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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의 유언 (왕상2:1~4)

이희우 목사의 사무엘서 여행-48

본문은 죽임이 임박한 다윗이 아들 솔로몬을 불러 남긴 유언이다(1). 신구약 성경에서 이름이 제일 많이 나오는 다윗, 성경에 860번이나 기록되고, 예수님도 다윗의 자손으로 세상에 오셨다고 했는데 위대한 정치가이자 군인이며 왕인 다윗, 음악가요 시인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하여 평생을 노력한 믿음의 사람, 하나님마저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했던 독보적 존재이지만 그 다윗도 피해갈 수 없는 게 있었다. 죽음이다.


그 엄숙한 순간에 다윗이 남긴 유언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아들 솔로몬에게 주는 인생 교훈이다. 다윗과 솔로몬, 이만한 부자(父子)가 또 있을까? 다윗은 신앙 좋은 왕 중 왕이었고, 솔로몬은 가장 지혜로운 왕이다. 그런데 솔로몬이 아무리 똑똑해도 유언을 잘 들어야 한다. 왜? 아버지는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원래 아버지들은 젊은 세대에게는 없는 경험이 있다. ‘미지의 세계’라 불리는 대지 위를 걸어 그 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분들 아닌가. 


솔로몬은 아버지 덕에 쉽게 왕이 되지만, 다윗은 양치는 목동에서 왕이 된 입지전적 인물, 전쟁의 피비린내를 안다. 골리앗을 쓰러뜨리며 승리를 맛본 사람, 적에게 쫓기면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살았다. 그래서 평화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자신의 승리가 어디서 왔는지도 잘 안다. 하지만 솔로몬은 모른다. 당시 20세가 안 되는 어리고 경험도 미천한 아들, 이제 아버지 덕에 막 왕이 됐을 뿐이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배워야 했다. 더구나 임종의 순간,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으로 가르치는 순간이다. 평생 가르친 것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농도 짙은 엑기스같은 가르침을 주는 순간이다.


그런데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으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그 결과 그의 슬픈 이야기가 열왕기상 11장에 나온다. 솔로몬 말년에 나라가 약해지고, 곳곳에 적이 나타난다. 그러다 그가 죽은 후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될 무렵 왕국은 두 동강이 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 때문이다. 
유언의 나머지 부분은 사람들에게 대한 평가다. 다윗의 유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며 제대로 살 뿐만 아니라 훗날 멋진 유언을 남기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한다. 


힘써 신앙의 대장부가 되라
먼저 대장부가 되라고 했다(2). 아들 솔로몬이 위축되지 않고 가슴을 펴고 살길 원한 것이다. 사소한 일에 실망하거나 실패 앞에 좌절하지 않고, 당당하고 대범하게 살기를 원했을 뿐만 아니라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고, 적은 이익에 동요되지 않으며, 손해를 볼지라도 대의에 따라 살기를 원했다. 


이것은 경험에서 나온 유언이다. 일개 목동이었지만 단 한 번도 비굴한 적이 없었던 다윗, 꾸중하는 형 앞에서도 옳은 일을 포기하지 않고, 골리앗 앞에서도 당당했었다. 언제나 옳은 길을 따라 살려고 애썼고, 사울을 죽일 기회가 왔을 때도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을 죽이는 비굴한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대장부의 모습이다. 


물론 다윗이 늘 대장부처럼 산 것은 아니다. 나발이란 사람으로부터 모욕을 당할 때는 참지 못하고 나발의 가문을 멸망시키려고 분노한 적도 있었다. 나발의 아내 아비가엘이 아니었다면 큰 죄를 지을 뻔했던 것은 대장부는커녕 속이 좁은 데서 나온 처신, 그래서 이런 경험을 토대로 대장부가 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3~4) 이것 역시 다윗의 경험이다. 아무것도 없이 양치는 지팡이와 물맷돌로 출발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하나님이 계셨다. 하나님이 그의 최고의 재산이고 무기였다. 그는 매사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영광을 주셨다. 그는 이제 그 사실을 아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아들 솔로몬은 이것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많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했다. 하나님은 그들과 통혼하지 말라고 하셨지만 솔로몬은 그들을 사랑했다(왕상 11:2). 후궁 700명과 첩 300명을 얻는다. 그 결과가 열왕기상 11장 4절 이하에 나온다.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승리가 있다. 그래서 ‘지키라’ ‘행하라’라는 단어가 키워드로 등장하고, “그리하면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고 했다. 내 마음대로 된다는 말은 아니다. 소원하는 것마다 척척 다 이루어진다는 말도 아니다. ‘형통’이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물론 나의 뜻은 무시되고 하나님의 뜻만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 대한 유언
5절에서 요압의 악행을 말한 다윗은 그로 “평안히 스올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고 한다. 오랜 숙적 시므이에게도 자비를 베풀어 줬지만 그의 저주를 잊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의 백발이 피 가운데 스올에 내려가게 하라”(9)고 유언한다. 처형하라는 거다. 보통 사람이 죽을 때쯤 되면 원수도 용서하고 화해하기 마련인데 다윗은 그렇지 않다. 맺힌 게 많았던 것은 이해하지만 좀 무섭다. 유진 피터슨(Eugene H. Peterson)은 그의 유언을 “야비하고 무자비하다”고 했다. 성질내고 싶었지만 꾹 참고 살았던 모양이다. 요압은 통일왕국 형성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시므이는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사람, 성질대로라면 진작 처리해야 했지만 왕국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참았던 것이다. 죽어가는 마당에 화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윗이나, 죽어가는 순간에도 저주를 받는 사람이나 모두 다 불행이다.


