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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복음전도 최고의 도구

인문학을 하나님께┃한재욱 지음┃304쪽┃15000원┃규장


한재욱 목사는 매일 아침 2만 2000여 명에게 이메일로 우리에게 익숙한 시, 소설, 영화 이야기들을 성경의 진리와 함께 들려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극동방송 간판 프로그램인 ‘좋은 아침입니다 : 인문학을 하나님께’와 국민일보 ‘겨자씨칼럼’ CTS ‘새벽의 종소리’ 등을 통해서도 인문학을 이용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인문학을 하나님께’는 한 목사가 신학교에서 강의했던 강의안과 극동방송에서 방송했던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반응은 매우 뜨겁다. 1쇄 물량이 서점에 풀리기도 전에 온라인에서 완판 돼 2쇄가 들어갔다.
시대의 지성 이어령 교수와 한국교회의 큰어른인 김장환 목사가 친히 추천사를 풀어냈고, 한국일보와 서울경제 등 국내 주요언론에서 “인문학의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전파하는 목사”라는 소개로 책에 대한 기사가 보도됐다.


한 목사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과 사역은 오랜 세월동안 축적된 결과다.
학창시절 문학에 뜻을 뒀던 한 목사는 집안 사정으로 인해 그 꿈을 잠시 접었지만 신춘문예에 도전하고 문학과 철학을 복수전공하며 문학에 대한 애정의 끈을 놓지 않았다. 계속된 인문학에 대한 탐구 중에 그는 인문학이 굉장히 매력적이지만 철저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인문학은 인간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생의 해답, 구원의 길은 오직 주님의 말씀 뿐이라는 사실을 느낀 것이다.


한 목사는 ‘인문학은 땅의 신음’이라 말한다. 인문학은 인간과 만물의 본질을 찾으려는 근원적 욕구다. 하지만 인문학은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그 본질에 다다를 수 없다. 오직 본질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인문학을 무시해야 할까? 한 목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인문학이야말로 복음전도의 최고의 도구라는 것이다.


인문학의 장점은 바로 공감으로 이를 통해 믿지 않는 불신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인생의 본질에 도달할 수 있는 성경으로 해답을 제공하면 굉장히 효율적인 전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목사는 기독교 역사에서 이름난 초대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가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조차도 인문학의 대가였다고 말한다.


그는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언어는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지 않고 권세 있는 자와 같더라고 했다. 이는 두 가지 이유로 그 말의 뿌리가 하늘에 닿았다는 것과 언어의 방법이 인문학적인 땅의 언어를 썼다는 점이다. 즉 예수님의 모든 비유와 언어는 민중들이 이해하기 쉬운 인문학적 언어라는 것”이라며 “인문학을 잘 활용하면 최고의 복음전도 방법론이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목사는 “인문학과 신학은 서로 다르기에 싸울 것이 아니라 복음전도의 최고의 도구라는 점을 인식하고 인문학의 주인이 하나님임을 선포하는 것이 인문학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라고 강조했다.


범영수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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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