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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산나교회, 모두가 행복한 목회를 향하여”

 

모태신앙인 조영일 목사는 음악을 좋아했던 소년이었다. 어릴 때 밴드에서 활동하기도 하고 대학교를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시작해 지점장의 자리까지 올라가기도 할 정도로 공과 사 모든 일에 열심이었던 그는 30대 중반 건강상의 문제로 직장을 그만두고 치킨 배달에서 음악 과외까지 정말 한시도 쉬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그가 목사로서 비전을 품고 나아간 것은 40대 이후부터이다. 30대 중후반부터 오산에 거주했던 조영일 목사는 오산교회에 출석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 조영일 목사는 당시 오산교회 담임이었던 고명진 목사(현 수원중앙)를 만나 신앙상담을 풀어놓았다.

 

“목사님, 내가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살아가라고 주님께서 저를 이 땅에 보낸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생명을 살리는 가치 있는 삶을 살아보고 싶습니다.”    


조영일 목사의 고백에 고명진 목사는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것을 권유했다.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한 조 목사는 40대 중후반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는 파트타임으로 주말에는 사역을 하고 평일에는 일을 하는 자비량으로 사역의 방향을 잡았다. 본격적인 사역을 위해 아무 연고도 없던 천안에 내려왔고 자신의 주특기인 음악을 가르치는 학원을 열며 이곳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는 목회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마음을 품고 천안 시내에 호산나교회를 개척했다. 

 


술집을 리모델링한 상가교회로 시작한 호산나교회는 평일은 밴드 음악팀 연습실로 많은 음악인들이 교회를 찾았다.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고 조 목사는 그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음악이라는 접촉점이 있었기에 그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었고 그 중 몇 명이 교회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면서 한 가족이 될 수 있었다. 


호산나교회는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인 후 외부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요양원 같은 곳에 가서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트로트를 들려드리는 사역을 4~5년 정도 실시했다. 처음에는 음악으로만 했던 사역이 여러 인연을 통해 국악 팀, 무용 팀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봉사활동을 펼쳐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봉사활동을 요양원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한편 더 많은 음악인들이 호산나교회로 모여들게 했다.

 


주님이 이끄신 교회 건축
교회를 개척한 지 5년이 다 되어가던 시기, 상가 임대계약 만료 또한 눈앞에 들이닥쳤다. 조영일 목사는 당시를 떠올리며 막막한 상황이었다고 회고했다. 가진 보증금은 1000만 원 정도였고 이 금액으로 다른 상가건물로 들어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며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건축을 하라는 마음을 조 목사에게 주셨다. 가진 돈은 달랑 1000만 원, 건축을 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한 금액이다. 하지만 조 목사는 주님이 주신 말씀에 순종하며 이곳저곳 땅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견한 곳이 지금의 호산나교회가 위치한 땅이다. 이 땅은 상가 교회 옆에 거주하는 사람이 소유한 곳이었다. 땅 주인은 이곳을 2억 8000만 원에 내놨지만 오랫동안 팔리지 않아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럼에도 소유주는 적은 금액에 땅을 팔 생각이 없었기에 그의 마음을 돌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조영일 목사는 지속적으로 “지금 우리 사정이 이렇다”며 설득을 이어갔고 2억 1000만 원 정도로 가격을 낮출 수 있었다. 하지만 가격을 아무리 낮췄다 하더라도 현재 수중에 있는 돈은 앞서 언급했다시피 1000만 원 뿐이었다. 조 목사는 다시금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시간은 흘려 부활주일이 다가왔다. 이날은 친인척들이 다 함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고 조 목사는 조심스레 교회의 상황과 고민을 털어놨다. 

 

“우리 이야기를 듣고 처형이 2억 원 정도를 융통해 주겠다고 했어요. 우리는 갚을 능력은 없고 대신 이자는 꼬박꼬박 준다고 말했죠. 그렇게 이야기가 돼서 각서를 쓰고 해서 땅 값을 마련했어요.”

