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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회의 뿌리를 찾아가는 침례교 성지순례

조용호 목사
칠산교회

 

필자는 우리 교단의 뿌리와 같은 칠산교회를 섬기고 있다. 126년의 역사 속에 많은 보석과 같은 이야기들이 있으며 교회 내부에 역사 전시관을 마련해 침례교회의 초기 모습을 관람하고자 하는 이들이 교회를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서울의 모교회에서는 새신자 성경공부하면서 마지막 시간에 침례교회의 뿌리를 찾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칠산교회를 방문하는 이들을 위해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에서 교회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강경 기독교 역사 순례 탐방 코스가 만들어졌고 충남 논산시 강경역사문화원에서 기독교 성지를 안내한 전문 사역자 훈련(도슨트 훈련)이 있어 교육을 받고 지금은 도슨트 자격증을 가지고 안내하고 있다.
올해 여름 휴가나 교회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지방회나 교회가 있다면 우리 침례교회의 역사를 찾아 탐방하는 계획을 세우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도슨트 자격증으로 많은 분들과 함께 하면서 의외로 침례교회에 대해 잘 모르는 일들이 많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된다. 침례교회의 확실한 신앙을 현장에 직접 찾아와서 역사 속에 순교의 신앙으로 믿음을 지켰던 현장들을 보고 들으면서 침례교회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마음에 새겼으면 하는 마음이다.

 


한 사람의 헌신으로 시작된 침례교의 신앙
신발 제조 회사를 운영하며 부유했던 사무엘 씽(samuel B thing)에게는 외동딸인 엘라(Ella)가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병약함으로 인해 얼마 살수 없음을 알고 아버지에게 자신의 상속금을 가지고 외국에 아직 복음이 전파 되지 않은 곳에 복음을 전하는데 사용해 달라고 아버지에게 요청한다. 씽 안수 집사는 담임목사인 고든 목사님과 상의를 했고 이를 받아들여 교회에 딸 이름을 넣어 엘라 씽 기념 선교회가 세워지게 됐다. 엘라 씽 선교회에서선교 훈련을 받은 폴링과 가데린 그리고 그 이듬해 스텐드만을 조선으로 파송했다. 외동딸의 죽음으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복음의 씨앗으로 우리 한국 땅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거두게 하셨다. 


첫 번째 열매 강경 지병석을 통해 세워진 강경교회
지병석 씨는 강경에서 인천으로 배를 타고 오가며 포목장사를 하던 사람이었다. 그는 폴링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했다. 지병석은 폴링선교사 일행을 강경으로 모시고 와서 자신의 집이 옥녀봉에 있었는데 이곳을 선교사에게 주고 자신은 옥녀봉 아래로 내려가서 살게 된다. 이곳에서 1896년 2월 9일 첫 예배를 드림으로 우리나라 최초 침례교회가 세워졌다. 이후 이 집은 폴링과 스텐드만, 펜윅까지 약 40여년 동안 사택으로 사용했다. 펜윅 선교사 후임으로 2대 감목이 된 이종덕 목사님의 순종의 신앙 순교의 이야기는 많은 감동을 준다. 옥녀봉을 올라 저 멀리 갈대밭에 세워진 이종덕 목사의 순교비를 바라보며 나의 사명을 뒤 돌아다본다. 

 


오긍선을 통해 꽃핀 교육의 산실 공주교회(현 꿈의교회)
엘라씽 기념 선교회를 통해 파송된 선교사님들은 금강을 따라 배를 타고 공주까지 이르러 공주교회(1896년 5월)를 세우고 공주교회에 최초로 성경학원을 세운다. 이 성경학교가 세워지게 된 배경에는 스텐드만 선교사 집에 독립운동가였던 오긍선씨가 일본 경찰의 체포령으로 스테드만 선교사 집으로 피신하게 됐고 스테드만 선교사에게 한글을 가르치게 된다. 오지 선교를 위해 기도하던 스텐드만에게 오긍선 씨는 자기의 고향 공주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로 하고 오긍선 씨는 변장을 하고 스텐드만과 함께 공주(공주교회)에 내려와 한글을 가르치며 선교의 일을 도왔다.


