을 더 살다가 148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이룬 것은 성경의 기록을 볼 때 아무것도 없습니다. 나홀이 8대조 할아버지인 노아와 148년 동안을 동시대에 살았으니 노아도 이 때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나홀은 아담의 20대 후손 중에 가장 짧은 생애를 마쳤습니다. 그의 증조 할아버지인 벨렉이 최초로 200세 대를 산 사람(239세)으로 기록을 세웠는데 또 다시 그의 증손자인 나홀이 100세 대로 수명이 단축되면서 이스라엘의 원역사를 이루는 20명의 족장 중 가장 단명하게 산 사람이라는 기록을 남겼습니다. 그럼 왜 나홀만 유독 두드러지게 단명했겠습니까? 아마도 추측컨대 하나님 앞에서 경건치 못한 삶을 살아서 그런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시편 55:23과 잠언 10:27, 잠언
필자는 지금까지 신약성서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현현 사건들을 토대로 신약성서 부활신학에 관하여 기고해왔다. 초대교회 사도들이 체험했던 부활현현의 체험은 그들의 중심에 부활신앙을 심어주었으며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음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관한 소식을 분명하게 알게 할 뿐 아니라 그 복음을 담대히 선포하는 권능을 받게 했다. 신약성경은 바로 그 사도들이 선포한 복음을 토대로 이루어지게 되었으며 따라서 신약성경은 신앙적으로는 부활신앙을 토대로 이루어진 문서이며 또한 신학적으로는 부활신학을 토대로 이루어진 문서라고 말할 수 있다. 필자는 이제 신학성서신학의 각론으로 들어가 먼저 신약성서에 나타난 기독론 곧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자 한다. 신약성서 저자들 중에서 바울과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에 관하여 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다. 사도 바울이 기독론을 다양하게 제시하는 반면, 사도 요한은 그것을 좀 더 깊이 있게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먼저 바울서신들에 나타난 바울의 기독론을 살펴보고 다음에 요한복음에 나타난 요한의 기독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바울은 그의 서신 여러 곳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
“너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27:) 제가 아는 어느 한 분은 개인 볼일로 집에서 외출을 나갔다가 차에 치어 병원에 입원하여 오랫동안 병실에 누워 고생한 분이 있습니다. 또 한 분은 남편이 아침 출근길에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심장마비가 걸려 이웃 주민의 신고로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세상을 떠난 분도 있습니다. 지난 세월호 사건이나 천안함 사건, 네팔 지진, 프랑스 테러 등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이 우리 주변과 사회에서, 세계 각 처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줄 알았다면 그 사고 현장에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 말씀처럼 “오늘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알 수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 아무 일이 안 일어날 것처럼 대다수가 살고 있고 그러면서 내일도 있는데….”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오늘이 내 생애에 마지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3가지 내용의 삶에 유념하며 살게 됩니다. 첫째는, 현재 죄를 짓고 있는 것들을 정리하게 됩니다. 그것도 빨리 죄를 끊어 버리려
유럽의 중세시대는 경제적으로는 토지를 중심으로 하는 봉건주의체제, 정치적으로는 신성로마제국에 의한 통치, 신학적으로는 스콜라주의 신학체계, 교회적으로는 교황을 정점으로 해서 유럽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가 되어 있던 안정된 사회였다. 그러나 두 세기에 걸친 십자군 전쟁(The Crusade, 1095~1291)을 겪으면서 유럽사회의 기저는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유럽의 지식인들이 희랍의 고전들을 재발견하고 접하면서 14~15세기에 르네상스(Renaissance, 문예부흥, 재생, 재창조)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고, 유럽사회는 점차 중세 봉건사회의 틀을 깨뜨리고 근대사회로 변모하기 시작했다.16세기 유럽에서 전개되었던 종교개혁운동(Reformation)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사건이었다. 로마가톨릭 교회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중세적 안정(medieval stability)을 깨뜨린 사건이었고, 이단적이고 분리주의적이고 마귀적인 운동이었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들은 하나님께서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를 더 이상 방관하실 수 없어서,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예비하셨던 개혁가들을 동원하여 당시의 교회를 개혁하셨던 사건으로 이해한다. 다시 말
오늘은 이렇게 인사하고 싶습니다! 꿀 모닝! 국적 불명의 언어로 인사하는 게 예의는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요즘 따끈한 꿀 물 한 잔 대접하는 심정으로 그런 인사를 드려봅니다. 하루가 낮과 밤이 교차하고 서로 공존하듯이 삶에는 언제나 위기와 기회가 교차하고 씨줄과 날줄이 얽혀 있듯이 아픔과 기쁨이 어우러지고 서로 부대끼며 살아갑니다. 마치 한 잔의 커피 속에 쓴 맛과 떫은맛이 있는가 하면 그 속에도 나름대로 단 맛과 구수함이 깃들어 있는 것 같이 우리네 삶에는 고통과 절망만 있는 게 아닙니다. 사과 속에 씨가 들어 있듯이 시련 가운데에도 희망이 있고 뜻밖의 위로와 기쁨이 녹아 있습니다. 요즘 유난히 어깨가 무거워 보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꼭 한 가정을 책임진 가장이 아니더라도 젊은이들과 여인네들의 모습에서도 쉬이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따금씩 삶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고 마음을 가라앉게 할 때, 그래서 일상의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싶을 때, 상처 받은 작은 한 마리 새 같이 외롭고 답답할 때가 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떤 이는 여행을 떠나고 또 어떤 이들은 먹는 걸로 풀기도 합니다. 