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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교회진흥원 진흥원의 달 독서평 수상작
대공원교회 이준행 목사

이장렬 지음┃224쪽┃12000원┃요단┃ 

“네가 예수를 사랑하느냐?” 만일 사단이 베드로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면 사랑에 실패한 배신자, 죄책감과 수치심으로 얼룩진 베드로의 인생을 갈기갈기 찢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예수께서 던지신 질문이기에 썩어가는 환부를 도려내는 메스로 다가왔다. 사랑하지 않았으면 미련 없이 포기하고 멀리멀리 도망갔을 것이다.


사랑해왔고, 여전히 그 사랑을 포기할 수 없기에 이렇게 아프다. 내적 진통을 겪지 않고 참 생명이 태어날 수 없듯이 저자는 참 목자가 태어나기 위한 내적 진통으로 이 질문을 제시한다. ‘회복을 목적으로 찾아오신 예수님의 메시지’를 21회의 치유의 묵상으로 풀어가며 주님이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하려는 저자의 의도가 분명하게 드러나는 질문이다.


치유로 접근하시는 예수님은 떡과 생선으로 사랑과 연합의 식탁을 준비하신 요리사이다. 어찌 잊을 수 잊겠는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유월절 만찬에서 떡과 잔을 나눠주시던 손길을… 자신의 몸과 피로 사랑을 약속하신 주님의 만찬의 나눔처럼, 밤새 지친 제자들에게 한 끼 밥을 차려주는 섬김과 교제로 깨어진 관계를 회복시켜 가신다. 함께 교제하면서 공동체의 중심에 계신 예수에게 시선을 모으는 것이 목적이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 질문으로 자신의 실패를 직면하게 하고, 여전히 변함없는 사랑의 관계를 확인시켜 줌으로 결코 깨어질 수도 없고, 중단될 수도 없는 목양의 터전으로 우리를 이끄신다.
넘어진 자에게 손가락질 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에게 다가가 손을 붙잡고 일으켜 함께 가기는 어렵다. 자신의 실패를 있는 그대로 직면하는 고통의 한 복판에서 주님의 손에 이끌림을 받아본 사람이라면 그 어려운 목양의 길을 기꺼이 갈 수 있을 것이다.



목양이 목자로서 무겁게 짊어질 책임이라기보다는 특별하게 주신 은혜요 축복의 길임을 경험했기에, 나의 실패와 연약함조차 다 아시는 주님의 사랑이 목양의 터전을 붙들고 계시는 한 노래 부르며 갈 수 있는 길이 목양의 길이다. 저자는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을 통해 제자의 길을 방해하는 위험요소가 비교의식의 늪에 빠지는 것임을 지적한다.


사역의 비교보다는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제자의 본질이다. 아울러 요한복음의 저자가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로 언급함으로 자신의 정체성이 주님과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에서 우러나오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고 어떻게 주님의 양을 먹일 수 있을까? 목양의 사역이 어디 실력에서 나오는 것인가? 주님을 내 생명보다 더 사랑하면 그 사랑이 목양의 원동력이며, 나와 친밀한 사랑의 관계 속에서 동행하시는 주님이 친히 양들을 먹이실 것이다. 오직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 두고,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함으로 실패한 자들을 일으켜 세우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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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