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고 또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한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는 저 밑바닥에 공의(公義)라는 것이 깔려 있어서 상벌도 있지만 마침내 표면에는 사랑의 관계다. 사랑에는 사랑하기에 사랑의 감정을 그대로 표출하게 된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담은 연서(戀書, Love Letter)를 받으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로부터 학문의 정단의 상아탑에서 골머리 앓아 가면서 짜내고 끊고 붙이고 한 논문(論文)을 원하지 않으신다. 고 장영희 서강대 영문학 교수가 학생들에게 연애편지를 영문으로 작성해 보라는 숙제를 내고 그것을 번역한 것을 여기에 실어본다. “나는 밤낮으로 당신을 생각합니다. 거리를 걸으면 사람들 사이에서 당신 모습이 보입니다. 책을 읽을 때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당신의 얼굴이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길을 가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가로수에서 떨어진 노란 은행잎 속에서 당신의 얼굴을 보았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어젯밤 다시 전화했지만 당신은 집에 없었습니다. 사흘이나 당신의 웃는 모습을 보지 못했고 이틀이 지나도록 달콤한 목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두
“내 말 들리냐? 야, 이 도적놈들아!” 건너편 서대문 감옥 10사(열번째 건물)의 아래위층에 쇠창살을 잡고 하염없이 기대어 창밖을 내다보면서 고요한 일요일 아침에 따스한 봄 햇살을 쬐던 죄수들이 나의 고함소리를 듣고는 방에 앉아 있는 동료들에게 ‘아마 오늘도 어느 미친놈이 무엇이라 지껄이는지 마침 심심하던 차에 들어보자’고 했는지 하나 둘 셋 쇠창살 사이로 얼굴을 내밀면서 매꿰갔다. 적막한 일요일이면 가끔 고함소리가 울리는데 “어머니, 어머니….”라고 애타는 울부짖음이 있는가 하면 어떤 때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 들 수 없는 말이나 미친놈의 발광하는 고함을 거드는 소리도 들려오곤 했었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쇠창살 좌우를 두 손으로 굳게 잡고 올라서서 내 목소리가 내가 있는 감방에는 들리지 않게 얼굴을 창살에 바짝 붙이고 또 크게 소리쳤다. “도둑놈들아! 내말 들리니? 잘 들리면 고개를 흔들어주든지 손을 창살 밖을 내밀어 흔들어라! 내 말 알겠냐?” 라고 크게 소리쳤다. 1974년 3월 10일 나는 긴급조치 하에 보안법 등의 위반혐의로 남산 중앙정보부에 두 번째 압송된 뒤 소위 죄수들이 말하는 ‘피아노’를 치고 검찰청에 이송되어 서대문구치소 9사상에 수번
나의 여름은 매미 노래 소리로 시작된다. 땅 속에서 7년 동안 지하생활의 인고(忍苦)를 거쳐 8년 되던 해에 세상에 나왔다가 불과 7일 동안 노래하다가 일생을 마친다고 들었다. 물론 땅 속에 후손 씨앗을 심어 놓고 간다고 들었다. 어떤 사람들은 매미 소리를 노래로 듣지 않고 소음으로 듣는다고 한다. 무슨 그런 귀가 다 있는가?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거늘 리드미컬하게 고음으로 발성하는 데에는 조수미 가수 인들 미칠까? 매미는 자기 신명 받치는 대로 노래해 재낀다. 감상하는 이가 없어도 상관없이 노래해 재낀다. 나는 매미의 여름 한 철을 나의 여름 한 철로 편입시켰다. 나는 매미와 함께 여름을 보내고 매미 노래 소리가 그칠 때 나의 여름도 사라진다. 묻노니 매미가 왜 노래하는지 누라 물어 보기나 했나.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고 노래해 재낀다. 묘한 것은 깊은 여름 밤에는 노래하기를 억제하는 듯 하다. 답해보시라. 누가 매미에게 노래하기를 명하기라도 했는가? 또 왜 노래하는지 그 이유를 묻기라도 했는가? 나는 알고 있다. 매미에게 노래하기를 명하신 분은 따로 있다.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에게 성품을 명하셨다. 이것은 중용(中庸)에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