 


이제 문제는 건축이었다. 하지만 이 또한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로 이끌어주셨다. 건축을 하는 장로 한 명을 호산나교회로 인도하신 것이다. 그는 상가 교회 옆 부지에 건축을 하려했으나 잘 성사되지 않아 힘들어하던 와중에 호산나교회에서 예배를 몇 번 드리면서 인연을 맺게 됐다. 조 목사는 그 장로에게 “우리가 일단 땅만 샀다. 그래도 건축은 해야 한다”고 사정을 설명했고 그렇게 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교인들도 교회 건축에 발 벗고 나섰다. 어느 연세가 있는 한 교인은 자신의 장례 비용으로 모아놓은 적금을 건축헌금으로 내놨고 이외에도 여기저기서 헌금을 건냈다. 조영일 목사도 당시 살고 있던 집을 정리해 교회 건축 헌금으로 내놓았다. 건축 일을 하는 장로 또한 이러한 교인들의 정성에 부합하기 위해 정말 최소한의 견적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도왔다.


아무래도 최소한의 견적으로 건물을 짓다 보니 인부를 쓰는 돈이라도 아끼기 위해 교인들은 직접 팔을 걷어 부치고 나섰다. 호산나교회의 내부 인테리어의 경우 교인들이 손수 작업한 결과물이다. 모든 이들의 합심으로 3개월만에 건축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 2019년 12월 25일 새 건물에서 첫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건축과 함께 찾아온 코로나 팬데믹
교회 건축이 끝나고 새로운 시작을 알렸던 호산나교회였지만 뜻밖에 암초를 마주하게 됐다. 바로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강타한 것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해보려 했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만 것이다.

 

“한 2~3년 동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어요. 모임도 안 되고 예배도 드릴 수 없는 상황이니 말입니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교인들이 떠나지 않았다는 점이예요. 덕분에 온라인 예배를 하는 등 그동안 해보지도 않은 것들을 경험하면서 그렇게 지나오게 됐어요. 지금까지 교회가 유지되고 있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조영일 목사는 실용음악학원을 하며 자비량으로 교회를 섬기고 있다. 학원업계 또한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천안에서는 아예 학원 문을 닫도록 해 학원 수강생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다. 이로 인해 빚까지 져가며 겨우 연명하다시피 했지만 다행히 시간이 지난 후 조금씩 정상화가 되고 사람들 또한 코로나19에 대한 인식이 변화해 사정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생업과 전도, 자비량 목회자의 사역
조영일 목사는 자신이 운영하는 실용음악학원에 대해 자신의 일터이자 전도의 장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목회자로서 학원을 운영하다보니 전도를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는 것은 당연했다. 또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원래 교회를 다니다가 실족해 교회를 떠난 사람들을 의외로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들과 신앙 이야기를 하며 가까워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 조 목사는 학원에서 자신이 목회자라는 사실을 일부러 알리지는 않는다고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다가가면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과 가까워지는 노력이 전도의 선제조건인 것이다. 이렇게 하나 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마음을 열면서 코로나 팬데믹으로 힘들었던 교회 또한 다시금 재기의 발판을 노리고 있다.


호산나교회의 전도는 음악과 관련한 활동 외에 전도팀을 구성해 주위 이웃들에게도 다가가고 있다. 특히 직접 빵을 만들어 2주에 한 번씩 이웃들에게 돌리고 있다. 이러한 전도 팀과 지인들을 통해 교회의 문턱을 넘어오는 사람들이 조금씩 생기고 있다. 

 


교인들이 행복한 목회
교회에서 특별히 하고 있는 사역이 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조영일 목사는 “특별히 어떤 사역을 한다기보다 교인들이 행복했으면 한다”고 답했다. 자신이 과거 집사로 섬겨보기도 했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이 교인들의 삶이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라는 곳이 영적인 충전과 함께 육체적인 힐링이 함께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를 통해 교인들이 행복해하는 목회를 하는 것이 자신의 목회 비전이라는 것이다. 조 목사는 말씀으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행복할 수 없다고 말한다. 말씀을 살아내는 것이 중요하며 이를 목회자가 실천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 또한 힘을 잃는다는 것이다. 말씀으로 돌아가 말씀이 삶과 예배로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 지치지 말고 힘냅시다”


교단 목회자들을 향해 전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물음에 조 목사는 지치지 말고 힘을 내자고 강권했다. 침례교 공동체 모두가 힘을 낸다면 그래도 무엇인가 회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그는 다시 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갖고 침례교단의 자랑인 협동정신을 통해 어려운 이 시대를 잘 헤쳐나가기를 꿈꿨다.

천안=범영수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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