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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선포(이사야 61장)

다음세대를 주께로(1)

 

자유! 성 어거스틴은 자유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자유와 자연인에게의 자유는 엄격한 차이가 있다. 자연인에게 자유라는 의미는 내가 하고 싶고 바라는 것을 얻을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을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자유는 실존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단편적으로 표현하자면 자신의 자유까지 온전히 포기할 수 있는 자유가 대표적인 해석이다.


그러므로 신앙인에게 자유라 함은 자기 자신을 부인할 수 있는 자유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원하는 것을 주님의 뜻에 굴복하고 내 것을(내 자유를) 포기할 수 있는 실존주의적 자유이다.


고린도후서 5:13~14에 따르면 “우리가 만일 미쳤어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정신이 온전하여도 너희를 위한 것이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라고 주장하고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렇게 자신을 부인하였으니 기록된 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1)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깊은 영성 안에서의 자유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 즉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나의 주로 영접한 자에게만 주어지는 실존주의적 자유이며 이 자유는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영적 축복이다.


로마서 8장에 기록됐듯이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없다”는 것처럼 목회는 이러한 진정한 자유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지는 은혜를 저들에게 전하고, 나누고, 선포하는 것이다.


오래전 오한복음 5장을 읽고 묵상하던 중, 양문 곁 베데스다 못에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던 38년 동안 병자와 예수님의 대화 속에서 주님께서 내 심중에 물으시는 질문이었다.


“너는 내가 병자인 것을 아느냐?”라는 질문이었다. 그때 나는 심한 번뇌를 받게 됐다. 죽은 시체와 같이 살아온 나의 지난 날들! 38년이란 세월이 흐르도록 하나님이 부르시는 은혜의 음성을 깨닫지 못한 나의 모습.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나의 부끄러운 자아의 모습을 보며 한없는 회개의 기도를 무릎을 꿇은 채, 깊은 밤을 지새며 드렸다.


한참을 기도한 후, 나는 주님께 고백했다.
‘주님 제가 이 성경에 기록된 38년 병자와 같이 아무 쓸모 없는 모습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저 자신이 병자인 자체도 모르고 오만한 자세로 걸어왔습니다. 배웠다하고, 지식이 있다하고, 남보다 낫다고 생각한 나의 모습이 이제 보니 주님 앞에 한없는 자만이며 어리석은 모습이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그동안 내 자신에 생명이 있으며 남보다 멋있고 의미있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으나, 돌아보니 착각이었고, 죽은 시체와 같은 세상에 사로 잡힌 자유를 빼앗긴 깊은 병든 삶이었습니다.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이제 일어나 걷겠습니다. 주님의 은혜 안에서 생명 안에서 걸어가겠습니다. 지나온 삶,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으며, 아쉬워하지 않으며, 지난 날들을 버리고 새롭게 새 삶을 걸어가겠습니다.’


이후 직장을 다니면서 신학교를 입학해 골든게이트침례신학교에서 M.Div.와 Th. M.을 마치고 다음세대를 중심으로 사역을 하게 됐다.


16년 전, 더 늦지 전에 한국에 돌아가 다음세대에게 복음을 전하는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와 폴앤다니엘기독학교를 설립해 오늘에 이르렀다. 기독학교를 통해 복음으로 참자유를 선포하는 섬김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에 감사하며 찬송을 드린다.

 

홍영수 목사
폴앤다니엘기독교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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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의 유산을 넘어 다시 희망의 깃발을 듭시다!
존경하는 침례교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전국의 3500여 교회 성도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저는 교단의 내일을 가늠할 중요한 길목에서, 우리가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길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역사는 기억하는 자에게 미래를 열어준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30년 전 우리 선배들이 눈물로 심었던 그 거룩한 씨앗을 기억해야 합니다. 30년 전, 우리에게는 ‘거룩한 야성’이 있었습니다. 바로 ‘3000교회 100만 성도 운동’이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가 외쳤던 구호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례교회가 한국 교회의 희망이 되겠다”는 당찬 선언이었으며, 복음의 능력으로 시대를 돌파하겠다는 영적 결기였습니다. 그 뜨거운 구령의 열정이 있었기에 우리 교단은 한국 교회사에 부흥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열정의 거룩한 불씨는 꺼지지 않고 이어져 왔습니다. 우리는 104차 총회에서 ‘부흥협력단’이라는 아름다운 동역의 저력을 통해, 개교회주의를 넘어 ‘함께하는 부흥 목회’의 가치를 배웠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담당하며 우리는 ‘상생’이라는 침례교만의 독특한 저력을 확인했습니다. 이제