이후 이 위에 공주 성경학원이 세워지게 됐으며 원장이었던 신명균 목사를 중심으로 당시 학생은 장석천. 이종덕. 황태봉. 고문중이 이었고 후에는 30여 명의 학생들이 성경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지도자로 세워지게 됐다. 이 성경학원은 현재 한국침례신학대학교로 모태가 되면서 한국 침례교회의 지도자를 양성하는 선지동산이 됐다.       

 


순교의 꽃이 된 칠산교회 장석천 목사 
폴링 선교사님께서 배를 타고 강경에서 출발해 계속 복음을 전한다. 폴링선교사는 칠산 포구에 내려 복음을 전하게 됐고 장교환. 홍봉춘. 김치화. 고내수. 김도정. 최준명 등이 금강에서 침례를 받고 이들을 중심으로 이 지역에 복음이 전파되게 된다. 그 중 장기영 씨는 양반이었고 지주였으나 그에게 외동아들이 있었는데 질병으로 백방으로 치료를 해봤으나 치료가 되지 않았다. 


당시 칠산교회를 담임하던 신명균 목사님의 안수기도를 받고 질병이 깨끗하게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장기영 씨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고마워 배를 구입해 교회에 헌물로 드렸다. 그 배는 폴링 스텐드만, 펜윅 선교사님이 칠산교회 전도인들과 함께 금강을 따라 23개의 학습반을 운영하게 됐다. 그 아들 장석천을 하나님께 헌신하기 위해 공주 성경학원에 제1회 학생으로 입학해 공부하고 목사가 되어 한국 기독교 100만명 구령운동에 부흥강사로 쓰임을 받게 됐다. 1942년 신사참배를 거부함으로 32명이 체포될 때 장석천 목사는 칠산교회 담임목회를 하던 중 원산형무소에 끌려가서 고문을 받고 1년 뒤에 9명이 함흥형무소로 이관이 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교단은 1944년 5월 10일 함흥재판소에서 정식으로 교단 폐쇄령이 내려졌다. 해방후 교단을 재건하기 위한 회의가 칠산교회에서 열리게 됐고 이어서 교단 재건 임시 총회가 칠산교회에서 열렸다. 장석천 목사는 2년 동안 모진 고문과 혹독한 옥고를 치루면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했으며 고문 후유증으로 순교했다.


우리 침례교회는 한 사람의 헌신, 한 사람의 희생으로 시작된 미약하지만 복음적인 교단이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그 한 사람의 하나의 밀알이 우리 대한민국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셨다. 그 열매는 오늘 우리에게 큰 축복이 됐다. 133개의 지방회. 3548의 교회. 80만 명의성도로 성장했고 파송 선교사는 64개국에 760여명을 파송하는 놀라운 축복을 하나님께서 이뤄주셨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 한 사람 바턴을 이어 받을 사람을 하나님은 찾으신다. 그 한사람을 통하여 이 땅에 침례교회의 계절이 와서 아름다운 꽃을 활짝 피우시기를 기대해 본다.

 



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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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침례교회로 세워지길”
기독교한국침례회 115차 정기총회가 9월 22일 전주새소망교회(박종철 목사)에서 “일어나 함께 가자”란 주제로 1581명의 대의원이 등록한 가운데 개회했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개회예배는 총회 전도부장 이황규 목사(주우리)의 사회로 호남제주침례교연합회 회장 장길현 목사(성광)가 대표로 기도하고 총회 교육부장 김성렬 목사(만남의)의 성경봉독, 새소망교회 청년들의 특송(소프라노 이주영, 플롯 이용희, 피아노 안인경)이 있은 뒤, 우리교단 74대 총회장을 역임한 박종철 목사(새소망)가 “생명의 말씀을 전하라”(빌 2:14~18)란 제목으로 설교했다. 박종철 목사는 설교를 통해, “우리의 복음 사역을 통해 많은 생명들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망하며 거룩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야 할 때”라며 “침례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이 헌신하고 희생하며 오직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매진하며 하나님 앞에 죽도록 충성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이어 우리교단 77대 총회장을 역임한 고명진 목사의 축도로 개회예배를 마쳤다. 2부 환영 및 축하는 총회 총무 김일엽 목사의 사회로 이욥 총회장(대전은포)이 환영사를, 미남침례회 한인교회 이태경 총회장과 문화체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