반면에 바르실래는 두고두고 고마운 사람이었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피난 갔던 그 힘든 시절, 여름날의 시원한 냉수 한 사발처럼 자신을 대접했던 그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7). 죽는 순간에 누군가에게 고마운 사람이라면 그 인생은 잘 산 인생인데 바르실래가 그랬다.


12절 이하를 보면 솔로몬은 왕위에 올라 다윗의 유언대로 아버지의 저주를 행한다. 형 아도니야를 아버지 후궁 아비삭을 탐했다는 죄목으로 죽인다. 제사장 아비아달은 아나돗 시골로 보낸다. 요압은 제단 뿔을 잡았음에도 불구하고 무고한 피를 흘렸던 죄값을 받아야 한다며 쳐 죽인다. 시므이는 예루살렘 안에만 머물도록 금족령을 내리고 이를 어겼다는 핑계로 죽인다. 이 모든 복수를 행한 후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46)고 했다.


다윗의 유언을 기초로 정리한 것이지만 이게 정의인가? 아니다. 정치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적제거 과정일 뿐이다. ‘쿠데타 음모’, ‘여호와의 맹세를 어겼다’고 하지만 다 핑계거리다. 승자가 패자에게 덮어씌운 죄목들이다. 


그런데 그 후 나라가 안정화됐나? 다윗도 이들만 제거되면 나라가 안정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유훈으로 남겼을 것이다. 솔로몬 또한 이런 정적들을 제거해야 자기 왕권을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속이 시원하고 안정적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견제세력이 없어지면서 솔로몬은 독재의 길을 간다. 또 나중에 정권의 무능력이 드러나면 새로운 교체세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 싹들을 잘라버린 것이 오히려 아들 르호보암 때 나라가 두 동강 나는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 외의 열 지파가 떨어져 나가 북왕국을 만든 것, 그 중요한 이유가 솔로몬의 강압정책 때문이었다.


유언이 좀 부드러웠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었다. 적이나 반대자는 불편해도 동거하는 게 옳다. 
그들을 주력이 되도록 할 이유는 없지만 관리하고 통제하는 선에서 두면 되는 것 아닌가?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취한 정책이 그래도 잘했던 것 같다. 완전 제거가 아니라 시골로 보낸 정도이니까. 이 아나돗 출신 중에 유명한 선지자가 바로 예레미야다. 제거는 손쉽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좋지 않은 선택이다.


한쪽의 일방적 우세가 아니라 적당한 공존이 바람직하다.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서 게임이론을 이용해서 매파와 비둘기파 간의 안정적 비율을 계산했다. 두 종류만 있다면 무조건 싸우려는 매파가 유리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그러다 망한다. 비둘기파만 있으면 느리고 유사시에 위험하다. 안정된 비율은 매파 대 비둘기파가 7:5일 때, 요는 한쪽이 일방적으로만 존재하면 불리하다는 점이다. 함께 공존해야 한다. 자연계는 대부분 종형 형태의 분포를 이룬다. 가운데 많은 수의 주류가 있고 양쪽 끝에 소수의 극단이 있다. 이것이 가장 안정된 상태다.


다윗은 그 관리를 잘했다. 하지만 솔로몬은 한쪽을 완전히 제거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열왕기는 다윗의 길이 아니라 솔로몬의 길을 가면서 실패한 역사다. 그래서 저주를 부탁한 다윗의 유훈은 좋지 않은 사례였다.
물론 하나님이 다윗 왕조를 일방적으로 축복하셨지만 그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값없이 은혜를 받았더라도 그 은혜에 머물기 위해서는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인생의 이 싸움에서 대장부답게 승리하며 나가야 한다. 
<끝>

 

※ 그동안 사무엘서 여행을 함께 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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