고상하게 클래식 음악을 듣거나 아니면 술의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가진 경향성이나 사상을 흔히 ‘주의(主義)’라고 말한다. 인문학에서의 계몽주의, 인상주의, 또는 심미주의; 사회 경제학에서의 공산주의와 그에 맞선 자본주의, 그리고 신학에서 말하는 정통주의와 자유주의 등등이 바로 우리가 ‘주의’라고 일컫는 이데올로기이다.사람들은 대게 개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삶의 주인으로 믿으면서도 신앙이나 신학의 어떤 주의나 아류(亞流)에 소속 되려는 경향성을 가진 것 같다. 신학자들 간에도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상대방의 신앙과 신학까지 정통주의, 자유주의, 복음주의 등의 신학사조 범주에 한정해서 이해하고 평가 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실제로, 학자들은 때로 구원론에서는 칼뱅이나 아르미니우스의 견해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받고, 종말론에서는 천년왕국에 대한 여러 이론 중 하나에 속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낀다. 그러나 그 어떤 주장이나 신학적 견해라고 할지라도 만인이 수용할 수 있는 온전한 이론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들은 어떤 학파나 사조에 묶이는 것을 경계한다.그런 학자들은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성경중심주의’라 하거나, 어떤 ‘주의자’가 아니라 단순히 복음을 중요시한다는 취지에서 스스
하나님의 사람 에녹의 아들로 태어난 므두셀라의 히브리식 이름은 “메투 셀라흐”입니다. 이는 “창 던지는 자”란 의미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보수적인 성서강해자인 아더 핑크는 “그가 죽으면 마지막 (심판)이 온다”는 뜻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매우 깊은 영적 비밀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리라”고 아모스 3장7절에서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300년간을 하나님과 동행하게 될 에녹에게 하나님께서 장차 되어질 중요한 사건과 그에 따른 계획을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 계획은 다름 아닌 세상을 쓸어버리시는 홍수심판의 계획입니다(창6:5~7). 하나님으로부터 그 놀라운 계획을 듣고 에녹은 정신이 번쩍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바로 므두셀라입니다. 그래서 에녹은 그 때부터 경건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남은 평생을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죽으면 마지막 심판의 때가 온다는 깊은 뜻으로 자기 아들의 이름을 부르게 된 것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일입니다. 므두셀라가 아들인 라멕을 낳을 때가 187세였습니다. 라멕이 노아를(므두셀라의 손자)
우리 선조들이 침례파라는 조롱 섞인 이름으로 불리어진 아픈 이름을 무엇 때문에 자랑스러워했을까요? 한국에서 선교역사를 선점해서, 교육, 의료선교, 아니면 많은 인재를 배출했거나 사회참여 때문일까요? 이 질문에서 우리는 흔쾌하게 답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습니다. 몇 년 전 타 교단 지도자 한분으로부터 저녁식사를 초대를 받아 식사 후 산책 겸 카페를 찾으면서 서울 중심부에 있는 자기 교단 빌딩들을 소개하고 이어서 교육기관들과 병원들을 말하는 나도 모르게 ‘엄청나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교단의 자산이 얼마나 될까? 생각하는 순간 비교할 수 없이 빈약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특별한 보물은 무엇일까요? 저는 누구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사랑하는 것이라 믿습니다. 바울사도는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그는 가난한 여행자로서 로마에서 추방당한 브리스길라, 아굴라 부부와 함께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행색은 초라했으며,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고린도인들의 문화, 지적욕구, 그리고 철학의 수준에서 볼 때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 무지한 말들이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도시에 가져간 것은 매력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이 이름이 부연되지 않고 등장한다고 해도 이는 동일한 인격성을 가진 존재의 현존에 대한 표현인 것이다그러나 J. A. Zisler는, ‘이름’은 단지 예수의 부재를 극복하거나 또는 예수를 대체하는 수단이 아니라 복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8:12; 9:15, 16). 이는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사역이 지속되기 때문에 승천하신 예수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이름’은 적절한 의미를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J. A. Zisler, “The Name of Jesus in the Acts of the Apostles,”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New Testament, vol. 4 (1979): 28-41.. Joseph A. Fitzmyer는 ‘이름’이란 용어의 사용은 구약의 전통(삼상 25:25)을 반향(echoes)하는 것이며 예수를 지칭하는 실제적이고 사실적인 표상(real and effective representation)이라고 하며Fitzmyer, The Acts of the Apostles, The Anchor Yale Bible, 266., H. Douglas Buckwalter는 구약에서 “여호와의 이름은 그의 인격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