나는 손짓하는 충청도 어르신네 앞에 가니, “새로온 예수 선상 맞지요?” “예, 저기 언덕위에 있는 교회에 새로온 전도사입니다.” “예수 믿고 천당에 갑시다 한다는데, 그래 천당에 가보기나 했소?” “아니요.” “천당에 가보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예수천당 그래요?” “예, 어르신네 말씀이 일리가 있습니다만, 선생께서는 미국이 있는 것을 믿으시지요?” “그거야 미국 사람들을 봤으니까 미국이 있는 것을 믿지요.” “예, 저도 천당에 가본 일이 없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40일 금식기도로 마귀의 세 시험을 이기시고 첫 번 외치신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4:17)고 외쳤고, 계속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천국에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천국을 잘 설명해 주셨고, 3년반 천국복음을 설교하신 후 인류의 죄를 대신지시고 마지막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도 회개하는 오른편 강도에게고 천국을 약속해 주셨기 때문이지요!” “예수 선상, 그럼 예수는 봤소?” “아닙니다.” “허참, 보지도 못한 예수의 말을 어떻게 그렇게 잘 믿는단 말이유!” “선생님, 이 도안리 동리 사람들은 세종대왕의 17대 외손들이라고 자부심을 갖는 것을 보았는데, 어찌 세종대왕을 안보고서도
성경은 한 사람의 죄 때문에 세상의 온갖 불행이 왔고 또 한 사람의 은혜 때문에 세상의 온갖 행복이 왔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나”(롬5:15)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롬5:17)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5:19) 나의 약학대학생 외손자는 매주 토요일 외갓집에서 지낸다. 저녁식사 후 위의 본문으로 채플을 드리고 곧 질문을 던져봤다. “약대생, 감기는 왜 걸리는거냐?”라고. 너무나 질문 같지 않은 질문에 당황한 듯 대답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배가 계속 추궁하
① 창씨 개명 “니시하라 히대하루” 사촌 누나들이 왜놈 말 “이찌, 니, 산, 시, 고, 로구, 시찌, 하치, 규, 주”를 입학할 때 잘 외워야 하고 “니시하라 이대하루 상”(西原泳春)하면 똑바로 서서 차려 자세로 “하이”라고 대답해야 입학한다고 해서 시킨대로 잘 연습하여 1944년 9월 초 도동초등학교에 입학했다. 1년 간 뭘 배웠는지 모르나 연필 깎는 소리냈다고 옷을 전부 벗겨 팬티만 입히고 눈덮인 운동장을 5바퀴 안 돌았다고 갖은 수욕을 받은 기억이 있다. 일본국가 “기미가요”는 잊어버렸으나 지금껏 기억하는 노래는 “하루가 끼다, 하낭아 사꾸” 일 뿐이다. 왜놈이 가르쳐준 노래대로 1년 후에 삼천리 강산에 해방의 봄이 왔고 꽃이 피었다. ② 양코배기 글 “투레븐 실레븐!” 중학교에 입학했는데 또 양코배기 글을 세상에 가르치는 것이 아닌가? 초등학교 때 그놈의 싫고도 못 되먹은 외놈 말과 글 배운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또 중학교에선 서양 놈의 글을 가르치지 않는가? 더러워서 못살겠다! “너희들, 지난 시간에 배운 거 누가 해볼 사람 손들어!” 라고 영어 선생이 물었다. 모두 조용하자 “B반에 급장은 어느 놈이고 먼저 일어서라”해서 일어섰더니 1-20까
