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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 없다면 미래도 없다

시대를 읽는 지혜-6
임원주 목사
진리교회 협동

필자가 학부과정에서 내가 제일 마음에 들어했고, 평생 추구해야할 모델 신학자는 헨리 디이슨(Henry C. Thiessen, 1883~1947)이었다. 조직신학 수업 도중에 존 웨슬리의 신학은 칼빈주의와 아르미니우스주의, 그 중간 어디쯤이라고 들었는데, 어쩌다가 이러한 중도노선을 추구하는 신뢰할만한 신학자로 ‘헨리 디이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다. 당시 교수가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했는지 모르지만 ‘헨리 디이슨’의 신학노선은 바로 침례교 신학노선이라는 말을 들었다. 당장 원서를 구입해 읽기 시작했고 침례교회가 대단히 보수적이며 대단히 건전한 신학을 견지한다고 믿게 됐다.


학부를 졸업하고도 몇 년의 시간이 지난 뒤에, 신학교 M.Div. 과정에 진학할 때에는, 신학에 대한 나의 생각에 많은 변화가 있었기는 하지만, ‘헨리 디이슨’ 혹은 그 사상적 계보를 잇는 신학을 제대로 접하게 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물론, 1947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인이었기에 시대적 한계로 인해, 신학에 몇 가지 치명적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매우 건전한 조직신학을 제대로 배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만큼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대전에 내려와보니 침신대는 멀린스(E. Y. Mullins, 1860~1928)의 조직신학을 배우고 있었다. 멀린스의 저술을 직접 살펴보기 전까지는, 멀리스와 디이슨은 유사한 신학노선일 것으로 지레 짐작만 했다. 물론 디이슨의 세대주의적 종말론은 문제다. 하지만 20세기의 마지막 10년의 기간에 접어들어서야 국내 신학계에서 세대주의 전천년설이 쇠퇴하기 시작했고 ‘무천년설’이 구체적으로 소개되기 시작됐으니, 당시로서는 디이슨의 조직신학이 큰 문제는 아니었고, 오히려 좋은 시점이었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멀린스는 표면적으로는 중도주의를 표방한다. 하지만 멀린스의 신학은 ‘감성’을 신학의 원리로 삼는 신학으로서, 주관주의적 접근방법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세속적인 ‘철학’과 정통적인 ‘신학’의 경계가 무너지고, ‘교리’를 배제하게 된다. 그리고 그 당위성을 ‘오직 성경’이라는 표어의 반쪽 측면에서 찾게 된다.
그런데 필자가 볼 때 당시에 진짜 문제는 ‘멀린스’ 조직신학을 추구하는 데에 있다기보다는 ‘멀린스 신학’만을 가르치고 배우면서도 ‘침례교회에는 신학이 없다’는 생각하는 기이한 풍토였다는 점에 있다. 침례교회는 조직신학보다는 실천신학에 역점을 둔다고 말을 돌리지만 조직신학이 탁월하지 못하면 실천신학도 변변치 못한 법이다. ‘조직신학이 없다’면 실천신학은 있으나마나 한 것이 되고 결국, 방향성을 상실하고 무분별해지고 혼란에 빠질 뿐이다. 이단의 침투를 막지 못하고, 이단에 대처할 능력이 없어지기 마련이다. 철학이 없다고 공언하는 철학자는 철학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올해 3월에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제15대 총장으로 선출된 피영민 목사가 1991년 3월자로 역사신학 조교수로 취임해 2002년 8월 무렵에 강남중앙침례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자리를 옮길 때까지 침신대에서 ‘교회사’를 교수함으로써, 비로소 한국침신대는 교수다운 교수를 보유하게 됐다. 비록 교회사 강의를 통해서지만, 침례교회의 신학적 정체성이 ‘잉글랜드 특수침례교회’의 ‘복음전도적 칼빈주의’에 있음을 역사적 근거와 함께 확실히 하게 정립하기 시작한 것이다.피영민 교수가 박사학위를 마치면서 갓 취임해 시작한 첫 강의에서부터, 침례교의 역사는 잉글랜드라는 지역과 청교도 칼빈주의에서 시작했다는 주장은, 학교 안팎에 커다란 파란을 일으켰다. 그동안 어설픈 중도주의를 취하면서 신학 그 자체를 신학답게 고민하지 않았고, 이런저런 신학을 인간적인 산물로 여기며, 어느 하나를 고집하지 않는 것이 ‘침례교 특유의 정신’인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던 이들에게는 ‘파란’이었고 ‘혼란’을 경험하게 됐다. 하지만 신학을 신학답게, 영적 학문답게 고민하도록 만든 촉매로서, 너무나 훌륭했다.