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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씨름하자는 손자가 예뻤다

하늘붓 가는대로 –171

그 할아버지는 여러 명의 손자들을 두고 있었 다. 옛날 한 마을에 옹기종기 살 때의 형제자매들이 모여 사는 고로 자연히 그 할아버지 밑에 손에 닿는 손자들이 많이 있었다. 그 많은 손자들 중에 유난히 할아버지가 좋아하는 손자가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찾아와서 할아버지와 씨름을 하자고 조르는 여섯 살 박이 둘째 아들의 셋째 아이였다. 마루에서 할아버지와 손자 놈은 한판 씨름이 벌어졌다. 할아버지가 이길 경우, 손자 놈은 아주 절망적인 기분으로 되돌아갔다가 내일을 기약하자는 식이다. 그런데 이 조손(祖孫) 사이의 씨름의 승자는 거의 손자였다. 10번 씨름하면 한 두 번은 할아버지가 승자이고 나머지는 손자가 승자이다.

 

승리한 손자는 기고만장하다 힘센 할아버지로부터 자기의 씨름 솜씨를 인증받기 때문에 여러 손자 놈들 사이에서도 당당히 기가 살아있다. “내가 할아버지를 이겼다그러나 사실은 할아버지가 져 준 것이었다. 손자는 할아버지의 깊은 뜻을 알 턱이 없다. 그것을 알기엔 아직 너무 어리다.

나는 이런 광경을 보노라면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한 장면이 생각난다(32:13~32).

 

에서 형을 속이고 외삼촌 집으로 가서 두 아내를 취해 자수성가한 동생 야곱이 금의환향하긴 하는데 형이 무서운지라 온갖 예물을 준비했었다 (32:13~15). 에서를 만나는 작전도 치밀하게 세워서 그를 만나는 과정을 짜기도 했다(32:16~23). 아무래도 하나님이 개입하셔야 했기에 어떤 사람 -그가 곧 하나님이었다 - 이 홀로 남은 야곱에게 왔고 야곱은 이 사람을 잡아야 한다고 막무가내로 씨름을 했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 하겠나이다”(32:24~26) 마침내 야곱이 이 사람 곧 하나님을 싸워 이겼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32:28) 하나님이 져 주신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과 결판해서 인생 문제를 해결 하려는 야곱이 예쁘셨다. 선물과 작전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더 우선적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이 사람과 단판을 낸 것이었다. 결국 야곱이란 인명이 이스라엘이 되고 싸웠던 지명이 브니엘이 되었으니 인명지명(人名地名)의 변화를 초래케 했다.

독자적으로 살겠다니, 내 힘으로 사겠다니, 내 작전으로 살겠다니,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힘으로 살겠다는 야곱의 정신이 예쁘게 보였던 것이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맞붙어서 인생을 살려 하는 자로 예뻐하신다. 하나님과 무관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관계하며 살라는 것이 신앙이다. “할아버지는 그 많은 손자들 중에 씨름 하자고 찾아오는 손자를 한없이 예뻐하셨다.”

권혁봉 목사 / 한우리교회 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