지금처럼 대형마트가 생기기 전 그러니깐 지금으로 짧게는 40여년 전 만해도 동네가게가 동네 사람들에게 인기였다. 아주 편리하고 고마운 가게였다. 거기 가면 아침저녁 반찬이 있고 간식거리가 있고 각종 음료가 있고 손쉬운 가정상비약도 팔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그 가게에 진열된 물품이 적어지기 시작했다. 필요품을 사러 가면 거의 없어서 구입할 수가 없었다. 동네 사람들이 하도 이상해서 물었다. “이 가게 안 하려고 그럽니까? 왜 물건이 없는거요?”라고 했더니 그 주인의 일갈(一喝)이 매정하기 그지없었다. “우리 이제 장사 안해유.” 그 특유의 충청도의 길게 빼는 배부른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쳐다보는 손님에게 그는 또 일갈을 토했다. “이제 우리 OO동으로 이사가유.” 잠깐 생각해 봐도 지금까지의 동네 사람들이 고객이 되어 장사해 먹었지만 이젠 저 먼 동네로 이사 가서 장사를 할 판이니 여기 이 동네사람들과는 아무런 거래 관계를 있을 턱없으니 막가는 사람 막 보면 어떠냐는 식이었다. 몹쓸 사람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이 가게 주인은 여기서 톡톡히 장사 재미를 보아 치부했다고 했다. 그렇다면 떠나는 마당에 동네사람들에게 그 동안 고마웠다고 다정
한번은 TV에서 “앞으로 태양은 2억년 후에는 수명을 다할 것인데 그러면 지구도 자동적으로 종말이 올 것이다”고 천문학자가 얘기하는 것을 보았다. 시종여일, 시종일관이란 말에도 시종(始終)은 처음과 끝으로 일에 있어서나 시간, 장소, 우리 한사람의 출생과 임종(生如寄也死如歸也)으로 “사는 것은 붙어 있은 것이요 죽는 것은 돌아가는 것”일뿐 아니라 사회나 국가, 민족과 역사속에서 시종이 있어왔다. 말세의 징조에서 해가 어두워지며 달도 빛을 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가 수 십년 생각하다가 작년 6-7월에 사는 집에서 매일 하늘을 유심히 점검한 결과 4일만 쾌청한 푸른 하늘을 보았다. 홀름스(Hannah Holmes) 박사는 “10~30억톤의 사막과 미세 먼지가 매년 하늘을 나는데 100억톤의 양은 기차속의 1400만 화물칸을 가득 채워 지구의 적도를 6번이나 감싸 도는 엄청난 분량이다”고 말했다. 배기 온실가스와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 안개구름, 지구 온난화로 빙하감소, 해수면 상승, 기상이변으로 홍수, 한재, 허리케인, 환경과 생태계 파괴, 기근, 질병, 우박, 해일, 쓰나미, 자기장, 태양폭풍 등 재해뿐만 아니라 원자재가 상승, 정치, 경제, 문화, 사회,
평상시 잘 알고 있는 어떤 성도님이 굳이 자기가 모이는 모임에 한 번 참여해 달라는 간곡한 부탁에 못 이겨 내가 찾아간 곳이 서울 모처 모교회당이었다. 저녁 7시에 갖는 모임인지라 성도와 함께 부근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그 교회 1층 어린이 예배실로 갔다. 이 교회는 이 모임을 한 달에 한 번씩 어린이 예배실에 갖도록 허락해 줬기에 이들의 모임을 월 1회 여기서 꼭 정한 이날에 갖는다는 것이었다. 그 모임의 이름은 “대한민국 대통령을 위한 OO모임”이었다. 누구는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 안하나? 어느 교회든 조국과 대통령을 위해 기도안하나? 왜 굳이 이들만이 유별스럽게 그런 기도를 하느냐고 이 모임에 들어가면서 느꼈던 감정이었다. 나는 이 모임의 이름이나 성격도 모른채 단지 평상시 잘 아는 지인 성도의 간곡한 부탁을 그냥 한 번 들어주자는 예의상에 취한 걸음걸이었다. 대중을 대충 헤아려 보니 10여 명에 불과한 작은 무리였다. 들어서자마자 순서지에 나의 이름 석 자가 “축도”라는 순서에 적혀 있었다. 그 지인이 주최 측에 미리 말했던 모양이다. 축도면 축도일 뿐 하면 되는 거지 뭐. 그런데 20가지 기도제목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10계명을 국가, 민족발전의
