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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니들의 졸업식

백동편지-51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태어나 평생 자녀들 뒷바라지로 살았습니다. 학교 문턱엔 가보지도 못하고 밤낮없이 밭에서, 논에서 해질 때까지 일하면서 80년 넘는 세월을 살며, 저에게는 밭이 학교였고, 호미자루가 연필이었답니다. 그런데 진도군에서 문해학교가 생겨 용기를 내어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막상 공부를 시작해보니 멋진 책상과 의자가 있는 교실이 좋았고, 내 책, 연필, 공책, 필통으로 부자가 된 것 같았습니다. 공부가 재밌기도 했지만 머리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나가는 게 더 많아 속상하기도 하고 열심히 가르치는 선생님께 미안하기도 했습니다.”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치며 시작한 것이 벌써 3년이 되어 떳떳한 교육부 인정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는 날, 졸업생 대표로 낭독한 한 엄니 학생의 글이다. 기억하는 것보다 잊어 버리기가 쉬운 연세에 있는 분들이 학창시절에 못한 공부를 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러나 늦게라도 배울 수 있다는 즐거움으로 장날 장에 갔다 시간을 맞춰 달려오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하다. 병원에도, 무슨 일이 있어도 공부하는 날에는 빠질 수 없다며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공부하는 것보다 함께 어울려 이야기하고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받아쓰기 안하고, 한글 한자라도 안 쓰고 가면 공부 안 한 것이라고 떼를 쓰기도 하신다. 그래도 초등학교 과정에 맞춰 국어뿐만 아니라 수학, 사회, 과학, 음악에 영어까지 따라 하는 엄니들의 모습이 너무 대견하시 다. “선생님, 팔십쌀 머근 노인덜한테 고생하셔습니다. 선생님 감사함니다. 언제나 이의해 몬니깨 씁니다.”

 

어느 졸업식을 마치고 엄니 학생께서 옆에 있는 선생님께 드린 쪽지다. 비록 졸업장을 받아 들어도 남은 것보다 지워진 것이 더 많으신 분들이지만, 감격의 마음이 느껴진다.

공부할 분들임에도 주위 눈치 보느라 함께 하지 못하고, 더욱이 공부하려는 사람까지 방해하는 분들도 있는데, 묵묵히 따라와 주신 분들이 고맙다.

글을 배운 적 없으셨던 어머니께서 기도하시며 예수님을 만나 성경책을 읽으시고, 찬송가를 손가락 집어가며 부르시던 모습을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 늦깎이 학생들과 벌써 3년이 흘러 문교부 초등학교 인정 졸업장을 받게 됐으니 엄니들 뿐만이 아니라 함께 한 강사들도 감격이 크다.

 

이제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고 중등과정에 입학을 해 어엿한 중학생이 된다. 코로나19로 인해 공부하지 못하니 언제부터 모이냐고 성화다. 2월에 예정했던 졸업식이 3월 말에서야 하게 되니 걱정이 안 되었을 리 없다. “이러다 졸업식 못하는 것 아녀.” “아예 졸업장도 안줄 모양이여.” 졸업을 왜 하냐고 하던 분들이 막상 졸업식이 미루어지니 조바심이 나신 것이다.

 

졸업장을 받으면 뭐 혀, 마음껏 책도 못 읽고, 영어도 모르는디.” 투정하는 분들께, “졸업했다고 다 잘 하면 중학교는 왜 가요? 그래서 중학생이 되어야지요.”

 

초등학교 졸업장을 받아 들고 이제 그렇게도 그리던 중학생이 된다는 마음을 누가 훔쳐갈까 말도 못하며 내가 어떻게 중학교에 가?”하시며 한 단계 올라섰음에 수줍어하면서도 좋아하는 엄니 학생들이 예쁘다. 주님, 허물투성이인 죄인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한 단계, 한 단계 다음에 가시는 성령님의 은혜에 감사할 수 밖에 없다.

 

김태용 목사

백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