그런데 피영민 교수가 당시에 역사적 근거와 자료에 입각해, 충분히 학술적인 주장을 강의 시간에 제기한 것에 대해, 그 어떤 누구도 제대로 된 신학적 반박을 한 이가 없었다. 칼빈주의는 잘못된, 장로교 신학이라고 비아냥거리며 피영민 교수의 입을 막으려는 이들은 실제로는 칼빈주의도 청교도주의도 침례교 역사도 제대로 몰랐다. 알미니우스의 신학과 ‘자유의지론’을 근거해 피영민 교수를 공격하던 이들도 실은, 알미니우스 신학이 실제로 뭔지도 몰랐고 ‘자유의지론’의 신학적 함의와 그 역사적 논쟁에 대해서도 전혀 몰랐다. 심지어, 치열한 신학적 논쟁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사악한 마귀놀음에 빠진 듯 간주하고, 경멸하기까지 했다. 그동안, 신학이 없는 신학교육을 하던 문제가 그런 식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고, 신학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목사들을 양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중도통합주의인 것처럼 자신의 신학을 ‘칼미니안’이라고 소개하거나 ‘아르뱅주의’(아르미니우스+칼뱅)라고 천명하는 이들도 등장했다. 이들 가운데 어떤 누구도 제대로 된 ‘신학체계’ 비슷한 것을 내놓는 이가 없었다. 그들 자체 내에 내적인 논리체계라는 것, 최소한의 일관성도 없었다. 왕년의 유명한 중도노선이며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던 ‘존 웨슬리’의 신학노선은 오히려 넘사벽의 고급신학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주관주의적 접근방식이 아니라 자아도취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신학교에서의 신학 공부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정체성’의 계승과 확립에 있다. 정체성이란 ‘나’라는 존재가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으며, ‘나’를 포함한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여기에 이렇게 존재하게 됐는지를 아는 것이다. 정체성이 분명하다면, 내가 나답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고, 어떤 희생을 무릅쓰고서라도 반드시 거절해야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아는 것이다. 침례교회 혹은 침례교단에 ‘신학’이 없다고 말하거나 주장하는 것은 ‘정체성’이 없다는 것이며, 거칠고 무례하게 말하자면, 사람이 들개 떼에 섞여 쓰레기통을 뒤져 먹으면서도 전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셈이라고나 할까? 신학적 정체성이 없다면, 신천지의 오류가 뭔지도 모르고, 베뢰아 귀신론이 왜 문제인지도 모르고, 신사도운동을 추종하면서도 이것이 왜 비판을 받는지, 본질적으로 무당 노릇을 하면서도 거룩한 사도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셈이다.신학의 부재는, 목회현장에서 ‘이단’과 다를 것이 없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늘어놓기도 하고, 타 교단 이단대책위원회에서 문제로 삼고 우리 총회에 공문을 보내 사안을 조사하는 것에 대해 ‘왜 남의 교단 교회에 시비를 거느냐?’는 항의(?)로 대응한다. 이런 식의 대응이 우리 교단의 공적 위상을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하는지를 도무지 생각하지도 못한다. 이단 혐의를 받는 목사를 (납득할만한 해명도 혐의를 해소하지도 않은 채) 총회의 공직에 앉히고 중요한 행사에 설교자로, 강사로 세운다. 이런 행위가 교단의 장래에 어떤 해악을 끼치는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 


앞세대, 그리고 현재 세대에 속하는 교단지도자들의 공과를 냉철하게 검토해, 조금씩이나마, 세월이 흘러가는 것만큼 교단의 현황과 사업이 개선됐는가, 아니면 후퇴를 했는가를 생각하면 답은 이미 나왔다. 우리 교단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한다면 교단의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 아마도 그 때문에, 교단의 많은 지도자들이 부흥과 차세대 지도자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으로 아는데, 겉으로 드러난 문제보다는 결코 보이지 않는 깊고 근원적인 원인을 찾아내 근본적인 대처를 해야 한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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