크리스천 실존주의 철학자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의 글을 비롯해 칼 바르트(Bart), 에밀 브룬너(Brunner), 불트만(Bultmann), 내게 감명을 준 술라이엘마허(Schleiermacher), 리츨(Ritchl), 틸리히(Tillich), 람세이(Ramsay), 외에 칸트(Kant)와 헤겔(Hegel) 등 철학자도 있지만, 평생 가장 존경하고 기억되는 훌륭한 목회자요 위대한 신학자의 역작으로 별도의 사전 없이 해독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과 운명”(The Nature and Destiny of Man)은 라인홀드 니이버(Reinhold Niebuhr) 교수의 소위 옥스포드 강의로 불렸던 현대신학의 장서를 대학교 3학년 때 세미나 교재로 읽고 졸업 논문을 쓰게 된 동기가 있었다. 사람의 본성과 운명은 무엇이며 어떻게 설명하는가? 인간의 본성 곧 천성은 근본적으로 동물과 다른가?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인간성과 동물성을 함께 갖고 있는가? 인어처럼 몸은 물고기인데 얼굴만 사람인가? 몸은 야수인데 얼굴만 사람인가? 동양의 성선설과 성악설 중에 어느 것이 성경의 진리에 가까운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가 아니라면 원래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로
시골 농촌답게 연세 드신 분들이 많다. 더욱이 이곳 교회 주변 마을은 진도에서도 연령층이 가장 높은 수준에 해당한다. 그러니 한글을 모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개중에는 자존심으로 드러내 놓고 배움의 기회를 찾지 못하는 분들이 많지만 진도 인구 3만여 명 중에 2, 300 명이 넘는 분들이 한글을 배워 일 년에 한 번씩 백일장을 군에서 실시를 한다. 대부분 여성분들이다. 그래서 가끔은 남자 분들이 계시더라도 엄니들의 한글학교라고 부르게 됐다. 이곳에 내려와 전임목회자 사모님이 하시던 한글학교를 맡게 되어 첫인사를 하려고 하자 한 분의 엄니께서 “아구 우리는 여자한테 배워서 남자하고는 공부 못혀.” 그러자 덩달아 “그려 우리 못혀. 다음부터 안 나올 거구만.” 인사하러 왔다가 아예 끝날 판이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남자가 아니고 목사이고 선생이니까. 그리고 한 번 해보고 재미없으면 안 나오셔도 되고요.” 배짱을 부르듯 엄포를 놓자 마지못해 “그럼 한번 해보고 결정합시다.” 대답하셨다. 그렇게 시작되어 두세 달 정도 지났을 때 공부하시던 엄니들이 “아구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괜히 걱정했네요.” “우린 선생님 만나 넘 기쁘고 즐거워요.” 행복해 하신다. 그리
주일 아침 일찍 동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설교차 청주로 향하는 나의 가방 속에는 아내가 정성들여 싸준 아침식용품이 들어있다. 이른 새벽 떠나는 길이기에 집에서 조반을 들 수가 없어 아내가 늘 그렇게 아침을 챙겨준다. 고맙기 그지없다. 가방을 열고 아침식용품을 열어보니 떡조각, 과일조각 등이 있었고 플라스틱 물병엔 커피가 있었다. 떡조각을 꺼내 먹고 커피 한 모금을 넘기는 순간 이건 커피가 아니라고 확인했다. 원래 나는 집에서 모닝커피랑 손님대접 커피랑 내가 손수 커피콩을 갈아서 적당한 온수에 내려 먹는 커피 매니아요 또 약간은 전문가이다. 따라서 아내가 커피를 끊이는 일은 거의 없다 싶어 내가 끓여주는 커피의 소량을 아내가 즐기긴 한다. 그런데 오늘 아침 커피는 아내의 솜씨였다. 아내는 어제 밤에 인스턴트커피를 끊여서 식혀 두었다가 플라스틱 병에 넣어뒀는데 그것은 아침에 서둘지 말라고 잔뜩 편의를 본다는 심산으로 선심커피를 탄 것인데 그 인스턴트커피는 이미 오래 전에 어느 구석에 박혀 둔 것이었다. 나는 이미 그 사실을 어제 밤에 알고 있었다. 그건 커피가 아닌데! 밤새워 뒀다가 먹는 커피맛? 그건 커피가 아닌데, 그럼 왜 아내가 싸주는 커피를 마다하지 않고
