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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사이비 종교집단(1)

-사회지도층은 교단(敎團)과 사이비 종교집단을 분명히 구분해야-


도한호 전 총장
침신대 특임교수

한국교회는 1973년과 이듬해에 연달아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와 고 김준곤 목사가 이끌던 ‘한국대학생선교회’ 주축으로 열린 ‘엑스 플로 74’를 통해서 전국적인 부흥 운동이 일어나서 1970년대 말까지 개신교회 신자 수가 통계상으로 850만 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와 같은 폭발적인 교회 성장에 편승해서 “교회”라는 이름을 임의로 사용해서 신자들을 유혹하고 세력을 확장해서 교회를 위협하고 사회를 어지럽힌 이단 사이비 집단들 또한 적지 않게 나타났다.


사이비 종파들은 교회를 빙자해서 세력을 키워나갔기 때문에 그들이 저지른 온갖 반사회적 행위는 교회가 고스란히 떠안고 사회로부터 비난받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알다시피, 지난해 연말에 중국 우한(武漢)에서 발생한 코로나바이러스(COVID-19, 코로나19)가 신천지 집단의 한국인 추종자를 통해 한국에 전파되어 대구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창궐했다.


이 사태는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위험하고 불행한 일이었지만 이것을 통해 우리 사회가 이단(異端) 사이비(似而非) 종교 집단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 하겠다. 온 세계가 사교(邪敎) 집단을 배격하는 것은 그들이 국가 경제, 가정, 도덕률과 가치관 등 사회의 기본질서를 깨뜨리고 사회를 혼란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종교단체 안팎에는 교리를 바로 알고 실천하는 정통 교단이 있는가 하면, 특정 종교의 이름을 도용해서 변종 집단을 만들어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이비 종교집단도 있게 마련이다. 1950년대부터 나라 안에 나타난 대표적 사이비 종교집단은 다음과 같다.


  한국의 주요 이단 사이비 종파
개신교단의 장로 출신인 박태선은 1956년에 ‘전도관’으로 불린 ‘한국 천부교전도관 부흥협회’라는 이름의 사이비 기독교단체를 세우고 ‘신앙촌’ 공동체를 만들었다. 박태선은 조직의 세력이 확장되자 전형적인 이단의 길로 들어서서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 즉 천부(天父)라고 하고, 성경은 거짓된 책이며, 예수는 사탄의 자식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도관은 한 세대 가까이 교회와 한국 사회를 어지럽히다가 교주 박태선이 병사한 후에 지하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전도관의 영향력은 교주의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어서 ‘구원파’와 ‘신천지’에 영향을 끼쳤다.
‘구원파(救援波)’는 권신찬과 유병언 일가에 의해 1962년 대구에서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종파로서 구원 교리에 초점을 맞춰서 포교했으므로 구원파라고 불리게 된 것 같다.


유병언은 종파의 명칭에 “침례교”를 사용했으나 실제로 구원파와 침례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구원파 역시 전도관의 신앙촌 간은 공동체를 인천 등지에 만들고 각종 영리 목적 사업을 일으켜 부를 축적하고 세력을 확장했다. 구원파의 한 지류인 박순자(파)는 1987년에 추종자 32명과 함께 집단 자살을 감행한 소위 “오대양 집단자살사건”을 일으켜서 우리 사회를 경악하게 했다.


구원파의 2대 교주 유병언은 2014년 4월에 자기 소유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사고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을 포함해서 304명의 승객이 익사한 우리 시대 최악의 사고의 중심에 선 뒤 지명수배를 받고 도주하던 중에 주검으로 발견됐다. ‘구원파’는 집단 자살 사건과 세월호 사건 등으로 사이비 종교집단의 폐해와 위험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교주의 사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숨어들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