“우리 아내는 이미 여기 없어요. 이미 하늘 아버지에게 갔고 몸만 이 땅에 남아있어요!” 최희준(Jones)선교사는 최희신 선교사 임종시(2014년 3월 18일) 자녀들에게 위로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지난 주일(4월 9일 오후) 그도 88세로 텍사스 주 댈러스에서 천국에 입성했다는 소식에 추모의 글을 싣는다. 일찍이 최희준 선교사는 미국 텍사스 주 남단 멕시코 연안의 겔베스톤(Gelvestone)이란 작은 섬에서 출생하고 자라나 6·25 전란 직전에 군인으로 대한민국에 와서 병역의무를 마치면서 한국의 연혼에 대한 깊은 관심과 소명으로 신학공부를 한 후 1957년 최희신 사모와 함께 한국 선교사로 나오셨다. 음대생 출신인 사모님은 오르간 반주로 진흥원 음악부와 서울교회 반주로 오랫동안 봉사했고, 최희준 선교사는 신학교 교수와 교회진흥원에 이어 교회개척과 성장 및 선교회장을 역임하면서 38년 동안 이 땅에서 봉사하시다가 1995년 은퇴하시고 본국으로 귀국하셨다. 1998년 한국침례교 선교 100주년 기념대회가 BWA 90대회 후 두 번째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7만여 침례교성도가 운집한 가운데 최희준, 최희신 선교사 부부는 “내 인생 여정 끝내어” 찬양으로 청중들의 심
나는 어릴 적에 왜 흑인들은 백인 앞에서 꼼짝도 못하는 노예 신세로 마치 가축 취급을 받아야 했는지 그리스인으로서 의아해했다. 한참 뒤에야 왜 그런지 이유를 알았을때는 너무 늦은 감마저 들었다. 여기서 신학적 설명은 잠시 보류하기로 한다. 그 이유는 지금도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흑인은 무기가 없었고 백인은 총검 무기를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현실적 이유다. 총검으로 무장한 백인은 전혀 무기가 없는 흑인의 저항엔 그냥 총질을 했던 것이었다. 백인은 살생무기를 지녔고 흑인은 그게 없었다. 흑인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노예로 살 수 밖에 없었다. 사람보다 몇 배 더 힘이 센 맹수는 또 포수에게 왜 꼼짝도 못한 채 사냥당하고 있는가? 그 대답도 간단하다. 맹수는 무기가 없고 포수는 사냥총을 지녔기 때문이다. 맹수는 겨우 이빨과 날카로운 발톱을 가졌으나 총알 앞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최근 슬픈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고 박정희 대통령 시해 사건 때 왜 차지철은 김재규란 사람에 의해 대통령도 서거당하고 자기도 죽게 됐던가? 그 이유도 간단하다. 그 때 김재규는 권총을 차고 있었고 차지철은 아무런 무기도 지니지 않고 식탁에 앉았던 것이다. 대통령을 보호해야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1:18) 예배당 지붕에 왜 더하기 막대기를 붙여놓았나? 아버지의 달램과 명령에 못 이겨 처음 교회당 또는 그 당시 말로 예배당, 예수당에 갔는데 이상한 생각이 들었고, 예배당 안에 들어가니 또 강대상 뒤에도 더하기 막대기를 다듬어 붙여놓았었다. 몇 년 전 절간에 갔을 때는 번쩍거리는 부처상과 차림이 엄숙했는데, 교회당은 초가집이 옆에 붙은 함석집에 자그만 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1951년 8월 3일이었다. 나중에 물었더니 더하기 막대기는 예수가 달려죽은 십자가를 말한다고 했다. 그제야 3년 전 만화책에서 본 예수가 가시를 머리에 쓰고 머리를 앞으로 넘어뜨리고 나무장대에 두 손에 발도 대못에 박혀 처참하게 죽는 모습이 다시 떠올랐다. 5학년 배석문 선생님은 야소교는 서양종교이니 교회당에 나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세상에 예수쟁이들은 나무장대에 매달려 죽은 예수가 그 무슨 큰 자랑이라도 되는지 십자가를 붙여놓았는가 생각했었고 어린 소견으로 불쌍하게 죽은 예수를 뭣 때문에 믿는단 말인가? 그 후 작은 모시게 동리에 갔더니 장로교회는 종각대 꼭대기에다 십자가를 붙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